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대로 지대넓얕 채사장이 던진 질문에 답하다
- 문화/문화와 방송
- 2017. 2. 16. 08:07
JTBC <말하는 대로>, '지대넓얕' 채사장이 우리에게 던진 삶의 질문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한다. 누가 시켜서 읽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읽는다. 친구가 없었던 나에게 책은 애니메이션과 함께 늘 곁에 있는 친구였다.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외국어 고등학교'의 존재도 몰랐던 나에게 세상을 보여준 창구였다. 책은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내일의 나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내가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똑똑하고 생각이 깊은 건 아니다. 베스트 셀러 작가도 아니고, 그저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쓸 뿐이다. 솔직히 이렇게 말하면 '책을 읽으면 무엇이 도움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가 무척 모호하다. '삶의 방향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답은 너무 뻔하지 않은가?
책은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책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책을 읽는 것보다 바깥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우리에게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고, 그냥 떠나고 싶어서 떠난 여행지에서 생각지도 못한 답을 찾을 수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란 원래 그런 거다.
책을 읽는 일 또한 그렇게 삶을 살아가는 것과 같다. 지난 수요일(15일)에 방영된 JTBC <말하는 대로>에는 <지적인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집필한 베스트 셀러 작가 채사장이 출연했다. 채사장은 자신의 버스킹을 통해서 책에 답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질문을 계속 던졌다.
그는 자신의 버스킹을 마무리하면서 "이거 끝나고 뭐하실 겁니까?"라는 질문을 통해 우리가 한번 해보면 좋을 일을 말했다. 그의 버스킹은 그동안 어떤 정리로 답을 내린 버스킹과 달리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볼 가치 있는 질문을 던지면서 끝나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짧게 하고자 한다.
<말하는 대로>에 채사장이 나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상당히 기대했다. 나 또한 그가 집필한 <지적인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책을 열심히 읽었고, 교과서로 만나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의 틀을 넓힐 수 있었다. 그래서 채사장의 버스킹은 또 다른 영역의 확장이 될 것 같았다.
그는 책 읽는 사람의 두 유형을 예로 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에게 익숙한 책을 찾아서 읽는 A 유형과 나에게 불편한 책을 찾아서 읽는 B유형. A 유형은 우물을 파는 유형이고, B 유형은 여행하는 영혼이라고 말했다. 이 두 유형을 두고 그는 앞의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어떤 유형인가요?"라고 물었다.
채사장의 질문을 듣고 나도 잠시 고민해보았다. 나는 전형적으로 A 유형에 속했다. 나는 늘 내가 흥미 있는 유형의 책만 읽는 일이 많았다. 어느 분야에 꽂히면 그 분야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데, 책에서 소개되는 다른 책을 읽는 일이 많아 그렇게 영역을 조금 확장해나가고 있다. 말하자면 AB 유형일까?
나는 독서 편식이 걱정되어 일부러 손을 대지 않았던 책에 손을 댄 적이 있다. 그런 시도를 통해서 종종 재미있는 책을 만나기도 했지만, 도무지 일말의 흥미조차 느낄 수 없는 책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책을 통해서 새로운 책을 만나는 일이 가능하기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채사장은 이 질문을 통해서 우리 사회에서는 A 유형은 인정받지만, B 유형은 좀처럼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A 유형은 우리 사회가 원하는 전형적인 전문가 유형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한결같이 한 우물을 파서 전문가가 되면 먹고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당신은 어떤가?
A 유형은 가만히 보면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어 꽤 좋은 접근이 가능하다. 그러나 채사장은 A 유형에 단순히 좋게 접근하지 않았다. 그는 자본주의 속에서 획일화된 일을 요구당하는 A 유형을 설명하면서 분업화된 우리의 노동자를 말했다. "노동자가 만든 것이 노동자의 것이 아니게 된다."는 말.
그 말은 오늘날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를 딱 정확히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겉으로 창의적인 인재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언제나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 인재를 원한다. 묵묵히 기업의 작은 나사가 되어 일하는 것을 원하는 인재가 되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가 원하는 전형적인 상이다.
지난 <말하는 대로>에서 사회학자 오찬호가 말한 "죽도록 노력해서 평범해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라고 말했었다. A 유형을 우리 사회가 고집하는 것 또한 우리가 죽도록 노력해서 평범해지는 것의 가장 이상적인 사례이기 때문이 아닐까? 모난 돌이 되는 것보다 그냥 섞일 수 있는 돌이 되는 것이다.
채사장은 그런 사회의 요구에서 벗어나 세계를 여행하고 이해하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 나올 수 있는 반론 "현실이 그게 가능하냐?"는 말을 먼저 꺼내며 냉정한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도 부정적으로 끝을 맺지 않았다.
"맞는 말입니다. 먹고사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다리를 자르고, 날개를 꺾고, 우물가로 돌아가야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인 거죠. 자녀들, 배우자…. 내가 보살피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우물가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게 문제가 됩니다. 우리를 위해 우리 부모님이 희생하고 있다는 게 문제가 됩니다. 그들이 우물가에서 희생하는 뒷모습을 보면서 자녀들은 그 모습을 가슴 깊이 잔상으로 남깁니다. 그것이 의무로 다가오게 됩니다. '나도 우물을 파는 영혼이 되어야 하는구나.' 이 얘기가 사치일 수도 있어요. 눈앞에 있는 사람을 떨치고 도망치는 게 이기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죠.
그런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이것은 내가 잠시 거쳐 가는 여행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 환경에 함몰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여행을 시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무거운 중력을 박차고 올라 처음으로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이 희생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그들도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랬을 때, 좀 더 우리 주변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의 말대로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유형이 되는 일은 쉽지 않다. 현실은 언제나 우리를 지독히 깊은 고민에 빠지게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떠나는 데에는 무수히 많은 벽이 가로막고 있다. 나 또한 그 벽 앞에서 몇 번이나 진로를 고민하고, 몇 번이나 이대로 가도 괜찮을지 되물었다.
대학 등록금을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지금을 나에게 의미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 누군가에게 나는 사치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것일 수도 있고, 아직 철이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일 수도 있다. 정말 이 시간보다 어머니 말대로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채사장이 마지막에 한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을 희생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그들도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는 말을 곱씹고 싶다. 우리가 우리를 희생하는 일은 누군가를 위해서라는 변명이 될 수 있겠지만, 나를 포기한 변명은 결코 되지 못한다.
<지대넓얕> 채사장의 버스킹은 책 읽기를 좋아하는 독자로서도, 20대 대학생으로서도 생각할 거리를 만날 수 있었던 버스킹이었다. 비록 나는 아직 비틀거리면서 앞을 향해 가고 있고, '정말 내가 이 일에 죽도록 열정을 다하고 있나?'는 자괴감에 스스로 탓할 때도 많지만, 그래도 가보려고 한다.
부디 이 일이 끝난 이후에, 좀 더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그래도 인생이 살만한 가치는 있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가 자신만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노오오오력을 강요하고 싶지 않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여기서 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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