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의 행복
- 문화/독서와 기록
- 2017. 9. 15. 07:30
'행복이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소설
올해도 세종 도서 독후감 공모전에 응모하기 위해서 한 권의 책을 읽었다. 한창훈 작가의 연작소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이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던 도서 목록 중에서 유독 이 소설을 택한 이유는 제목 때문이기도 하고, 오래전에 한창훈 작가의 글을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라는 제목을 처음 읽었을 때는 '행복을 찾을 수 없는 비극이 가득한 나라'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행복도가 낮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청소년 행복지수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다는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다.
소설을 처음 읽으면서는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마지막 장을 넘길 때는 크게 내 생각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에 등장하는 나라는 아주 작은 섬에 생긴 마을을 가리킨다. 그 마을은 한 명의 측량사로 시작하여 표류한 사람, 다른 원주민이 모이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섬마을이었다. 하지만 이 마을에는 본토의 도시와 달리 수많은 법이 아니라 딱 하나의 법만 존재했다. 규칙을 어겼을 때 제재하는 법이 아니었다. 섬마을의 법은 "어느 누구도 누구보다 높지 않다."라는 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어떤 법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이런 법이 있느냐고 생각했다. 아무리 자유 민주주의라고 하더라도 눈에 보일 정도로 격차는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로지 이 법 한 개를 가진 섬마을은 어느 누구도 누구보다 높지 않았기에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낮지 않았다. 그들은 이 법을 굉장히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를 읽으면서 이 첫 장면에서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누구도 누구보다 높지 않다'는 말은 우리가 민주주의의 가치와 도덕을 배우면서 터득하는 인간이 가진 존엄성의 근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이 존엄성이 상대적이라는 걸 터득한다.
사람은 누구나 존엄하다고 하지만, 그 존엄의 가치는 그 사람이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흔히 말하는 금수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 존엄의 가치가 하늘을 찌를 듯하고, 흙수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 존엄의 가치가 땅 밑으로 꺼지다시피 한다. 그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갑질은 조금만 눈과 귀를 기울이면 쉽게 보거나 들을 수 있다. 심지어 우리 사회를 경악하게 한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도 조금 더 힘을 가진 아이들이 일방적으로 자신보다 낮다고 평가한 아이를 폭행한 사건이다. 과연 우리는 어느 누구도 누구보다 높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섬마을 사람들이 정한 딱 하나의 법인 '어느 누구도 누구보다 높지 않다.'는 오늘날 우리가 잊어버리고 지냈을지도 모르는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존엄하다는 것은 누구나 존중받고, 배려받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점점 병 들면서 이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
가벼워 보이면서도 뜻밖에 무거운 주제로 들어간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의 다음 이야기는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더 많았다. 그중 한 장면은 오늘 우리 현대인이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휴일'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장면이다. 우리에게 휴일은 쉬는 날이지만 사실 쉬는 날이라고 말할 수 없다.
휴일이기 때문에 휴일에 할 수 있는 해야 한다며 우리는 휴일을 또 다른 일을 하는 날로 여긴다. 지금도 긴 추석 연휴를 맞아 '이번 추석 연휴 동안 제대로 쉬기 위해서 열심히 계획해보자!'라며 여행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한다고 익숙한 휴일을 책은 이렇게 보여준다.
"휴일에는 쇼핑도 하고 파티장에도 좀 다니지 그러세요."
종종 찾아오는 신문기자가 말했다.
"그것을 하면 어떤데요?"
주민 중 한 명이 물었다.
"즐겁고 만족스럽죠."
"지금도 충분히 즐겁고 만족스럽습니다."
"어떻게 가만히 있는 것으로 만족을 하죠?"
기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
"우리는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오늘은 쉬는 날이죠. 그래서 이렇게 쉬고 있습니다. 물고기나 새도 활동을 하고 나면 쉬죠."
물었던 이가 답햇다. 남은 주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글쎄, 제 말이 그 말입니다. 휴일이면 쉬는 것답게 쉬어야죠."
"이보다 어떻게 더 잘 쉴 수가 있지요?"
기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주민들이 무언가를 몰래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돌아가는 척하고 약간 떨어진 숲으로 들어간 다음 카메라를 나뭇가지 사이에 숨겨두고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어떤 행위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자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주민들은 저녁 노을이 질 때까지 그곳에 앉아서 이야기하며 그냥 있었다.
(본문 29)
"휴일이면 쉬는 것답게 쉬어야죠."라고 말하는 기자의 말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보다 어떻게 더 잘 쉴 수가 있지요?"라는 주민의 말에 순간 눈을 깜빡였다. 정말 섬 주민의 말이 무척 옳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취하고 싶은 휴일은 억지로 무엇을 해야 하는 걸 손에서 놓은 상태로 쉬는 거다.
