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아동 학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 시사/사회와 정치
- 2016. 2. 19. 07:30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한국 아동 학대의 실태
인천에서 부모의 폭행에 가출을 결심하여 보호된 한 소녀의 사연으로 전국적으로 장기 결석 아동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교육부의 뒤늦은 점검단속을 비판하면서도 사람들은 '저런 특별한 예가 몇 명이나 있을까?'이라며 조금 가볍게 보았을 텐데, 현실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벌써 뉴스를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된 사건만 열 손가락을 채울 정도이고, 아직도 확인되지 않은 아이들의 행방은 또 얼마나 우리에게 충격을 줄지 모르게 되었다. 이번에 밝혀진 충격적인 몇 가지 사실은 차라리 폭행만 당했다 가출할 힘이 있었던 소녀의 사연이 나은 수준이었다.
친부모가 아이를 폭행하다 사망하자 토막을 내어 보관하고, 대학 교수이자 목사가 자신의 아이를 폭행하다 사망하자 기도로 되살린다면서 시체를 숨기고, 엄마라는 사람이 아이를 폭행하다 사망하자 주변인과 함께 산에 암매장해버리는 일이 차례차례 보도되며 할 말을 잃어버리게 했다.
우리는 그들을 아주 사소한 작은 예로 말하면서 '10명의 정상적인 사람 중에서 1명꼴로 있는 비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가정불화가 원인이 되는 이런 아동 학대는 이미 우리 사회 깊숙이 스며들어있다. 점점 이혼율도 높아지고 있어 가정불화도 함께 늘었기 때문이다.
ⓒjtbc 뉴스
이런 아동 학대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매번 아동 학대 사건 때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데, 이는 몇 번을 반복해서 말했어도 또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생색내기에 그치는 조사와 제도 논의는 절대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아동 학대를 보는 시선에 대해서 달라져야 한다. 이번에 자신의 딸을 지인과 함께 산에 암매장한 부모의 지인은 '애를 잡으려면 확실히 잡으라.'라며 학대 행위를 부추기는 발언을 했는데, 이런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보기 드문 예가 아니다. 아마 글을 읽는 사람도 들어본 발언일 것이다.
맞을만하니까 맞았지, 매가 약이다… 같은 발언은 폭력을 폭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발언이다. 이런 발언은 가정 교육에서 출발하여 학교, 그리고 나아가서 군대 같은 폐쇄적인 집단과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 내에서도 흔하게 사용된다. 한 마디로, '다 피해자가 모자라기에 그런 것이다.'라는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 잔인한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체벌금지법과 함께 그동안 이루어지던 체벌을 폭력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훈육 차원의 체벌에 대한 폭력성은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jtbc 뉴스
특히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은 오래전부터 도를 넘는 모습이 많았는데, 최근에 들어서 보이는 모습은 거의 강력 범죄 수준에 이르고 있다. 우리는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서는 가해자에 대해 관용 없는 처벌을 강화하는 동시에 지속해서 사회적 차원에서 노력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유교적 영향이 컸던 한국은 아직도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아이들의 장래희망은 단순히 부모들의 희망으로 바뀐 게 오래되었고, 애초 인성교육이나 사람에 대한 기본적 도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세대가 부모가 되는 시점에서 학대는 더욱 늘어났다.
아동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부모가 되어서도 그런 학대를 반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졌는데, 어쩌면 우리가 지금 보는 사건들은 그 반복되는 학대가 더 잔인하게 바뀌어 버린 게 아닐까? 나도 맞으면서 컸으니까, 자신의 자신도 그대로 해버리는 것이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죽을 줄은 생각해보지 못했다.'라며 변명할 때도 있을 텐데, 나는 애초에 '죽으면 범죄, 안 죽으면 교육적 차원의 체벌'이라는 생각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도 가정 내 아동 학대(신체적 폭력, 정신적 폭력)를 모두 강하게 처벌하거나 재교육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회 재교육 시스템을 통해서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게 하고, 혼자서 아이를 보는 일이 어렵다면 사회적으로 지원을 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금도 한창 우리나라에서는 보육 예산으로 갈등이 빚고 있는데, 아동 학대가 증가하는 데에는 이런 문제도 분명히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동학대를 무조건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개인도 명백히 잘못하기는 했지만, 장기 결석 아동에 관한 관심과 조사가 없었던 현행 제도도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뒤늦게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아마 그 과정에서 희생된 아이들의 수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결코 나와 먼 이야기가 아닌 아동학대. 우리는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아직도 아이들의 의견을 귀담아듣거나 존중하기보다 이기적인 어른의 욕심을 먼저 앞세우고,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똑같은 성인이 되어 학대를 반복하는 뫼비우스의 띠는 이제 그만 끊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를 낳아서 기르라고 말하면서 제대로 지원도 해주지 않고, 성적과 결과로 아이와 학교를 평가하는 어른들이 있는 이상 우리나라에서 '교육적 차원'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서 벌어지는 '아동 학대'는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을 배우지 못하면, 그것은 사람이라 말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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