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소설을 다 읽은 후에 소름이 돋았다
- 문화/독서와 기록
- 2015. 12. 10. 07:30
이 소설은 허구다. 하지만 허구라고 마냥 말할 수 없어 무서웠다.
지금 한창 인터넷에 박원순 서울 시장에게 악플을 지속해서 달았던 강남구청의 댓글 부대 사건이 논란이 되고 있다. 박원순 서울 시장이 펼치는 정책은 항상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서 갈등을 빚어왔는데, 이번 댓글 부대 사건은 강남과 박원순 시장이 대치하고 있는지 보여준 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일을 보면서 혀를 쯧쯧 차지만 말고, 이런 일이 우리가 사는 사회에 어떤 정치적 영향을 줄 수 있는지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였던 시절에도 국정원에서 댓글 부대를 운영한 사실이 밝혀지며 논란이 되었지만, 우리는 그 이후의 일을 잘 모른다.
그리고 이따금 비슷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때도 그랬지. 빌어먹을 놈들!'이라며 마음속으로 욕하거나 그런 댓글 부대와 마찬가지로 인터넷 기사에 악플을 다는 것밖에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그 정도다. 보여주는 관심도 겨우 그 정도다. 솔직히 더 생각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더욱이 한국 시민이 보여주는 관심은 한 달, 길면 석 달을 이어지지 못한다. 냄비처럼 확 달아올랐다가 금세 식어버리는 이런 모습은 아직도 우리 시민 사회가 성숙해지지 못하는 원인으로 남아있다. 언제나 새로운 화젯거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정치와 사회 이슈만큼 반복되는 따분한 게 또 있을까?
댓글부대, ⓒ노지
어제 <한국이 싫어서>의 저자 장강명의 새로운 소설 <댓글부대>를 읽었다.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 소설은 댓글로 사람들을 움직이거나 조직을 와해시키는 인터넷 선동 작전을 읽을 수 있는 이야기다. <댓글부대>는 작품 그대로 '소설'이기에 '허구적 이야기'이지만, 내가 느낀 감정은 공포다.
왜 공포심을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는가, 그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댓글부대> 소설을 읽으면서 엿볼 수 있었던 우리 현실의 모습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연장선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내년 4월 총선을 맞아 분명히 존재하지 않는 댓글부대는 다시 활개를 치며 활동할 것임을 우린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무서웠다. 소설에 등장하는 '팀-알렙'처럼 전문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이 모인다면, 분명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요즘 SNS 열풍에 지나치게 휩쓸리고 있다. 누군가 SNS 상에 기발한 글이나 사진을 올리면, 우후죽순 퍼져나가 유행이 되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이제 막 개봉한 영화 <히말라야>의 독특한 인증샷도 SNS 상에서 인기를 끌면서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다음에 이 영화를 볼 생각인데, 나도 한번 찍어볼까?'하고 생각했을 정도이니, 우리가 SNS에 받는 영향은 우리의 상상보다 더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SNS 상에서 퍼지는 정보에는 출처가 불분명하고, 팩트인지 확실히 확인할 수 없는 정보가 많다. 그저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열심히 엄지손가락을 움직여서 씹을 수 있는 정보라면, 그런 것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퍼뜨린다. 비록 그것이 남에 대한 심각한 험담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그래서 양날의 검 같은 존재다. 유용하게 작용할 때는 그만큼 쉽게 기댈 수 있는 매체도 없지만, 위협적으로 작용할 때는 그만큼 두려운 매체도 없다. 한 사람이 인터넷에서 완전히 발가벗겨지고, 각종 추태가 드러나거나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일은 너무 손쉬운 일이다.
영화 <내부자들>을 보게 되면, 글 한 개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엿볼 수 있다. 어떤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쓰는 글은 쉽게 SNS 상에서 공유되고, 많은 '좋아요'를 받으며 절대적 여론 형성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것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중요하지 않다. 그냥 씹을 수 있으면 충분하다.
그래서 정치 측에서는 언제나 SNS 심리전이 가열되는 양상을 띠기도 한다. 상대방을 비난하고, 댓글 부대를 동원한 댓글을 끌어모아서 마치 이것이 대대적 여론인 듯 보도한다. 오프라인 뉴스를 보는 사람과 온라인 뉴스를 보는 사람에 대한 공략법을 따로 세우는 것이 오늘날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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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소설 <댓글부대>는 그런 힘을 무서울 정도로 잘 담고 있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 마지막 장면에 도달해가기 시작할 때 '헐? 이런 거야?'라며 약간의 놀라움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던 구성. 저자는 "제가 쓴 소설 중 가장 빠르고 가장 독합니다!"고 말했는데,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독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었고, 그리고 잠시 멈춰서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던 부분도 있었다. 책을 읽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책을 읽으면서 '과연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질문을 던져보는 일이 중요하다. <댓글부대>는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했다.
오늘날에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악의적인 글이 넘치고, 포털 사이트의 댓글을 살펴보면 서로 '너 알바지?'하며 싸우는 사람이 있다. 아니, 그 이전에 댓글에 한정하지 않고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에서 설전을 벌이며 생겨나거나 사라지는 논란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있다.
하나는 아무것도 아닌 댓글, 하지만 그 댓글이 모이고 모여서 '여론'의 색을 띠기 시작한다면 과연 누가 그런 것을 무시할 수 있을까. 적어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 있는 정치인과 연예인이라는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면, 댓글 부대의 힘은 든든한 아군이면서도 두려운 적군일 것이다.
소설 <댓글부대>를 읽은 후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이야기는 허구다. 하지만 현실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는 그런 댓글부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진실 속에 감춰진 사실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을까?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는 나는, 조용히 이 글을 마친다.
- 인사이트 : 요즘 유행하는 히말라야 관람 인증샷 http://goo.gl/oqNNrO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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