지금처럼 휴일이라고 해서 영화를 보거나 야구를 보거나 휴일에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사실 쉬는 거라고 말할 수 없다. 휴일 동안 여행을 가거나 다른 일을 한 이후에 "아, 쉬는 게 더 힘들다."라고 종종 사람들이 말한다. 과연 이런 행동을 가리켜 우리는 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늘 무엇을 해야 한다는 긴장감 속에서 우리는 휴일에 쉬는 법을 잃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한국 사람들이 삶의 질이 낮은 이유는 좀처럼 휴일 같은 휴일을 갖기 어려울뿐더러, 휴일이 되어도 휴일 증후군에 시달리며 출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제대로 쉬는 법조차 모르는 건 비극이다.
섬 주민들이 섬에서 화산 활동이 일어나는 동안 피신한 본토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은 기자와 주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몇 번이나 '나는 과연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했고, 늘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행복을 멀리서 찾고 있다고 생각했다.
섬 주인 쿠니와 한 노인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도 잠시 책 읽기를 멈췄었다.
"옛날엔 참 행복했어. 아내가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고 옷도 챙겨주곤 했으니까. 처녀 때 아내는 인기가 아주 좋았지. 꽃을 든 청년들이 늘 집 앞에서 기다리곤 했으니까. 마음을 사로 잡으려고 내가 한참 고생을 했지. 결혼하고서 돈을 많이 벌었어. 승진도 빠르고 월급도 많았어. 이 금시게는 그때 산 거야. 지금 팔면 얼마나 될까?"
"......"
"시계만 있는 줄 알아? 고급 카메라도 있고 커다란 냉장고도 있고 비싼 나이프도 있어. 아니, 카메라는 작년에 팔았군. 원래 가격의 반도 안 주더라고. 난 자꾸 가난해지고 있어. 늘 어제보다 오늘이 더 가난해. 가난하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워."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날 중에 오늘이 가장 부자잖아요."
쿠니는 대답하고 일어섰다. (본문 45)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바라는 행복은 늘 미래 아니면 과거에만 존재한다. "내가 왕년에는..."이라며 지나간 과거를 떠올리고, "언젠가는..."이라며 미래를 상상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서 있는 '지금, 여기'를 사람들은 자주 잊은 채 살아간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지금, 여기'를 사는 거다.
책이 집필된 일본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사상 최고 베스트 셀러가 된 <미움받을 용기>도 아들러 심리학을 통해서 말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도 '지금, 여기'이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의 쿠니가 말한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날 중에 오늘이 가장 부자잖아요."이라는 말도 '지금, 여기'를 뜻한다.
과연 우리는 '지금, 여기'에 가장 큰 의미를 둔 상태로 살아가고 있을까? 지나간 과거만 돌아보며 아쉬워하기에 앞으로 남은 날이 너무나 아깝다. 오늘은 당신의 남은 인생의 첫날이다. 만약 앞으로 더 가난해진다면, 오늘이 가장 부자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오늘이 가장 특별하고 완벽한 날이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기자가 보내는 삶은 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안타까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기자의 모습을 한 장면을 빌려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수습 기간이 끝나고 그는 사회부에 배속되엇다. 이제야말로 본격적인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고 그는 생각햇다. 사람들이 말했다.
"진급을 준비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계발에 충실해야 하지."
그는 그렇게 했다. 주기적으로 서점을 찾아가 소통의 방법, 대화의 방법, 협상의 방법, 숨어 있는 자신의 능력을 찾는 법 따위의 책을 사서 읽었다. 전문 분야 교육원 수업도 수강했다. 그 시간은 의외로 길었다. 그즈음 친척의 소개로 한 여자를 만났다.
여자도 그의 행적과 비슷했다. 학원을 먼저 다녔고 피아노를 배웠으며 준비를 해서 대학에 들어갔고 또 준비를 해서 졸업을 하고 회사에 취직을 했다.
둘은 결혼했다. 사람들은 말햇다.
"준비를 해. 그래야 나중에 행복하지." (본문 155)
한국은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서 준비만 하다가 삶이 다 지나 가버린다. '지금, 여기'를 살지 못하기에 행복은 미래에 있고,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척 많다. 이렇게 행복하기 위한 준비만 하다가 우리는 언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책에서 읽은 기자의 삶은 전형적인 한국 시민의 삶이었다.
어릴 때부터 행복하기 위해서 좋은 대학을 노리고, 대학에 들어가면 행복하기 위해서 좋은 직장을 노리고, 직장에 들어가면 행복하기 위해서 좋은 배우자를 찾고, 결혼하면 행복하기 위해서 노후 준비를 하고... 끝도 없이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 과연 이런 게 진짜 행복일까?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를 읽으면서 행복이라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지금도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하고 있지만, 그 준비로 인해 '지금, 여기'를 놓치면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휴일에도 휴일답게 쉬어야 한다면서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지 않은지 자문해볼 때다.
행복이라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어느 누구도 누구보다 높지 않다'는 법 하나로 행복하게 지낸 섬 주민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빗댄 소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고 멈춰 서서 내 삶을 돌아보았고, 지금 나는 무엇을 하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지 물어보았다.
가을을 맞아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여운에 빠지는 책 읽기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어디까지 뻗었는지 알 수 없는 가을 하늘 아래에서 깊은 고민읅 가진 사람에게 이 책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를 스스럼없이 권하고 싶다. 우리가 미처 지나친 시간 속에 행복이 있었음을 알게 해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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