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를 읽고
- 문화/독서와 기록
- 2016. 2. 18. 07:30
한껏 게으르고, 온전히 쉴 수 있는 삶을 찾아 떠나보고 싶다.
이제 겨울이 지나가고, 우리에게 봄이 서서히 찾아오고 있다. 책을 읽고 있으면, 뒷산에서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와 마치 책 속의 세상을 온전히 여행하는 기분을 맛보게 해준다. 베란다로 보이는 산에서는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하얀 구름이 수놓아진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책을 읽고 있으면 신선이 된 기분이다.
하지만 이윽고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우리는 전쟁과 핵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를 말하는 정치인들을 볼 수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어쩌면 이렇게 다툼을 좋아하고, 시민들의 공포를 부추기는 사람이 한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이 되고, 정치인이 되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를 당한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우리가 그동안 정치를 외면한 탓에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이 저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거짓말, 막말, 접대를 좋아하는 탐욕적인 사람이 저곳에 앉아 있어 우리 사회는 엉망이다.
헬 조선으로 불리는 한국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꿈꾸고 있으면, 이윽고 그저 다른 나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많은 젊은 청년이 이민을 가고 싶다고 말하고, 한국 사람들의 버킷 리스트에 여행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 이유는 숨 쉬는 것조차 답답한 여기를 잠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 읽은 책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는 겨울이 다가오면, 한국을 떠나 남쪽 나라에서 체류한 저자의 여행을 담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종종 저자가 말하는 한국의 어떤 부분에서는 잠시 마음이 가라앉기도 했지만, 책은 따뜻한 봄을 맞은 휴식 같았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노지
아마 내가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를 유독 편하게 읽은 이유에는 올해 내가 대학 복학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은 다녀보았지만, 전혀 어떤 가치를 발견할 수 없었던 대학 생활을 비싼 등록금과 왕복 4시간에 이르는 거리를 오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답답했다.
오죽하면 '대학 개강일 이전에 로또 복권에 당첨되면, 당장 때려치워야지!' 같은 허무맹랑한 상상을 하기도 하고, '대학 등록금 때문에 악착같이 모은 적금으로 확 여행이나 떠날까?' 같은 용기가 없어서 실천하지 못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의미를 모르는 대학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게 너무 아까웠다.
한국에서는 대학에 다녀야 하는 일에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다.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이고, 갈 수 있다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어야 하는 일이다. 어떤 학교의 이사장이 올해 SKY에 입학한 사람이 적다며 교사를 질책했다고 한다. 참, 한국에서는 느긋한 여유를 가지며 사는 일이 어려운 것 같다.
그런 까닭에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는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곳에서 한 달 동안 머무르며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사람을 만나는 저자의 여행은 부러웠다. 답답한 수업이 있는 대학 캠퍼스를 오가는 일과 비교하면 정말 여행이 백배, 천 배는 더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 같았다.
인적이 끊긴 거리를 걸어 돌아오는 길, 수연 씨가 못다한 이야기를 털어놓듯 말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바텐더라고. 한국에서는 바텐더에 대한 편견이 너무 심해서 용기를 못 냈는데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단다. 바텐더 자격증도 따놓았다는 스물다섯 그녀는 돌아가면 새로운 길을 걸어가겠구나. 그래, 여행이 우리가 품은 질문에 답을 주진 않지만 어딘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등을 떠밀어주긴 하지. 일단 나아가면 결국 답도 찾을 수 있으리라. 아니, 평생 답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의 의미는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던져진 질문과 마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수연 씨도, 하나 씨도, 나도 저마다의 질문을 품고 이곳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본문 74)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노지
블로거 김동범(바람처럼:링크) 님은 지금 세계 여행을 하고 있다. 무작정 여행을 떠나서 무작정 돌아다니고 있는 그분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든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과감히 내려놓고 여행을 떠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저자도 마찬가지다. 6~7개월 일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여행을 떠나는 일을 현실에서 몇 명이 과감히 선택할 수 있을까? 그래도 안정적인 직장, 내 집을 마련해 거주하는 일이 아직은 우리에게 최선의 일로 손꼽힌다. 솔직히 나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그렇듯이, 다른 사람도 마음속에는 자유로운 삶을 향한 갈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과 집을 오고가야 하는 대학생도, 직장과 집을 오고가야 하는 직장인도, 새 일을 찾아 떠도는 은퇴자도 모두 한결같이 자유롭게 내 삶을 살고 싶을 것이다. 인생은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일이 아닐까?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낯선 나라 발리, 스리랑카에서 알지 못했을 사람과 만나거나 알지 못했을 길을 걷는 일은 대단히 평화롭게 느껴졌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호흡을 길게 가지고 읽을 수 있는 저자의 글이 더욱 책을 평화롭게 읽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은 후에 관광 명소를 찾아가는 틀에 박힌 여행이 아닌, 길을 걸어 다니며 산책을 할 수 있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을 머무를 수 있는 여행을 해보고 싶어졌다. 당장 대학 등록금으로 과감히 떠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애써 그 마음을 책으로 여행하며 오늘을 나는 버티고 있다.
답답한 일상 속에서, 다시 마주해야 할 불편함 속에서 여유를 느껴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를 소개해주고 싶다. 여러 욕심이 뒤엉켜 불협화음을 내는 목소리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면, 잠시 책을 읽어보며 다른 곳에 있는 나를 상상해보자. 지친 몸을 일으켜줄 시간이 될 것으로 믿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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