현장 실습 고교생 사망, 이게 정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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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하고 보니 블랙기업, 노동자의 작은 권리조차 지켜지지 못했다


 얼마 전에 뉴스를 통해서 현장 실습으로 근무하는 한 중소기업에서 고등학생이 사망한 사건이 들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접한 이후 현장 실습을 하는 학생을 똑바로 사람 취급을 하지 않고, 오로지 값싼 노동력으로 취급하며 제대로 기업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면서 강한 비난을 가했다.


 누구라도 이렇게 어린 학생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한국의 노동 시장은 겉으로 최소한의 권리를 최선을 다해 보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법 규정을 교묘히 피해갈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기업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주려 하지 않는다.


 현장 실습을 통해 사망한 고등학생의 사건은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더욱 심각한 점은 이러한 사례가 이번에 처음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에도 몇 번이나 학교 과 정으로 현장 실습으로 근무하는 학생들이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한 일이 보도되어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논란의 대상이 된 기업은 고작 벌금을 무는 것으로 어떤 처벌을 강하게 받지 않았다. 그래서 이 과정은 좀처럼 수정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 끊임없이 피해자를 만들고 있다. 자신의 아들딸 같은 학생들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말이 턱 막힌다. 당신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유병재 농담집 블랙코미디>를 읽어보면 이런 글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아들딸로 살기 힘든 이유

: 딸 같아서 성희롱하고 아들 같아서 갑질함.


 정말 속 시원하게 우리 사회가 겪는 문제를 잘 표현한 글이다. 소위 좀 있는 사람들이 저지른 범죄는 항상 ‘딸 같아서 그랬다’, ‘아들 같아서 더 챙겨주려고 하다 보니 그랬다.’라는 변명을 한다. 참, 비겁한 변명이라고 말할 힘도 없을 정도로 비참한 기분이다. 우리 사회는 정녕 상식을 가질 수 없는 걸까?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지난 11월에 중소기업에 다니던 동생이 어깨가 너무 아파서 입원했다가 수술까지 했다. 평소에도 어깨가 좋지 않았지만, 매일 같이 쏟아지는 잔업에 시달리다가 어깨가 완전히 고장이 나버린 거다. 그런데 웃긴 일은 그 기업은 동생에게 사직서를 내밀면서 "다 나으면 다시 고용해줄 테니 사직서를 써라."라고 말했다.


 1년이 지나면 퇴직금을 줘야 하기 때문에 그 일을 피하고자 동생을 해고하려고 한 것이다. 동생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대학에서 들은 노동법 중 해고 조항에 관해 이야기해주면서 30일 이전에 예고하지 않은 해고는 통상 임금 30일분을 받아야 한다고 알려줬다. 완전히 눈 뜨고 코 베이는 격이었다.


 그 회사가 “당연히 30일 임금은 챙겨주겠다. 미안했다.”라고 말할 리가 만무하다. 오히려 노발대발하면서 다음에 회사로 못 돌아온다고 말하면서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했다고 한다. 더욱이 회사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기존 계약 기간은 백지화가 되고, 퇴직금을 받기 위한 1년을 다시 채워야 한다고 했다.


 이건 완전히 회사가 노동자를 그냥 교체 가능한 부품으로 여기는 꼴이다. 그 회사는 액자를 만드는 회사라 남자들의 노동이 많이 필요한데, 회사는 남자 노동자를 추가 고용하지 않고, 동생을 비롯한 소수 노동자에게 잔업을 매일 부과하며 무리를 시켰다. 그러니 노동자가 멀쩡할 수가 없는 거다.


 사용자가 조금만 더 자기가 가져가는 이익을 투자한다고 생각하고, 노동자를 한 명 더 고용해서 잔업 없이 원활하게 회사가 돌아가도록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물론, 노동자 한 명을 더 고용하는 일이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동생이 다니는 회사는 계속 공장을 확장해나가는 회사였다.



 그러면 충분히 추가 고용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도 회사는 추가 고용을 하지 않고, 적은 노동자에게 부과하는 노동을 늘리는 것을 선택했다. 이 바보 같은 선택 때문에 동생과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또래 20대들은 모두 회사를 조기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종종 꼰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젊은 놈이 그것도 못 참느냐?’라고 말하지만, 그 사람들은 절대로 다른 사람이 겪는 상황에서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동생이 다니는 회사의 이사도 “무슨 젊은 놈이 고작 그거 했다고 아프다고 난리냐?”라며 병원에 가는 일조차 크게 비난했다고 한다.


 잔업 수당도 없이 잔업을 시키는 것으로 모자라 ‘수습 기간’이라고 임금을 적게 주고, 7개월 정도가 되어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몸이 악화하니 사직서를 쓰라고 하는 만행. 블랙 기업의 모범 사례로 추천하고 싶을 정도의 수준이다. 이렇게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이 흔하다는 게 욕이 나온다.


