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최선의 삶을 산다는 건 어떤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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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 장편 소설 '최선의 삶'을 읽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라.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 최선을 다해야 꿈을 이룰 수 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 삶을 살아왔다. 어릴 때부터 최선을 다해서 공부해야 좋은 성적으로 시험을 마칠 수 있었고, 최선을 다해서 성실히 학교에 다녀야 모범생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험난한'이라는 수식어로 표현하기에 부족한 부조리한 경쟁 속에서 최선을 다할 것을 요구받는다.


 도대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뭘까? 우리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세상은 바뀌지 않고, 우리의 삶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자리에서 아무리 애를 쓰더라도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들과 달라질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이 좁은 무대 위에서 주인공이 되고자 발버둥을 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솔직히 이건 부정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은 절망이 익숙한 이곳에서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다. 그런데 이를 부정한다는 것은 지금 사는 삶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행동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부정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한사코 부정적인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면, 어떤 정치인은 "그것이 패배주의 역사교과서를 통해서 잘못 배운 탓이다."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 주장에 나는 "당신이 보여준 비겁한 삶의 방식이 세상을 이렇게 살 수밖에 없도록 했다."고 오히려 더 목에 힘주어 말하고 싶다.


최선의 삶, ⓒ노지


 김훈 작가의 <라면을 끓이며>를 읽다가 알게 된 문학동네의 문학 소설 <최선의 삶>은 지금 우리 한국 사회에서 드러나지 않는 한 부분을 드러낸 소설이었다.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도 옳지 않은 말일지도 모른다. 이미 가출 청소년의 그림자는 곳곳에서 얼룩지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한 지적 장애인을 상대로 협박하고 구타를 한 여고생들에게 검찰이 법정 최고형을 구형한 기사를 읽어보았다. 기사는 화제성을 위해서 여고생과 가출 청소년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가출 청소년의 뒤에는 더 속이 새까만 어른도 함께 있었다. 옅은 악과 진한 악이 있던 거다.


 가출 청소년도 문제이지만, 가출 청소년을 이용하는 것도 우리 시대의 큰 사회적 문제다. 소설 <최선의 삶>에서는 이러한 가출 청소년의 방황을 읽어볼 수 있었다. 방황, 어쩌면 이 말은 이 소설을 말하는 데에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그냥 최선을 다해서 살았으니까.


 최선을 다해서 산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다르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언제나 옳고, 타당하고, 정의로운 일을 추구하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진지하게 대하는 삶이 바로 최선을 다하는 삶이다. 여기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은 오직 나만 가능한 일이다.


 <최선의 삶>의 주인공 강이는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동안 학교 폭력과 가출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언제나 남자아이의 시선으로 읽었기에 여자아이의 시선으로 읽은 이번 소설은 신선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소 말하기 어려운 사건의 반복과 충격적인 결말은 긴 여운이 남았다.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와 <표백> 소설을 읽을 때도 '소설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에 읽은 <최선의 삶>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여전히 최선을 다하는 삶을 말하지만, '최선'이라는 단어를 말하더라도 그 단어가 지닌 특수성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한다.


 최선을 다하는 삶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는 무작정 최선의 삶을 살고자 아등바등한다. 싫어하는 술도 상사와 선배가 술잔을 건네주면 목구멍으로 넘기고, 대학교에 찾아온 대통령의 방문을 반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한쪽 귀로 흘리면서 우리는 눈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려고 한다.


 무엇이 최선의 삶일까. 책을 읽는 동안 무작정 그런 고민을 했다. 지금도 나는 최선을 다해서 살려고 했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정한 일에는 격분하며 글을 썼고, 읽은 책은 최선을 다해서 후기를 썼고, 허무의 감정이 나를 집어삼켰을 때에는 무작정 피아노를 연주했다.


 과거, 결코 시간을 가치 있게 보냈다고 나는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이 시간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최선과 다를 수 있다. 매사 삐딱하게 세상을 바라보며 '그러니까 넌 안 돼.'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항상 듣는다. 어제도 들었다.


 그래도 나는 이게 최선이라 믿는다. 믿을 수밖에 없다. 이나모리 가즈오 선생님 또한 선한 의지로 최선을 다하라 말씀하셨고, 바닥만 보던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게 해준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또한 그랬다. 그런 까닭에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 후회하면서, 고민하면서, 울면서, 발버둥 치면서.


꺼진 텔레비전 앞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있었다. 나의 미래처럼 캄캄했다. 나는 미래를 예측해본 적이 없었다. 미래를 다짐해볼 때는 많았다. 언젠가 먼 곳까지 가볼 것이다. 먼 곳에서 더 먼 곳을 향해 가며 살 것이다. 이불 속에서 얌전하게 죽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종류의 다짐이었다. 다짐으로 점철된 미래를 펼쳐놓았다. 마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예언이 내게는 다짐뿐이었다. (본문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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