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의 불꽃 같은 무명 개그맨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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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쿠타가와상 역대 수상작 충 최고 판매를 기록한 개그맨이 쓴 소설


 삶을 산다는 것은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일이면 당장 꺼질지도 모르는 불꽃처럼 사는 일이다. 우리가 사는 삶은 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에도 뇌에 이상이 생겨 사고가 멈춰 버리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고, 늘 무심하게 이용한 출근길 버스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전복될 수도 있다.


 삶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갑작스럽게 참지 못한 분노로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잘못을 반복할 때도 있고, 그저 무심코 도로를 향해 던진 돌이 지나가던 오토바이에 맞아 살인자의 이름을 가질 수도 있다. 우리의 삶은 마치 도박 같은 확률의, 확률에 의한 선택의 연속이다.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하진 나를 향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본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바로 이런 게 우리가 사는 삶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이 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서 꿈과 목표를 가지고 아등바등하지만, 이 순간의 노력이 반드시 모두에게 합당한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쏟은 노력의 가치를 부정하는 냉혹한 비판이 따라올 때도 있다. 한 줌의 불꽃처럼 오늘 활활 타오르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은 이 냉혹한 비판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오늘을 열심히 살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떻게 사는가?



 이번에 읽은 <불꽃>이라는 소설은 마치 그런 삶 속에서 불완전연소에 가까운 삶을 산 주인공 개그맨 도쿠나가와 도쿠나가가 우연히 만난 선배 개그맨 가미야의 이야기다. 사실 개그맨이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이라 ‘시골에서 오사카로 상경하여 개그맨으로 성공하기’를 다룰 것 같았다.


 하지만 <불꽃>은 첫 시작 장면부터 성공이라는 수식어를 갖기 무척 어려울 것 같은 도쿠나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역 불꽃놀이 축제에서 무대 이벤트를 위해 초청받았지만, 앞서 진행된 프로그램이 계속 지연되어 아무도 무대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시간대에 오른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했다.


 어떻게든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도쿠나가와 그의 파트너를 향해 ‘가미야’라는 인물은 복수를 해주겠다며 무대로 올라가더니, 관객들을 향해 “내가 영적인 능력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거든. 사람 얼굴 딱 보면 그 사람이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다 알아!”라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지옥, 지옥”을 외친다.


 당연히 관객이 웃음을 터트릴 리가 없었다. 갑자기 개그맨 콤비가 무대에 올라 한다는 말이 자신을 향해 “당신은 지옥이야!”라고 외치는데, 어느 누가 박장대소하며 즐거워하겠는가. 다소 어처구니없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나는 ‘도대체 이 소설은 뭘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작품이지?’라는 의문을 품었다.



 불꽃놀이 축제 이후 가미야와 도쿠나가는 사제의 인연을 맺게 된다. 보통 성공한 개그맨을 꿈꾸는 주인공을 그린 작품이라면 이대부터 도쿠나가가 가미야 밑에서 열심히 개그 수련을 하는 이야기가 그려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불꽃>은 그런 뜨거운 전개가 아니라 무척 미적지근한 전개를 보여준다.


 바보 같을 정도로 자신의 개그를 통해 아이를 웃기려고 하는 가미야의 모습을 통해서 도쿠나가는 천 천히 자신의 삶을 형성해나간다. 그중에서 한 가지 공감한 장면이 있다. 도쿠나가가 라이브 공연 뒤 구성 작가와 무대감독과 뒤풀이를 하는 장면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모종의 고독을 느낀 장면이다.


상석에서 구성작가며 무대감독과 술을 마시고 있던 야마시타가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 내 옆에 다가와 “무대감독님이 한쪽 구석에 박혀 잇지 말고 작가에게 인사라도 좀 하라고 하시는데?”라고 속삭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 나는 맥주가 든 유리컵을 들고 무거운 허리를 일으켜 상석으로 갔다. 이런 날 밤에도 그런 예의를 차려야 하는가. 후배들은 상석의 작가와 무대감독, 그리고 야마시타에기까지 활기차게 돌아다니며 흥을 돋우고 있었다. 나 자신의 존재가 거기에 찬물을 끼얹지나 않을지 두려웠다. 웃음을 얼굴에 붙인 채 상석으로 더듬어간 나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어떤 그룹에서도 밀려난 채 좌석도 통로도 아닌,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장소에서 혼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는 무엇일까.

