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자전거로 미국 횡단에 도전한 두 청년
- 문화/문화와 방송
- 2015. 11. 26. 07:30
도전이 청춘의 의무는 아니지만, 도전할 때 청춘은 가장 빛난다.
20대의 삶을 사면서 가장 고민하게 되는 것은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나?'는 문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취업하기 위해서 평범하게 토익 공부와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를 통해서 스펙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을 보내라고 말한다. 그것이 나중에 좋은 직장을 구하고, 후회하지 않는다며….
그런데 당연하게 보이는 이 일반적인 의견은 솔직히 완전히 공감할 수 없는 의견이다. 시간이 지나면 단순히 과거에 불과한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하는 일만 한다는 것은 너무나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일에 투자하는 게 아닌, 남의 기준을 채우는 일이니까.
지난 9월에 나는 <청춘의 도전은 권리인가요, 의무인가요>이라는 글을 통해 도전에 강한 의무감을 부여하는 현실에 대한 쓴소리를 글로 쓴 적이 있다. 도전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고, 지금 당장 손에 쥔 것을 내려놓은 채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가는 일이다.
그래서 도전은 아름답다. 분명히 도전은 청춘의 필수적인 의무는 아니지만, 도전할 때 청춘은 가장 빛난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남의 기준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기준을 채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공허함만 가득한 삶에 만족도를 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미국 횡단 이우찬, 정준호 ⓒ연합뉴스
지난 주말 아침에 나는 방송을 통해서 무작정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한 두 청년의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그 바보 같은 이야기는 모험가 이동진 씨의 이야기에 감동한 대학생 이우찬 씨가 친구 정준호 씨와 함께 최소한의 비상금만 들고 뉴욕에서 LA까지 자전거를 타고 횡단한 사건이다.
우리는 종종 여러 청춘을 응원하는 강연, 책을 통해서 '와, 나도 이렇게 하면 좋겠다.' 하고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대체로 우리는 '나는 저런 용기가 없어. 나는 지금 상황이 안 좋아.' 등의 변명을 하면서 단지 감동할 뿐, 그 감동을 직접 실천하여 눈과 귀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다.
이건 나도 마찬가지다. 매번 무작정 여행을 떠나 낯선 사람을 만나고, 내가 모르는 장소가 주는 신비에 매료되는 이야기를 읽거나 듣거나 볼 때마다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만 할 뿐이다. 나에게는 마법 같은 변명이 있다. '나는 돈이 없어', '나는 영어를 못 해', '나는 오래 걷지 못해' 세 가지 변명.
책을 구매하는 데에도 종종 어려움을 겪어 주변 사람에게서 "넌 책 블로거잖아, 출판사로부터 책 몇 권 협찬해달라고 해."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출판사에 그렇게 말을 건네는 용기조차 나는 갖고 있지 못하다. 이렇게 과감히 나서는 도전 정신과 용기가 없으니, 그저 남는 건 후회일 뿐이다.
미국을 횡단한 두 청년 이우찬 씨와 정준호 씨는 나와 같지 않았다. 그들은 국내의 한 여행사와 자전거 업체로부터 후원을 받아 미국행을 준비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여행자 커뮤니티를 통한 도움, 자전거를 타고 미국을 다니며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미국 횡단에 성공했다.
과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국에서 과감히 횡단을 시작한 그들은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낸 것이다. 지난 토요일 방송 KNN의 <청춘 횡단 보고서>를 통해 그들을 이야기를 보면, 처음에는 무작정 '내가 왜 이 짓을 하지?' 하며 후회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해낼 수 있었다.
누군가는 뻔한 이야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뻔하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실천하지 못하는 도전이라 그들을 시기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무작정 건너가 횡단을 시도한 이우찬 씨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숨겨진 자신을 발견하는 경험이었다."이라며 여행의 가치를 말했다.
그리고 중간에 무릎의 심한 통증으로 완주하지 못한 정준호 씨를 위로할 때도 "완주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의미가 있다. 실패가 아니다. 4,000km를 오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모든 것이 너의 것이다."이라는 말을 했다. 도전의 가치를 가장 잘 말해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것 외에는 생각할 수 없어요, ⓒ아이돌 마스터
꿈을 좇아 도전한다는 건 바로 그런 게 아닐까. 남들처럼 평범하게 일상을 보내면서 똑같은 취업의 문을 두드릴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일상을 과감히 버린 이후에 도전한다는 것이 '진짜 도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꿈을 바라보며, 내 일상을 버리는 것.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하지 못하는 일이다.
도전이 가지는 가치는 결과를 이루어낸다는 것에 있지 않다. 도전이라는 그 과정을 즐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말은 나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도전을 해보지 못한 나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수 없는 공상에 불과하다. 이우찬 씨처럼 진짜 도전을 한 사람의 인생이 감동을 줄 수 있는 말이 된다.
장강명의 소설 <표백>을 읽어보면, 자살 사이트를 운영했던 세연이 줄기차게 언급한 "Why do you live?"이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 아직도 많은 청춘이 자신에게 '내가 왜 이 일은 하는가? 나는 왜 사는가?'이라는 질문을 던지지 못한 채, 무작정 해야 할 일만 하려고 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나 또한 해야 할 일을 만들어 그 일을 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쫓고 있는 한 명에 불과하다. 블로그라는 내 공간을 통해서 1인 미디어로 성장하기 위해서, 내 이야기를 적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은 도전일까 아니면, 도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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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문에 확실한 답을 찾지 못했지만, 나는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기에 블로그를 통해 내 이야기를 적는 일을 꾸준히 할 생각이다. 어쩌면 이것 또한 '도전'일 일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묻고, 내가 걸어온 길에 반성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일이니까.
무작정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한 두 청년의 이야기는 다시금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유럽이나 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아니다. 작년 이맘때 시작한 피아노 연습에 매진하는 일이다.
혼자서 연습한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알아주지 않는 일이고, 뒤늦게 시작한 피아노라 연주하고 싶은 곡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어려움을 강요받는다. 피아노로 먹고살겠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 없고, 그냥 내가 연주하고 싶은 곡을 연주하며 언젠가 스포트라이트가 내려오는 무대에 서보고 싶다는 욕심뿐이다.
바보 같은 이야기다. 그렇기에 무모한 도전이고, 그렇기에 해보고 싶다. 아주 어릴 적에 나는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다.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피아노를 배우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다시 피아노를 하는 데에 분명히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나의 작은 노력이, 결국은 나를 만들 것으로 믿는다.
청춘에게 도전은 의무가 아니지만, 도전하는 청춘은 확실히 빛난다. 오늘 나는 빛나는 도전을 하고 있을까? 스스로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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