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대화 없이 일방적 통보가 가능한 이유
- 시사/사회와 정치
- 2016. 7. 20. 07:30
상주 사드 배치 갈등, 대화 없이 통보와 협박만 하는 나라
요즘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면 '과연, 이 나라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가 맞느냐?'는 질문을 하게 된다. 정부는 시민과 관련된 중요한 사항을 결정할 때마다 시민을 찾아가 만나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전혀 없이 일방적으로 "이렇게 결정했습니다. 이해해주십시오."라며 통보를 할 뿐이다.
하물며 거기에 반대하여 피켓을 들고 시위라도 나섰다가는 불법 시위라는 수식어가 붙어 제 목소리를 내고자 한 시민은 어느 사이에 법은 어긴 사람이 된다. 일부 세력은 시위하는 사람을 가리켜 '전문적인 시위꾼'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깎아내리고, 그들의 목소리에 정당성을 빼앗아버린다.
현재 우리나라를 찾은 한여름 더위보다 더 뜨거운 경북 성주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유치 논란은 조금의 제대로 된 대화조차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국방부는 갑작스럽게 미국과 의논하여 한국에 사드 배치 결정을 했다고 발표했고, 배치 지역 또한 일절 예고와 토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정부는 그저 이해해달라고 말하거나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조금도 귀담아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성주를 찾아 옹색한 변명을 하려고 했던 총리와 국방부 장관은 시민들의 뿔난 계란 세례를 맞았고, 허겁지겁 도망치기 바빴던 총리는 뺑소니 사고까지 내며 달아났다.
ⓒJTBC 뉴스룸
이명박 정부 이후 박근혜 정부 들어서 우리나라의 이런 모습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마치 어떤 부서의 고위관료가 말한 것처럼 정말 시민을 개와 돼지로만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정부 인사들이 시민을 조금이라도 존중하고, 낮은 자세로 눈을 맞춰 대화하려고 했다면 전혀 다른 행동을 보였을 거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부의 그런 무책임한 태도는 시민을 개와 돼지와 같은 존재로 보고, 아직도 수직관계 속에서 무조건 통보만 하면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더욱이 그들은 일방적 통보를 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반대하는 시민 세력을 향해 협박과 경고의 메시지를 강하게 띄우고 있다.
사태가 점점 악화하고 있는데, 이번 사태의 중심점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또 뭐 잘난 게 있다고 해외 순방을 떠났다고 한다. 아마 이번에도 해외순방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열심히 외교활동을 하다가 몸살이 나서 쉬어야 한다.'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여론을 무시하려고 할 것이다.
정말 이제는 진절머리가 날 정도다.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합의와 대의적 의견이 반영되어야 하는 최저임금조차 정부에서 파견한 인사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결정된다. 겉은 민주적인 것처럼 꾸며도 속은 늘 일방적인 통보만 있는 나라. 소통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한 거짓말이 너무나 뻔뻔하다.
얼마 전에 읽은 한 책을 보면 이런 글이 있다.
"선거 공약을 깼다고 해서 체포되지도 않고, 고소당해 봤자 배상금 등이 인정되는 것도 아니고, 사직할 의무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지."
"그렇다면 공약을 지키지 않는 게 뭐가 나쁜 거지? 답은 '체면이 상한다'야. 명예 문제인 거지. 공약을 지키지 않으면 공략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내려져, 그것 뿐이야."
"물론,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은 경우도 많아. 유럽과 미국에서 공약 위반은 정치생명의 끝이지. 다음 선거에서 표를 받지 못하게 돼서 정치가가 아니게 돼. 하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아. 이해되지? '일본의 정치가는 공약을 지키지 않는다'라는 건 정확하지 않아. 일본의 정치가가 특수한 것 같은 표현은 본질을 완전히 놓치고 있어. 특수한 건 정치가가 아니라 국민 쪽이거든. 일본 국민은 공약을 지키는지를 마는지를 중시하지 않는다- 이게 가장 중요하지."
(p146, 학생회 탐정 키리카 6권)
소설 속의 내용이지만 일본 현 정치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장면이기도 한데, 나는 이 모습이 우리 한국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한 지역과 한 계층이 화가 나서 고함을 치고 있어도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있는 이유는 그 반대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 아니니까', '나는 상관없으니까.'라는 이유만으로.
그래서 매번 선거 때마다 지키지 않을 공약을 통해서 표를 사고, '정치인이 다 그렇지 뭐, 기대한 내가 바보다.'라며 스스로 한탄만 하는 시민을 우습게 보며 공약을 지키지 않는다. 시민과 사전 토의가 필요한 중요한 결정사항조차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말을 들지 않으면 빨갱이로 몰아붙이면 그만이다.
그렇게 하면 또 시답지 않은 자칭 애국주의 단체가 나서서 이념 갈등으로 몰아붙여 문제의 본질이 흐려져 어느 사이에 조용해진다. 결국, 일방적 통보가 가능한 이유는 아무리 쑤시고 찔려도 바보처럼 "여기요!" 하면서 내주는 탓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는 이런 한계를 이번 사태에서 극복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나라에 물리적 경제적으로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사드 배치 결정은 한동안 한여름 무더위보다 더욱 한국을 뜨겁게 할 것 같다. 지금 박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 조용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국내 정치인들 또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기만 기다리지 않을까 싶다. (쓴웃음)
가을을 맞아 단풍이 드는 것처럼, 한국 시민은 다른 사건으로 물들어버릴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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