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아래서 기다릴게, 문득 고향 가족이 떠오르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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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칸센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다섯 사람의 다섯 이야기


 오늘 이 글을 읽기 위해서 글을 연 사람들에게 작은 부탁을 하고 싶다. 지금 글 가장 아래에 첨부된 유튜브 영상을 켰으면 한다. 그 영상은 일본 신칸센이 달리는 풍경을 그대로 담은 슬로우 티비 영상으로, 신칸센의 자연스러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부디 소리를 줄여도 좋으니 이 글은 소리와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신칸센은 일본의 고속 열차로, 우리나라의 KTX와 마찬가지로 많은 직장인이 조금 떨어진 지역의 출퇴근에 이용하거나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는 데에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한국의 KTX는 많이 타봤지만, 일본의 신칸센은 작년에 운이 좋아서 학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탈 기회가 있었다.


 그때를 떠올려 보면, 신칸센보다 더 바쁘게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신칸센 이야기를 여기서 갑작스레 꺼낸 이유는 오늘 소개할 책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가 신칸센을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신칸센을 타고 있었다.


 한 명은 신칸센을 타고 할머니를 만나러 가고 있었고, 한 명은 후쿠시마를 향해. 가고 있었고, 한 명은 장례식에 가고 있었고, 한 명은 결혼식에 가고 있었고, 한 명은 신칸센에서 일하는 승무원이었다. 좀처럼 공통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다섯 사람의 이야기는 '고향과 돌아갈 곳'으로 묶인다.



 우리가 보통 기차를 타는 것은 고향으로 갈 때가 많았다. 매해 명절마다 KTX 표를 예약하기 위해서 큰 대란이 벌어지고, 가족끼리 참여해야 하는 친척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열릴 때는 모두 일을 잠시 멈추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고향은 가야만 하는 곳이 아니라 '돌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무척 힘이 되는 일이다. 우리는 항상 경쟁 사회 속에서 지칠 때까지, 아니, 지쳐도 죽을 때까지 경쟁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 경쟁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돌아가면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장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곳이 바로 우리의 집과 고향이다.


 만약 우리가 돌아가서 쉴 수 있는 장소가 없다면 과연 우리는 그 경쟁을 버텨낼 수 있을까?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은 경쟁에서 쉽게 버티지 못한다. 마치 무시무시한 것에 쫓기는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에게 돌아갈 장소가 없다는 것은 단순히 쉴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게 아니라 고독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이 외롭다는 뜻이기도 하다.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는 그러한 감정을 담은 주인공의 이야기가 잘 표현되어 있다. 신칸센을 타고 고향으로 향한 그들이 그곳에서 오랜만에 친구와 재회하기도 하고, 가족과 재회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는 평범히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평범한 이야기 속에는 '가족'이 들어가 있었다.


타케후미가 메구로에 있는 집에 도착한 시간은 밤 열한 시가량이었다. 땀에 젖은 양복을 벗어던지고 샤워를 하자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뭐가 어쨌든 간에 몇 년에 한 번 있는 커다란 행사를 겨우 끝낸 참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펼쳐 본 답례품 꾸러미 안에는 가다랑어포나 김 따위의 건어물이 들어 있었다. 카나코 씨가 준 유채꽃 봉오리를 물에 넣어 해동시킨 뒤, 막 꺼낸 가다랑어포를 곁들여 간장을 친다. 이어서 차갑게 식은 맥주캔을 땄다.

녹색과 노랑의 화려한 꽃봉오리를 한 입 가득 밀어 넣었다. 쌉싸래한 봄 향기가 코를 따라 지나갔다. 어머니도 불단 위에서 시들어 버린 동백꽃을 안타까워하면서 이것을 먹었음에 틀림없다. 앞으로도 우리 가족은 이런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미워하기를 반복해 가리라. 언제낙 열반의 길에 들어 만날 때까지.

유채꽃이 담긴 접시를 조금씩 비워 나가며. 타케후미는 캔에 남은 맥주를 단숨에 털어넣었다. (본문 134)


 윗글은 세 번째 에피소드 '유채꽃의 집'에서 읽은 마지막 장면이다. 어머니의 법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그의 모습을 통해서 마냥 오순도순한 가족이 아니라 티격태격하는 현실적인 가족의 모습, 그리고 고향에서 재회한 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가족이라는 것은 결국 그런 게 아닐까?



