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문화/독서와 기록
- 2016. 2. 15. 07:00
시드니에서 30일을 보내며 적은 박연준과 장석주 에세이
혹시 '시드니'라는 도시를 아는가? 나는 '시드니'이라는 도시를 잘 몰랐다. 도시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시드니 올림픽?'이라며 문득 올림픽이 떠올라 검색을 해보니 2000년도에 시드니에서 하계 올림픽이 열렸다고 한다.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람은 자신이 관심이 없는 분야는 이렇게 모르는 법이다.
시드니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항구 도시로서, 한국과 사뭇 다르게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도시하면, 나는 문득 일본의 교토가 떠오른다.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 워낙 자주 일본 문화를 접한 탓에 고요하고, 도시의 시간이 한적할 것 같은 이미지가 교토로 자리 잡았다.
한국도 분명 어디에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한적함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은 워낙 어디를 가더라도 '빨리빨리' 문화가 깊숙이 베여있는 까닭에 한적하게 흐르는 시간의 여유를 천천히 음미할 수가 없다. 길었던 설날 연휴를 다시 떠올려도 우리는 금방 알 수 있다.
5일간의 긴 휴식이 있었던 설날 연휴지만, 우리는 고향에 다녀오거나 친척들과 만나면서 바쁘게 움직였다. 쉴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한 일이라고는 출근 시간(혹은 등교 시간)에 맞추느라 부족했던 잠을 보충한 일밖에 없지 않을까? 아침 6시에 일어나야 했던 몸을 8시까지 재우는 일 말이다.
비록 그렇게 휴식을 취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휴식 중에서도 '빨리빨리'를 잊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떠올린 도시 교토의 이미지는 그 자체가 고요함과 한적한 여유를 가졌고, 오늘 소개할 책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의 두 저자가 머문 시드니 또한 고요함과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노지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는 시드니에서 30일간 머무른 박연준과 장석주 두 작가의 글을 엮은 에세이다. 1장은 박연준 작가의 글이고, 2장은 장석주 작가의 글이다. 비록 두 사람이 부부라고 하더라도 두 명의 작가가 한 권의 책 분량을 반반으로 나누어서 만든 건 재미있는 일이다.
책을 읽는 동안 두 사람의 시선이 겹치는 부분이 있었고, 같은 사건을 두고 다른 시점에서 적은 글이 상당히 재밌었다. 특히 남자와 여자로 성별이 다른 두 사람이 낯선 도시 시드니에서 보내면서 눈길을 준 장면이 다르다는 게 분명하게 드러났다. 역시 부부라고 해도 보고, 생각하는 건 다른 것 같았다.
박연준 작가의 글은 감성이 좀 더 깊게 묻어나왔으며, 장석주 작가의 글은 좀 더 시드니의 풍경과 만난 사람의 일이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역시 여성이 조금 더 감성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사람들의 말이 맞는 걸까? 책을 읽으면서 느낀 이런 차이가 시드니를 좀 더 즐겁게 상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항구도시인 시드니는 얼마나 아름다운 빛을 머금고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볼 수 있을까? 나도 시드니에 가면 하루가 48시간인 것처럼 느껴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책을 읽고, 조용한 방에서 타닥타닥 아이패드 블루투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간혹 새소리를 들으며) 글을 적는 것뿐이라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시드니의 풍경,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시긴 고요하게 흐른다는 건 도대체 어떤 걸까? 그저 '빨리, 빨리' 문화를 고집하는 한국에서는 좀처럼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아침과 낮은 내내 일과에 매달리느라 정신이 없고, 밤에는 불을 켠 네온사인과 시끄러운 음악이 차지하는 한국에서는 '고요함'이라는 단어 자체를 말하는 게 어렵다.
얼마 전에 뉴스 보도를 통해서 한국의 젊은 세대 중 상당수가 '강박증'이라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거나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특정 행동을 고집하는 상태를 강박증이라고 말하는데, JTBC 뉴스에서 인터뷰했던 정신과 전문의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20, 30대 젊은이들이 처해있는 상황들, 미래에 대한 불안. 긍정적인 걸 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불확실성 등이 기여하는 것 같습니다." (원문 링크)
한국에서는 언제나 미래를 위해서 오늘을 살아야 하고, 당장 할 일이 없더라도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긴 그런 습관이 '빨리빨리' 문화를 더욱 재촉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특정 행동을 고집하게 된 것은 아닐까?
성공에 대한 집착은 놀라울 정도로 강하지만, 우리는 그 집착과 비례하여 불안과 불신감 또한 상당히 높다. '오늘을 즐기게 되면, 내일 후회한다.'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우리는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춰서 고요하다고 말할 수 있거나 하늘을 바라보며 다른 생각을 하는 일조차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걷기로 했다>에 이런 글이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과도한 경쟁으로 사람들의 피를 말린다는 데 있다. 우리는 이유 불문하고 어릴 때부터 과도한 경쟁에 휩싸여 지냈고, 끊임없이 수치로 계산된 평가를 받아왔으며 다른 사람과 비교당했다. 이기지 못하면 뒤처지는 것이고, 앞서지 않으면 지는 것이라고 배웠다. 2등은 덜 값진 것이라고 배웠다. 무엇이든 옆 사람보다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만들었다. 도대체 왜? 왜 옆 사람보다 항상 잘해야 하는 것일까?
한국이 싫어서, 다른 나라로 떠나겠다는 젊은이들에게 우리는 뭐라고 말해줘야 할까? (본문 83)
한국에서 우리는 어디를 가더라도 남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살아야 한다. 남과 경쟁하지 않는 것은 도태되는 것이라는 비판을 듣는다. 푸른 하늘이 화창한 날, 혼자서 책을 읽거나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은 분에 넘치는 일이 되었고, 빠르게 흐르는 시간의 낙오자가 된다는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여유 있게 살 수는 없을까? 흐르는 시간이 적막과 같을 때도 우리는 잠시 그 고요함에 빠져서 머릿속에 아무것도 아닌 일을 떠올려볼 수는 없는 걸까?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책을 읽으며 두 작가가 보낸 30일의 시드니는 몇 번이고 나에게 묻게 했다.
햇살을 흠뻑 받은 꽃들이 만개한다. 연보라색 등꽃들이 숭어리숭어리 탐스러운 꽃송이들을 늘어뜨리고, 체리블라썸은 솜사탕 같은 분홍꽃들을 가지마다 활짝 피웠다. 세계와 완벽하게 차단된 교외 생활은 무중력 상태와 같다. P와 나는 고요하고 청정한 지역으로 피정을 나온 사람들 같다. 우리는 이 단순하고 느리고 조용한 삶이 좋다. 분주한 서울과는 다른 삶의 속도,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시드니에서 우리는 지나온 삶의 시간들을 돌아본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소음 속에서 쫓기는 짐승처럼 살았던가! 서울에서의 하루는 왜 그리도 빨리 지나가버렸던가? (본문 124)
나는 한국의 평범한 한 도시 속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저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애써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자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고,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잔다. 이것도 어쩌면 일종의 강박증일지도 모른다. 여유를 느끼고자 하지만, 여유가 좀처럼 여유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천천히 걸으면서 지금 걷는 길의 아름다운 두려움을 알아야 한다. 지나가면 우리는 뒤돌아 걸을 수 없다. 책의 제목이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는 길을 걷는 동안 빨리빨리 가느라 찰나에 불과한 지금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알아차리지 못할까 서로에게 건네는 말이 아닐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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