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필리버스터, 우리는 역사의 한순간에 있다
- 시사/사회와 정치
- 2016. 2. 25. 07:30
대 테러방지법의 악용을 막기 위한 더불어민주당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작년에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의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한 드라마 <어셈블리>는 아직도 많은 여운이 남아있다. 올해 치러질 2016년 총선에서 '진상필' 같은 정치공학이 아니라 진짜 정치를 하는 국회의원이 등장하기를 간절히 바랐고, 정치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길 바랐다.
한국은 '투표하는 사람만 투표한다.'는 말이 일상적으로 사용될 정도로 정치에 관한 관심이 많지 않다. 아니, 애초에 관심이 많지 않다고 말하는 것보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너무 커 정치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고 말하는 게 옳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강물이 바다를 포기해버린 것처럼.
한국에서 정치적 무관심과 불신이 이 정도로 달한 이유는 분명하다. 정치인들이 시민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 즉, 재벌과 가진 자를 위한 정치를 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에서 보여준 제 식구 감싸기와 깊숙이 침투한 권력과 기업의 유착 관계는 한국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드라마 <어셈블리>의 주인공은 부적격한 총리 임명을 막기 위해서 필리버스터도 했고, 뜨거운 가슴으로 정치와 시민을 마주했다. 드라마 <어셈블리>의 마지막 화를 보면, 주인공 진상필은 길이 남을 명연설을 한다.
"박춘섭 의원님, 국가는 물주가 아니라고 하셨죠? 그러면, 국민은 물주입니까? 물주에요? 우리 국민이 뼈빠지게 일하고, 나라 지키고, 세금도 냅니다. 그게 의무라고 헌법에 나와 있으니까!
배달수 씨도 그래요. (중략)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길바닥에 내동댕이 쳐졌어요! 그 사람 누가 일어서게 도와줍니까? 누가 일어서게 도와줘요!?
국가에요. 국가입니다.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국가의 의무니까.
국민은, 호구도 물주도 아닙니다! 국민들은 이 국가의 주인입니다.
그래서 저는요, 국민들에게 믿게끔 해주고 싶어요. 국가가! 나를 절대 버리지 않는다고! 국가가! 내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도움을 준다고! 그래서 나는, 나는, 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서 내가 지금도 앞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중략)
국민이 국민의 의무를 다했을 때는! 국가가…!
국가가…! 의무이고 국민이 권리입니다아아!"
진상필 의원, ⓒkbs2 어셈블리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오마이뉴스 남소연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오마이뉴스 남소연
국민이 국민의 의무를 다했을 때는 국가가 의무이고, 국민이 권리이다.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이 말이 현실 정치에서 지켜지는 모습을 보는 일이 무척이나 어렵다. 납세의 의무를 지키고, 국방의 의무를 지키고, 법을 지키면서 살아온 국민이 법 앞에서 너무나 무력하게 무너진 적이 많았다.
세월호 진위 조사는 이미 정치공학으로 번져 그 의미가 사라져버렸고, 북한의 도발에 앞도 뒤도 생각하지 않은 개성공단 철수 명령과 사드 배치 논의의 일방적인 발표로 한국은 외교에서도 '무능하다.'는 평가를 안팎으로 받고 있다. 과연 한국 정부는 어디까지 무능하고, 남 탓으로 일관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아주 중요한 역사적 분기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월 23일 오후 7시부터 국회에서는 대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기 위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야당 의원들의 주도하에서 끈질기게 이어오고 있다. 김광진 의원을 시작점으로 하여 벌써 몇 명의 의원이 장시간 토론을 하고 있다.
도대체 대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기에 필리버스터를 통해서 막으려고 하는 걸까. 우리는 그 의미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무관심한 채로 법안이 통과되는 모습을 보거나 마냥 필리버스터를 하는 정치인에게 '쇼하지 말라'며 말하는 게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ㅇ' 페이스북
위 이미지는 페이스북 친구가 공유한 글을 가져온 것이다. 우리 시민들은 메시지로 오는 선거 예비후보들의 문자를 보면서 짜증이 나고, 내 번호가 유출된 사실에 불편한 감정을 보인다. 하지만 대 테러방지법으로 아예 합법적으로 우리의 정보를 거리낌 없이 보겠다는 정부에는 아무런 말이 없다.
조금 이상하다. 마치 눈앞에 보이는 불편함은 짜증이 나지만, 눈앞에서 보이지 않는 불법 감청과 데이터 수집은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 테러방지법은 지금보다 더 심각히 우리의 개인적인 정보를 침해하고, 지난 대선 때 국정원이 한 불법행위를 합법으로 만들어주는 법이다.
우리는 대 테러방지법이 왜 통과가 되어서는 안 되는지 경험으로, 아주 기본적인 지식으로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당이 '국민의 안전을 위한 대 테러방지법'이라는 문구만 보면서 대 테러방지법으로 도대체 우리 시민을 어떻게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진짜 큰 문제를 보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필리버스터 첫 번째 주자 김광진 의원은 '이 일을 통해서 시민들이 왜 대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안 되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나는 이번 필리버스터가 당연히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대 테러방지법이 무슨 의도인지 관심을 가질 테니까.
플라톤은 말했다.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를 당하는 일이라고. 지금 우리가 두 발 쭉 뻗고,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세워진 여기에서 지낼 수 있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 많은 사람 덕분이다. 때로는 부당한 권력에 맞섰고, 때로는 몽둥이질을 당한 사람들….
우리는 지금 아주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박근혜 대통령 이후 절대 왕정 시대 같은 모습을 보이는 정부의 모습에 나라 안팎으로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어떤 페친은 이번 야당의 무제한 토론을 '민주주의의 마지막 화려한 불꽃을 보는 것 같다'며 걱정했다. 지금 이 가치를 우린 지킬 수 있을까.
4월 13일 20대 총선. 국민이 국민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국가는 절대 국민을 의무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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