▲ 일본에서 탔던 신칸센 노조미


 개인적으로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의 다섯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마지막 에피소드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의 이야기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신칸센 승무원으로 일하는 '사쿠라'로, 그녀의 이야기는 신칸센에서 만난 사람의 모습과 그녀의 가족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유독 내가 이 이야기를 마음에 들어 한 이유는 사쿠라의 가족 이야기는 언뜻 우리 가족 이야기와 닮은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곧잘 자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싸우는 부모님의 모습과. 대학에 들어가자 곧바로 별거에 들어간(사쿠라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모습이 무척 겹쳐졌다.


 나는 글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가족이라는 의미를 되새겨보았다. 솔직히 나에게 가족이라는 말은 이야기할수록 아픈 말이다. 요즘 젊은 세대는 먹고사는 일이 바빠 가족을 결혼을 늦추거나 포기하면서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이유로 나는 가족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전자도 포함)


 무엇보다 누군가와 가족이 된다는 일이 굉장히 무서웠다. 사람들은 가족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가족이 있다고 해서 과연 행복해질 수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누군가 버팀목이 되어준다는 사람이 있다는 건 분명히 큰 힘이 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존재가 될 자신을 가질 수가 없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도, 친구가 되는 것도 결국은 상처를 주거나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아버지의 가정 폭력과 학교에서 겪은 학교 폭력으로 어릴 때부터 사람이 무척 힘들어진 나는 지금도 타인과 거리를 좁히는 일이 어렵다. 막상 친해졌다고 생각해도 혼자만의 착각인 것 같아 무섭다.


 적어도 미움받지 않기 위해서 늘 웃음을 띠며 행동하고, 되도록 사람과 얽히는 불편한 일에 개입하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은 이러한 모습이 다소 나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타인과 관계를 유지하는 법이나 거리를 좁히는 방법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가족과 친구라는 단어가 무척 낯설다.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 마지막 에피소드의 주인공 사쿠라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어딘가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보다는, 편안하게 해 줄테니 누군가가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 저 먼 곳에서 신칸센을 타고 와 주었으면 좋겠어. 내가 발견한 예쁜 것을 함께 보고 즐겨 주었으면 좋겠어. 그런 걸 해 보고 싶어서 가족이 가지고 싶은 건지도 몰라." (본문 208)


 사쿠라의 말을 통해서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내가 낯설어하는 가족과 친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사쿠라처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한 만화책에서 "진심으로 사람을 바꾸고 싶다면, 자신부터 바뀌어야 해."라는 대사를 읽은 적이 있다.


 지금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동안 변하기 위해서 긴 시간을 들여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해왔고, 조금 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고자 했다. 그런데도 여전한 열등감 속에서 손을 마구 흔들며 떨쳐놓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다. 나는 사쿠라처럼 될 수 있을까?



 상당히 긴 글이 되어버렸지만, 소설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는 단순히 가족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는 소설이다. 신칸센을 타고 이동하는 주인공들이 돌아간 장소에서 만난 사람을 통해 듣는 이미 잊어버렸거나 새로운 출발을 위한 이야기. 마치 신칸센을 타고 여행하며 직접 전해 듣는 것 같았다.


 우연히 슬로우 티비로 신칸센 영상을 발견한 날에 신칸센을 타고 떠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을 만났다. 이건 참 기묘한 우연이었다. 언젠가 나도 어머니와 함께 사는 집을 벗어나 가족을 만들거나 홀로 살면서 다시 어머니와 내가 살았던 곳으로 돌아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어떤 기분으로 살고 있을까? 내 곁에는 내가 돌아올 수 있는 자리가 되어 나에게로 돌아올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소박한 행복을 글로 적을 수 있는 나였으면 좋겠다. 너무나 뜨거운 7월이지만, 모두가 행복하게 놀러 갈 계획을 세우는 모습을 보며 홀로 차갑게 식어버린 사람에게 이 책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를 추천하고 싶다.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에게 이 책이 돌아갈 곳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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