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꾸준히 노력하는 건 쉽지 않다
- 일상/사는 이야기
- 2017. 5. 23. 07:30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간단하면서도 쉽지 않다.
우리가 삶을 더 잘 살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흔히 말하는 적극적으로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 내가 원하는 걸 손에 넣을 수 있는 자본, 내가 하고 싶은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 재능. 보통 이 세 가지를 갖추면 사람은 '성공'이라는 단어에 도달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용기, 자본, 재능 이 세 가지는 모두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헬조선'으로 불리는 한국에서 자본을 손에 넣는 일은 조부모부터 돈이 많아야 가능한 일이다. 재능은 자본이 밑받침이 되어야 키울 수 있고, 용기는 그런 능력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생겨나는 법이다.
이렇게 말하면 꿈도 희망도 없는 현실이 괜히 더 씁쓸하게 여겨진다. 혹자는 내가 너무나 부정적으로 본다고 말하겠지만, 이는 엄연한 사실임을 우리는 명백히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선천적으로 가진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경쟁이 불공정하다고 불평 불만을 산더미처럼 쏟아낸다.
하지만 우리가 불평불만을 쏟아내기 전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자본이 많고,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꾸준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소규모의 자본으로 성공한 사람은 부단히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 사람이다.
백건우 피아니스트의 공연을 듣고 나왔을 때, 관람객 중 일부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들었다.
"완전 사람 손이 아니더라. 어떻게 하면 저렇게 피아노 건반을 저렇게 칠 수 있지?"
"매일 밥 먹고 피아노만 했겠지. 그러니까 인간을 넘어선 거 아닐까?"
이 짧은 대화를 통해 우리는 본능적으로 노력해야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열정 페이 논란을 비롯해 일부 정치인이 내뱉은 '노오오오력' 같은 말 때문에 노력에 대해 말하는 게 조금 부정적이다.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나도 내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S 그룹만큼의 돈을 벌지 못하고, 최 씨처럼 권력의 비선 실세가 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커다란 무언가와 비교하면서 '나는 글러 먹은 인생이야.' 라고 생각하는 일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노력하지 않는 자신에 대한 변명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우리는 저 사람처럼 살 수 없다고. 맞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계발서를 쓰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처럼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노력으로 적어도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수 있고, 커다란 성과는 아니더라도 작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
꾸준히 노력한다는 건 일확천금을 얻는 일이 아니라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드는 일이다. 평생 티끌을 모아도 태산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과정이 괴롭기만 할 것이라는 건 착각이 아닐까? 우리는 진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꾸준히 노력할 수 있는 법이다. 그 과정 자체가 성공인 셈이다.
무언가 커다란 업적을 일궈내고, 커다란 기업을 만드는 일은 정말 타고난 사람에게 맡기면 된다. 재능과 자본과 가지고 태어나 앞을 걸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인재, 그러한 성공적인 환경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부단히 노력하는 인재가 우리를 대신해서 해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될 필요가 전혀 없다.
삶에서 중요한 일은 '내 삶을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온전히 자기만의 답을 찾는 일이다. 내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일은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노력이다. 적어도 노력해야 최소한 우리는 우연히 찾아오는 기회를 만날 수 있고, 그 기회를 통해서 좀 더 크게 한 발짝 앞을 내디딜 수 있다.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의 저자 김수영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세상에는 나와 맞는 것이 있듯이 맞지 않는 것도 있는데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바보는 되지 말자고.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결과에 집착하거나 자학하지 말고, 포기하지 않은 나 자신을 칭찬하면서 겸허하게 그 결과를 받아들이자고. (본문 182)
우리는 모두 제각각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아무리 노오오오력해도 이렇게 살 수밖에 없어. 노오오오력해서 잘 살 수 있으면 내가 왜 이렇게 사는데?'라는 질문은 너무나 자학적이다. 이 질문은 사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현재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은 꾸준히 노력하면 변하는 법이다. 몸짱이 되기 위해서는 꼼수 없이 최소 6개월 이상 꾸준히 운동하는 게 필요하다. 피아니스트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꾸준히 연습하는 게 필요하다. 가만히 살펴보면 꾸준한 노력 없는 결과는 하나도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꾸준한 노력에 대해 부정적인 이유는 사회의 불평등을 개인의 노력 탓으로 치부하는 정치인들 때문이다. 우리는 겪는 불평등의 원인은 결과에 따른 사회적 차별, 경제적 차별에서 출발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사회 구조를 탓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개인의 꾸준한 노력에 대한 가치를 평가절하하지 말자.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더 나아질 수 있다. 남들과 비교한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더 잘했는지가 중요하다. 적어도 우리가 온전히 자신의 삶에 집중한다면, 우리는 꾸준히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꾸준히 노력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사람은 본디 게으른 생물이라 삼일이 지나면 나태해지기 마련이다. 그것을 이겨내는 사람은 어제의 나와 다른 오늘의 내가 될 것이고,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말만 하는 사람으로 남을 뿐이다. 오늘 이 글을 통해 만난 나와 당신은 어떤 사람일까?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면, 우리는 매일 한 페이지를 쓰고 있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위대한 스토리는 행복으로 시작해서 행복으로 끝나는 순탄한 이야기가 아니다. 좌절과 고난,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있지만 끝내 그것을 극복해낼 때 감동이 깃드는 것이다. 삶이 역경의 한가운데 있다면, 자신이 위대한 이야기를 써나가는 중이라고 받아들이면 어떨까?
(본문 132_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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