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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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으로 이루어지는 우리가 사는 삶의 기억과 이야기


 장강명이라는 작가는 참 매력적인 작가였다. 실제로 그를 만난 적은 없지만, 그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와 <표백> 두 작품을 읽으면서 그가 그리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단순히 이야기 하나도 눈을 떼지 않고 읽을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글을 통해 현실 속의 나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나는 거꾸로 그의 소설을 읽고 있는데, 이번에 읽은 작품은 지난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라는 소설이었다. 그믐의 사전적 의미는 음력으로 그달의 마지막 날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작품을 다 읽은 지금도 제목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다.


 책의 마지막에 남자와 여자가 헤어지는 날이 그믐이고, 남자가 세상을 거짓말로 색칠하는 날이 그믐이었다는 것 말고는 딱히 의미는 없다. 애초에 모든 소설이 이야기를 대표하는 상황을 가지고 제목을 정하는 경우가 많으니 제목에 '그믐'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믐, ⓒ노지


 이번에 읽은 장강명의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앞에서 읽은 <한국이 싫어서>와 <표백>과 조금 다른 형식의 작품이었다. 과거에 나는 이사카 코타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통해 사건의 순서가 뒤섞인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번 <그믐> 또한 같은 설정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의 특이점은 단순히 사건의 시간적 순서가 뒤섞여있다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마치 흩어진 이야기를 손에 잡히는 대로 읽는 듯한 기분이다. 그래서 책을 꼭 끝까지 다 읽어야 마지막에 그 퍼즐을 맞춰지면서 남자와 여자, 그리고 한 아주머니의 이야기가 보인다.


 나는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솔직히 '특별하다'는 느낌은 책에서 받지 못했다. 학교 폭력이라는 소재를 사용해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의 이야기 전개를 잠시 어긋나게 해서 패턴을 거부하는 결론은 인상적이었지만, 과연 이런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나는 학교 폭력 피해자였기에, 학교 폭력과 관련한 사건은 늘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았다. 가해자의 인생이 그 처벌로 어떻게 무너지든,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에게 보복을 당해서 죽임을 당하든 큰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도 당연하게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 아니겠는가.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서는 단순히 그렇게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갈등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갈등을 보여준다. 피해 학생에게 살해를 당한 가해 학생의 부모가 느끼는 심정은 함께 뒤섞여 불협화음을 내는 이야기가 그믐의 중심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불협화음은 속죄라고 말할 수 있을까? 비록 자신이 학교 폭력을 당하다 저항으로 칼을 찔러 죽였지만, 사람을 죽여서 누군가를 괴롭게 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패턴에 들어있는 한 사람이 다르게 바라보는 세계의 기억 속에 들어있는 죄책감. 그런 것이다.



 우왕좌왕 무슨 말을 어떻게 해서 이 소설의 서평을 써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 글을 두 번이나 쓰다가 지웠다. 글을 다 쓴 지금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기서 또 무슨 말을 하면서 평소 하던 대로 단락을 맞추어서 글을 마무리해야 할지 몰라서 책을 다시 읽어보기도 했다.


 제목에서 읽을 수 있는 '우리가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라는 말. 단지 그 말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다시금 떠오른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가 하나의 진실이라고 하지만, 그 세계는 우리의 일정한 패턴에 의해 교묘히 뒤틀려진 세계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이 세계의 진실을 볼 수 없다. 달이 태양의 빛을 반사하기에 보인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그믐날 밤에 보이지 않는 달은 우리가 기억하는 그 세계가 사실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소설 '그믐'의 제목은 거기서 나온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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