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여전히 시곗바늘이 멈춰있었다
- 일상/사는 이야기
- 2016. 10. 24. 07:30
우리는 시간이 지나 점차 잊어버렸지만, 시곗바늘은 멈춰있었다
시간은 무한하다고 하지만, 한 사람에 있어서 시간은 유한하다. 오늘 우리가 헛되이 보내는 시간은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고, 아쉬워하더라도 다시 움켜질 수 없는 시간이다. 많은 성공한 사람은 '오늘, 이 시간'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순간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은 변하고, 사람이 변하면서 그 사람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또한 변하게 된다. 누군가는 시간이 흘러서 높은 자리에 앉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나를 찾는 여행에서 헤매고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포기한 채 다른 사람의 욕심을 채우며 괴로워하고 있다. 그게 우리가 사는 삶이다.
이렇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도 우리 주변에 있다. 어느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서울에 올라간 날, 행사가 끝난 다음 날에 나는 오랜만에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서울에 갈 때마다 한 번씩 방문하는 광화문 광장이지만, 그곳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 풍경을 항상 보여준다.
옛 조선의 수도를 상징하는 경복궁으로 들어가는 광화문만 그곳에 있는 게 아니다. 그곳에는 아직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일이 있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살아가느라 잊었을지도 모르지만, 세월호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아직도 그 장소에서 묵묵히 지나가는 시간 속에 혼자 멈춰 있었다.
차마 나는 그곳의 사진을 담을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눈으로 읽어보면서 비겁하게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나는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자식 팔아 장사한다는 말에 욕설을 들려주는 일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아직도 인양되지 않은 세월호에 대해 몇 번이나 잊은 적이 있었다.
나는 내가 겪지 않는 사건에 대해서 쉽게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다. 눈앞에 닥친 대학 중간고사, 눈앞에 닥친 대학 등록금, 눈앞에 닥친 여러 가지 일들. 나는 눈앞에 있는 내 일 하나로 바빠서 모두가 함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에 '하고 싶지만, 지금 나도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봄이 오고, 새로운 봄이 오는 동안 나는 때때로 문득 떠올릴 뿐, 아직도 멈춰서 있는 그곳의 일을 잊어버린 적이 있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은 잊을 수 있는 자연적 습성이 있어서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버티면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자연적 습성 속에서도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잘못에 대해서는 우리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잊어서는 안 된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단지 잊을 뿐이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은 그런 동물이다.
내가 서울에서 다녀온 그곳에는 아직 잘못을 바로잡지 못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흔적이 있었다. 시간은 덧없이 지나버렸지만, 아직 그 잘못은 해결되지 않았기에 말없이 나는 돌아서야 했다. 대학에 다니는 지식인이 되어 내 앞날만 걱정하는 나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
우리는 아직도 그때부터 조금도 달라지지 못했다. 사람의 목숨에 대한 가벼운 언동은 지금도 이어지고, 한 사람의 말 한마디에 법이 바뀌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잘못을 명명백백하게 파헤치지 않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그냥 시간에 기대어 잊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대학에 다니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나는 책을 읽으면서 사람의 기본을 잊지 않기 위해서 글을 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을 애써 외면하며 '나는 내 인생에 열심히 살고 있다.'는 말로 변명하는 오늘 멈춰버린 시간 속에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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