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맞는 교사가 나오는 이유는 가정교육 때문?
- 시사/학교와 교육
- 2015. 12. 31. 07:30
골프채와 나무 막대기로 맞은 만큼 복수를 하는 아이들?
어제 나는 중학교 시절에 선생님으로부터 골프채와 나무 막대기로 맞았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시절에 겪은 경험은 '선생님이 일반 학생에게 가하는 폭력'만이 아니라 '일반 학생이 선생님에게 가하는 폭력'도 함께 존재했다. 여 선생님에게 성희롱을 하거나 늙으신 선생님을 조롱하는 일이 있었다.
오늘(30) 아침 뉴스를 보니 '매 맞는 선생님'에 대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학교 교실에서 몇 명의 아이들이 선생님을 빗자루로 때리거나 주먹으로 치거나 욕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선생님과 아이 사이에서 친밀한 유대관계는 온데간데없이 때리는 선생님과 때리는 아이들이 흔한 세상인 것 같았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아이들로부터 매 맞는 선생님의 사건을 접하는 건 굉장히 드문 사례가 아니다. 과거에도 몇 번이나 뉴스를 통해 보도되면서 '무너진 교권', '바닥으로 추락한 학교' 등의 수식어를 통해서 우리 학교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교권 침해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웃긴 일은 그렇게 교권 침해 논란이 일어나면, 항상 선생님이 아이를 폭행하는 사건이 뒤따르듯이 보도되면서 다시 학생 인권 침해 논란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인권. 과연 어떤 인권이 먼저 개선되어야 우리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이런 문제가 사라질 수 있을까?
매 맞는 교사, ⓒSBS
내가 중학교에 다녔던 시절에도 아이들이 선생님을 괴롭히는 일은 자주 있었다. 여기서 선생님을 괴롭히는 아이들은 뒤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하는 일진이 아니라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많았다. 뒤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일진 행세를 하는 아이들은 자기 세력권에서 놀았고, 공부를 잘하는 가짜 모범생이 범인이었다.
가짜 모범생 몇 명이 괴롭히는 대상은 담임 선생님이나 젊은 남자 선생님이 아니라 항상 부임한 지 오래되지 않은 여 선생님과 기력이 빠진 노(老) 선생님이었다. '가짜 모범생'으로 칭하는 공부는 잘하지만, 인성은 꽝인 몇 명의 아이를 중심으로 하여 마치 유행처럼 선생님 괴롭히기는 반에서 번졌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상당히 유치한 일이 많았다.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대놓고 선생님을 무시하는 발언부터 시작해서 욕을 하기도 했고,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사건의 일부를 나는 4년 전 이맘때 <아이들로 인해 대성통곡을 하셨던 선생님>이라는 글로 발행한 적이 있다.
윗글을 발행한 당시에도 폭행을 당하는 교사의 사건이 보도되어 한참 논란이 되었는데, 불과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여전히 우리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SNS를 비롯해서 인터넷을 통해 내가 중학교에 다녔던 시절과 달리 더 악랄하게 괴롭힘이 일어난다.
선생님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아마 잔인한 표정으로 웃는 아이들이기도 하겠지만, 더 무서운 것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일 것이다. 자신의 말실수 하나로 대대적인 언론 플레이 공격을 당할 수도 있고, 자신의 SNS를 통해 신상 정보가 털려 아이들에게 놀림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때 목격한 아이들이 선생님을 무시하거나 깔보는 방식은 그나마 신사적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아이들이 어른 무서운 줄 모르고,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심각한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잘못인지 모른 채, 욕설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괴롭히는 일을 멈추지 않으니까.
선생님의 폭력, ⓒKBS 뉴스
그렇다면, 이런 매 맞는 교사가 나오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솔직히 이런 말을 하는 게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가정교육에서 찾고 싶다. 우리 가정교육에서 사람을 대하는 도덕, 예의, 존중 등의 필수적인 기본적인 예절을 가르치지 않고, 지나치게 독선적으로 교육을 한 게 원인이다.
현재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 중에서는 형제와 자매가 있기보다 외동딸 혹은 외동아들로 자란 아이들이 많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부모들이 한 자녀를 고집했고, 딱 한 명인 아이에게 애정을 주려고 하다 보니 이기적인 아이들이 늘어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
눈에 넣어서 아프지 않은 자식이 없다고 하지만, 그렇게 독선적으로 큰 아이들은 분명히 이후 잠정적인 문제를 가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맞벌이 부부가 많아 아이들을 맡기기 위해서 학원에 보내어 오직 공부만 시키는 환경도 점차 아이들이 사람에 대한 존중을 떨어뜨리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물론, 어디까지 가설이다. 그동안 읽은 책과 뉴스와 사설, 그리고 과거에 내가 겪은 경험과 지금 눈으로 흘깃흘깃 볼 수 있는 학교의 모습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생각한 의견이다. 하지만 일반론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요소가 곳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정교육은 아이 교육의 첫 출발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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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 기죽이지 마!", "어리니까 시끄럽게 돌아다니거나 떠들 수 있지!", "네가 뭔데 남의 교육에 간섭이야? 넌 그렇게 교육 잘 받았어? 얼마나 교육을 잘 받았으면 그 꼬라지야?" 등의 말을 듣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 아주 흔한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어른이 있으니, 어떻게 가정교육이 바로 서겠는가.
물론, 이건 어디까지 개인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부모와 아이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후퇴하는 정책 속에서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일이 어려워지고, 사람에 대한 존중보다 결과가 최선이라는 성향은 더 짙어졌다.
마치 어릴 때 선생님으로부터 골프채와 나무 막대기로 맞았던 그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고, 부모가 된 이후, 자신의 아이들을 이용해 학교 선생님께 복수하는 것 같다. 물론, 그런 악의적인 의도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교육의 비인간성은 바로 잡히지 않은 채, 반복되고 있다.
가정 교육은 모든 교육의 출발점이다. 이 출발점부터 전제 조건이 똑바로 갖춰지지 못했으니, 학교에서 벌써 어른 같은 아이들이 만만한 선생님을 괴롭히는 일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무책임한 부모가 늘어나면서 아동학대는 늘어나고, 아이들은 어른에게 당한 만큼 그대로 또 돌려준다.
2015년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 우리는 또 한 번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를 마주하게 되었다. 과연 내년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 벌써 '보육 대란'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어 희망의 불씨는 꺼질 듯이 희미하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은, 교육은, 생각은, 언제가 되어야 가능할까?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하늘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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