 소설 <잠깐만 회사 좀 그만두고 올게>에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주인공의 장면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저는 오늘로 회사를 그만두겠습니다!”

나는 후련한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부장의 표정은 무척이나 갑갑했다.

“하! 그러니까 요새 놈들은 쓸모가 없는 거야! 이놈이고 저놈이고 눈곱만 한 자긍심도 없지! 평생 패배자로 살아도 되나! 넌 정말 싸구려 인생이로군! 아무 일도 안 해놓고 그만둘 거면 월급 도로 뱉어! 회사에 손해나 끼치고! 배상해! 소송하겠어. 이 도둑놈아! 다들 죽기 살기로 일하는 와중에 잘도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군! 그러고도 인간이냐!”

입에서 온갖 말을 뱉어 내면서 미친 것처럼 짖어대는 부장을 나는 용케 계속 숨을 쉬는구나, 감탄하면서 바라보았다.

부장이 말을 전부 마치고 숨을 헉헉거리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인간의 마음이 없는 놈에게 인간이 뭔지 설교를 들을 생각은 없는게.”

부장이 “아아아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기괴한 소리였다.


“어차피 너 같은 놈은 평생 패배자로 끝나는 거야!”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폭발했다.

“내 인생을 댁이 이러쿵저러쿵하지 마!”

(...중략...)

“패배자, 패배자. 대체 뭐에 졌다는 거지. 인생의 승패는 남이 결정하는 건가요? 인생은 승패로 나누는 건가요? 그럼 어디부터 승리고 어디부터 패배인데요? 자신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거죠. 나는 이 회사에 있어도 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만둡니다. 단지 그뿐이에요.”

나는 말을 계속 이었다.

“애초에 이렇게 이직률이 높은 회사가 계속 버틸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나요? 참고 또 참다가 도산해서 퇴직금도 못 받으면 아무리 후회해도 모자라요. 이상한 건 이상하다고 똑바로 말하지 않으면 회사는 성장하지 않습니다. ‘나 때는 이랬으니 너도 이래라’가 아니라 시대에 맞춰 반드시 변화해야 합니다. 사람도 제도도 변해야만 한다고요.” (본문 198)


 소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에서 이 장면을 읽은 직장인은 아마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동생이 다니는 회사도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에서 나오는 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반년을 버티면 오래 버틴 거라고 말하는 회사에서 동생은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오기로 버텼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노동자에게 챙겨줘야 할 실업수당과 30일 전 예고 없이 해고하는 대신 챙겨줘야 할 30일 통상임금을 주지 않기 위한 권고사직서다. 동생이 다니는 회사는 어머니의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다. 즉, 동생이 선택지가 제한적이라는 것을 회사의 사장이 악용한 거다. 참, 더 기가 막힌다.


 당연히 어머니는 체면치레와 동생이 여기가 아니면 다른 데 취업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그냥 사직서를 쓰고 내년에 다 치료한 이후에 다니라고 말씀하신다.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동생이 걱정되어 그런 말씀을 하셨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문제는 정이 아니라 철저히 법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동생이 어깨 재활을 한 이후 회사로 돌아갔을 때 제대로 일할 수 있을까? 수술하기 전에도 과도한 잔업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워했는데, 수술 이후에 동생에게 돌아올 일이 정상적일 리가 없다. 나는 그 회사가 지금 취하는 행동은 이 모든 상황을 계산에 넣은 굉장히 야비한 꼼수라고 생각한다.


 젊은 남자들이 자꾸 일찍 그만둬서 사람을 구한다고 해서 어머니가 동생을 거기에 취업을 시켰는데, 동생은 그곳에서 왜 젊은 남자들이 일찍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지 몸소 체험했다. 참, 블랙 기업이라는 곳의 본질적인 특성은 ‘지인의 아들’이라고 해도 다르게 적용되지 않는 법이라는 걸 난 깨달았다.


 역시 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금수저로 태어나 사는 수밖에 없는 걸까? <유병재 농담집 블랙코미디>에서 읽은 ‘아들 같아서 갑질한다’는 말이 새삼 와 닿는다. 지금도 동생은 치료비와 실업수당을 두고 어머니와 회사와 시름을 앓고 있는데, ‘어머니 지인의 회사’라는 점 때문에 고소가 꺼려진다는 게 참 안타깝다.


 지인의 회사에서도 이 모양인데, 전혀 생판인 회사에서는 어떤 모습이겠는가? 그곳이 정상적인 회사라면 다행이지만, 블랙 기업 중에서도 블랙에 가까운 기업이면 당장 그만두는 수밖에 없다. 취업을 못 해 앞날이 걱정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곳에서 나를 희생할 바에 그만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부디 우리 사회가 노동자의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일부 힘 있는 노동자들의 억지를 들어주는 것이 아닌, 현장 실습에 나갔다가 사망하는 힘 없는 노동자들을 곁에서 지지해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러니 어찌 ‘탈조선’과 ‘공무원’을 꿈꾸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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