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과연 누가 정의를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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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각 <정의를 부탁해>를 읽으면서


 매일 아침에 글을 쓰기 위해서 무지 노트 한 권과 아이패드(블루투스 키보드가 달린)를 책상에 올려놓으면, '오늘은 어떤 주제의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써야 할까?'는 고민을 시작한다. 글을 쓰기 전날에 이미 아침에 쓸 글의 주제를 정해 놓았지만, 막상 책상 앞에 앉는 순간 하염없이 다시 고민한다.


 어제 본 뉴스에서 접한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을 어떻게 적어야 할지, 오늘 막 다 읽은 책의 서평을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인용할 자료 사진은 직접 찍을 것인지 아니면 구글 검색을 통해 안전한 사진을 찾을지… 등 셀 수 없을 정도의 생각이 머리를 지나쳐간다.


 그리고 막상 노트에 몇 가지 중요한 키워드를 적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하면 생각했던 대로 흐르는 글보다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흐르는 글이 더 많다. 오늘 이 글도 마찬가지다. 권석천의 <정의를 부탁해>라는 책을 읽고, 어떻게 글을 쓸지 고민하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계속 생각이 바뀌고 있다.


정의를 부탁해, ⓒ노지


 <정의를 부탁해>이라는 제목은 마치 우리에게 책임을 묻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과거 한국에서 유행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제목부터 우리에게 정의에 대한 정의를 묻는 느낌이었는데, <정의를 부탁해>는 지금 정의가 상실되어버린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의를 쳐다보게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번 생각해보자. 도대체 '정의'는 무엇일까? 우리는 여기에 일방적인 결론을 낼 수가 없다. 다수의 사람이 모두 올바르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결과를 우리는 정의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수 의견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를 과연 우리는 정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우리는 마냥 고개를 끄덕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 그게 가장 민주적인 방식이지.'이라며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리기도 할 것이다. 정의라는 것은 그렇게 하나의 시각으로, 하나의 답으로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와 정치가 현재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단 한 사람의 일방적인 의견으로 정의가 정의되는 것 같다.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따라서 진실한 사람과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 나누어지고, 선량한 시민은 극악무도한 무장 테러 단체가 되기도 한다. 도대체 정의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이미 우리가 사는 한국에서는 정의가 가지는 가치가 퇴색해버렸다. 정의를 외치는 한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불법이 만들어지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모두 악(惡)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의롭지 못한 정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한사코 '우리가 바로 정의다. 법이다.'라며 높은 의자에 앉아 있다.


 나는 묻고 싶다. 정의를 상실한 시대에 살아가는 한 명의 20대 청년으로 누구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하고, 누구를 지지해야 하고, 어떤 정의를 믿어야 하는지. 우리 20대 청년은, 아니, 지금도 우리 교육 현장에서는 철학과 질문이 배제되어 있으니 과연 이런 질문을 던질 권리를 알고는 있는 것인지.



 <정의를 부탁해>는 저자가 그동안 적은 글을 엮은 단순한 책이지만, 나는 <정의를 부탁해>라는 한 권의 책을 통해 그동안 그가 쓴 글을 읽어보며 바로 그 정의라는 것에 고민해볼 수 있었다. 그가 쓴 글은 날카롭기도 하고, 글의 끝에 글을 읽을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나는 오늘 글을 단순히 이 책은 좋은 책이었다, 그런 말로 소개하고 싶지 않았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 사라진 정의에 대한 고민을 다시 제시하고 싶었다. 지금 우리 눈앞에서는 서로 자신이 '정의'라며 다투는 많은 사람이 있고, 일방적으로 불법으로 정해버리는 인물이 있다.


 과연 이 시대에서 정의는 누구를 위한 말인가. 천천히 곱씹어 본다. '정의를 부탁한다.'는 말은 무겁게 느껴진다. 앞으로 기성 세대보다 더 오랜 시간 우리 사회를 살아갈 20대 청년 중 한 명으로, 나는 철학과 질문을 가르치지 않는 우리 시대에 저항해 다시 책을 읽어본다. 그리고 세상을 보고, 글을 쓴다.


 문득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의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문구가 떠오른다. 글을 이렇게 쉽게 적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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