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현과 지민의 역사 무지 논란, 왜 잘못일까
- 문화/문화와 방송
- 2016. 5. 16. 07:30
설현과 지민의 역사 무지에 대한 비판, 정당하지만 안타까운 이유
한국 사회는 '무엇을 모른다=부끄러운 일'이라는 수식이 성립하는 사회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는 행동이 부끄러운 것인데도 한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른다고 말하는 게 가장 부끄러운 일이고, 질문하는 일은 자신의 미숙한 모습을 보이는 행동이라 피한다.
질문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교육 현장은 사교육을 통해 선행학습이 워낙 널리 퍼져 있어 수업 시간에 질문을 하게 되면 '너 이것도 공부 안 하고 뭐 했어?'이라는 핀잔을 듣고, 대학 특강 시간에는 '일찍 마칠 수 있는데, 뭐하는 거야!'이라며 때때로 욕까지 들을 때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엇을 모를 때 쉽게 손을 들어서 질문하지 못하고, 뒤돌아서서 혼자 알아보면서 공부를 하거나 그냥 해프닝으로 넘길 때가 많다. 이건 우리 학생이 다니는 학교만이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 걸쳐서 쉽게 볼 수 있는 부분인데, 심지어 정치인도 똑바로 알지 못했던 때가 많았다.
정치인이 역사와 각 정부 시스템에 대해 똑바로 알지 못할 때 많은 비판을 듣지만, 그들이 제대로 사과를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들은 비판을 받더라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생각하며 침묵을 지키다가 여론이 가라앉으면 다시금 새로운 화제를 들고 등장해서 '나 이런 사람이야!'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치인과 달리 연예인이 이런 모습을 보여줄 때는 정치인에 향하는 몇 배의 질타가 쏟아진다. 분명히 도덕적인 책임감을 더 크게 느껴야 하는 건 정치인인데, 연예인에게 가해지는 도덕적 책임에 대한 규탄은 훨씬 더 심하다. 아마 이건 연예인이 대중에게 쉽게 영향을 미치는 탓이 아닐까.
설현 인스타그램에 달린 댓글들, ⓒ설현 인스타그램
얼마 전에 걸그룹 AOA 설현과 지민이 역사 문제로 큰 해프닝을 겪었다. 그녀들은 방송 채널을 통해서 어떤 인물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안중근 의사를 '긴또깡'이라고 가볍게 말하거나 일반 사람이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기본적인 역사 지식을 알지 못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너무나 경솔했던 가벼운 태도가 도화선)
이러한 비판이 인터넷에서 쏟아질 때는 곧바로 문제의 주인공들은 대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판 수위가 점점 커지자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설현과 지민이 공식 사과 글을 올렸고, 해당 방송사 측에서도 사과하면서 일이 어느 정도 일축되기를 기대했겠지만 경솔한 태도에 대한 비판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인터넷상에서는 10대 시절에 공부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가수가 되기 위해서 연습생으로 시간을 투자한 그녀들이 모를 수도 있다는 의견. 연예인은 10대 청소년과 일반 대중에게 쉽게 큰 영향을 미치므로 기본적인 역사는 알아두어야 한다는 의견. 이 두 의견이 서로 부딪히면서 편이 나누어져 있는 상태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자의 의견에 좀 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후자의 의견도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들은 우리와 사는 세계가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우리가 일반적인 교육을 배울 때 그녀들은 땀 흘리면서 연습을 했고, 우리가 오늘 방송과 사진으로 그녀들을 볼 때 그녀들은 방송과 사진의 주인공이었다.
애초에 걸어온 길이 너무 달라서 어떤 평가 잣대 하나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설현과 지민의 지금 논란은 역사 문제를 두고 너무 가벼운 행동을 해버렸기에 받는 일어난 논란이라 편을 쉽게 들 수가 없다. 방송사에서도 이런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글은 지민 인스타그램에서,
나는 솔직히 이 두 사람의 이름을 잘 몰랐다. 설현은 하도 여기저기서 설현이 대세라는 말을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AOA이라는 그룹 자체를 전혀 몰랐다. 이건 일방적인 상식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어떤 비판도 듣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개인의 기호에 따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개인의 기호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관심이 없으면 모를 수도 있다. 설현과 지민의 역사 무지 논란이 잘못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금 이 글을 적는 나와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역사 지식 중에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부분이 훨씬 더 많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으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솔직하게 가슴에 대고 물어보자. 과연 나는 얼마나 역사를 알고 있을까? 방송을 통해 본 설현과 지민이 맞추지 못한 인물을 우연히 우리가 알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게 더 많다. 한국사가 수능 필수 과목으로 지정된 것도 최근의 일이라 '상식'으로 말하는 역사를 얼마나 알지 모르는 일이다.
<1:100> 같은 퀴즈 프로그램에서 역사 상식 문제가 종종 나오면 답을 맞히지 못하는 사람도 자주 나온다. 우리는 그들을 비판하지 않지만, 단순히 연예인이라고 해서 설현과 지민을 지금 이렇게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나는 설현과 지민이 역사를 몰랐던 게 문제가 아니라 방송 기획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녀들이 <1:100> 같은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잘 모르겠어요. 저희는 배울 기회가 없었거든요.'이라며 솔직하게 말했다면 이 정도로 큰 비판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배우지 않았기에 모를 수도 있다는 공감이 퍼지면서 '그래도 안중근 의사님은 알아둡시다~.'이라는 여론이 형성되지 않았을까?
불과 얼마 전까지 대세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광고계를 집어삼키고 있던 설현은 이번 사건으로 급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좀 더 일찍 솔직하게 사과를 했다면 논란이 커지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논란이 계속되자 한 뒤늦은 사과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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