이런 때, 가미야 씨가 주장하는 “사람들이 알아주느냐 아니냐는 것이 다를 뿐, 인간은 모두 코미디언이야”라는 이론은,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묘하게 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주었다. 지금, 명확하게 엄청난 타격을 입으면서 나는 가미야 씨와 함께한 나날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나는 가미야 씨 밑에서 제법 성장했다는 실감이 분명하게 있었다. 하지만 막상 세상과 접해보니 그게 이토록 담약한 것이었는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표정을 바꿀 수가 없었다. 가미야 씨를 만나고 싶어지는 때는 대부분 나 자신을 놓쳐버릴 것 같은 그런 밤이었다. (본문 118)


 원래부터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도쿠나가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떠올랐다. 나 또한 종종 학교에서 참여한 행사에서 이런 비슷한 자리가 생기면 한구석에서 쭈뼛쭈뼛 홀로 밥을 먹는 데에 집중한다. 어떤 학생이 활기차게 자리를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는 모습은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사람이 서툴기 때문에 나는 시도조차 하는 게 어렵다. 예의상 윗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에서도 무엇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을 이때 비로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도쿠나가 또한 똑같은 고독 속에 있었던 거다.



 뭔가 제대로 된 개그맨이라고 말하기보다 조금은 이상한 구석이 있는 가미야를 도쿠나가는 존경심을 가지고 조금씩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와 달랐다. 도쿠나가가 어느 정도 인지도가 올라 방송에 출연하고 있을 때도 가미야는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미야가 품은 사고를 잘 보여주는 대화가 있다.


남을 상처입히는 행위라는 게 그때 그 순간에는 속이 뻥 뚫리는 거잖냐. 근데 딱 한 순간이야. 그런 것에 안주해버리면 그자의 상황이 좋은 쪽으로 변화할 일은 없어. 남을 끌어내리는 것으로 현재의 자신에 대해 안심하려는 방법이니까 말이야. 그러는 동안에 계속 자신이 성장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거라고. 불쌍하지 않냐? 그런 놈들, 사실은 피해자야. 나는 그거, 완만한 자살로 보이더라. 마약 중독하고 똑같아. 마약은 절대로 하면 안 되지만 만일 중독된 놈이 있다면 누군가 옆에서 도와줘서 끊도록 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확실하게 말하지 않으면 안 돼. 너는 지금 가장 간단하고 편한 방법을 선택해버렸다, 근데 그거 시간 낭비다, 잠깐 옆길로 샜더라도 거기서 얼른 빠져나오지 않으면 너한테 미래는 없다, 라고 말해줘야지. 재미 하나도 없으니까 당장 끊어라!’ 라고.” (본문 138)


 사람과 부딪혀도 전혀 이득이 없는 행동을 가미야는 오로지 자신의 철학을 위해서 주장했다. 단순히 한 삶의 모습이 아니라 개그에서도 가미야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주인공 도쿠나가가 자신을 속여가면서 개그 프로그램에 출연해 ‘모두를 웃을 수 있는 개그’를 하는 것과 가미야는 철저히 달랐다.


 가미야는 어디까지 자신의 색을 고수했다. 도쿠나가가 점점 줄어드는 인기 속에서 은퇴해 부동산 사무실에서 일할 때도 가미야는 한결같은 모습을 보였다. 소설 <불꽃>은 어떤 극적인 이야기로 마무리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 가미야가 처음에 부탁한 전기는 마지막 순간에도 완성하지 못했다.


 ‘무슨 이런 결말이 다 있어?’라고 생각할 정도로 열린 결말 속에서 끝난 <불꽃>은 괴짜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가미야의 행동에 기겁한 상태에서 마지막 장을 덮었다. 이 책을 고작 내가 이 정도로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해력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일본인과 정서가 다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코미디언으로 산 주인공 도쿠나가가 가미야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색을 입힌 코미디언으로 지내다 조용히 물러나는 이야기. 이것은 어쩌면 일본 개그맨이 겪는 모습이자 한국에서도 몇 명의 유명한 개그맨을 제외하면 모두 겪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예능인, 개그맨이라면 이 책에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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