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한 삶 VS 즐기기 위한 삶
- 일상/사는 이야기
- 2015. 9. 5. 07:30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안정적인 일,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아무리 힘들더라도 웃으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나한테 그런 일은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작성하는 일이다. 어떤 문화생활을 체험해보고 글을 작성하고, 책을 읽고 글을 작성하는 일은 늘 새로운 배움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에 현실적으로 '그 일로만 먹고 살 수 있느냐?'이라는 기준을 물어보면, 솔직히 부정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다. 정말 이름 있는 파워블로거라면 강의 활동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적은 돈이 들어오는 범위를 넓힐 수 있겠지만, 나 같은 블로거는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
아마 전업 블로거라는 직업을 가지려는 사람은 대체로 비슷한 상황이라 직장을 다니면서 취미 생활 겸 용돈 벌이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건 단순히 블로그 생태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진로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한번은 마주하게 되는 갈림길이다.
'돈을 풍족하게 벌지 못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것인가, 아니면 내가 즐겁지는 않아도 생존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 것인가.'
다른 길의 어려움, ⓒJTBC
지난주 일요일(30일)에 방송된 <김제동의 톡 투유>에서는 '생존을 위한 삶 vs 즐기는 삶'이 언급되었었는데, 오늘 글은 거기서 힌트를 얻어 작성하게 되었다. '생존을 위한 삶과 즐기는 삶'의 대립은 지금 우리 세대가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고, 기성 세대와 갈등을 빚는 이유이기도 했으니까.
보통 우리가 진로를 결정할 때 듣는 부모님과 주변 어른의 의견은 항상 안정적인 취업을 해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직업이 대표적이다. 그때까지 오직, 공부만 했던 수험생은 성적에 맞춰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에 가고자 자신이 전혀 흥미가 없는 학과 혹은 생소한 학과를 선택해 진학한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대학에 들어가서 생활하다 보니 눈앞에 길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이런저런 진로 강의를 들으면서 고민하고, 무작정 중견 기업 이상에 취업해야 한다면서 입사 지원서를 내다 수시로 탈락하자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안정적인 일, 즉, 생존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서 철저히 몸부림치는 모습이라고 우리는 해석할 수 있다. 오늘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을 그리는 게 아니라 20년 후에 내가 편안히 살 수 있는 삶을 흰 도화지 위에 그리는 삶을 추구하면서 내일이면 과거일 오늘을 소비한다.
심각한 노인 자살률
그런데 정말 그렇게 살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점점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을 포기하고 내일은 더 괜찮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살기에 현재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참담한 모습은 너무 절망적이다. 노인 인구의 행복도 꼴찌, 자살률 1위는 너무 적나라한 현실이다.
지금 노인 계층은 모두 노년에 여유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가장 젊은 시기를 희생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수중에 모이는 돈과 작은 행복은커녕, 오히려 굶어 죽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삶을 살게 되면서 삶에 회한을 느끼면서 자살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 버린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사회 구조적 문제로 접근하여 복지 제도가 똑바로 되지 않은 점을 문제로 잡을 수 있지만, 복지 제도를 똑바로 세우지 못했던 것도 그 당시에 먹고 사는 데에 급급해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만 잘살면 된다는 생존 경쟁 과열이 오늘의 불행을 만들었으니까.
이런 한국의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는 젊은 세대는 '여기서 삶의 질을 추구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이민을 떠나고자 하는 사람도 많다. 호주, 캐나다, 북유럽 같은 나라에 이민을 가서 한 번 뿌리를 내리는 데에 성공하면 적어도 '사람 대우'는 받으면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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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에 소개했던 <한국이 싫어서> 소설을 읽어보면 주인공의 시점을 통해서 이런 현실을 너무 잘 알 수 있다. 아마 지금 젊은 세대가 점점 취미 생활을 하면서 '덕후'에 가까워지는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하는 게 삶의 목적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블로그에 <그렇게 살면 행복하냐고 묻지 마세요>이라는 글을 통해 내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었고, 때때로 몇 시간이나 우두커니 하늘을 바라보면서 삶에 살아가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해본다. 그때마다 나는 '안전한 생존도 중요하지만, 나는 웃을 수 있는 삶을 원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오타쿠 생활을 하고, 반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면서도 여러 문화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가능한 참석을 하여 시야를 넓히고 있다. 확실히 좋은 학벌,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를 가지는 사람은 세간이 인정하는 성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강하고 행복하리라는 것은 착각이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훗날에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착각에 빠져 허황한 꿈을 꾸며 사는 것보다 오늘 바보 같은 내 꿈을 실천하는 삶이 더 빛나는 법이다. 생존을 위한 삶과 즐기기 위한 삶 사이에서 나는 즐기기 위한 삶을 선택했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
'어떻게 해야 부족함을 없앨 수 있을까?'
백날 이렇게 생각하고 고민해봐야 부족하 부분은 없어지지 않는다.
완전해지려는 마음 때문에 오히려 괴로울 뿐이다.
우리는 불완전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해야 한다.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진정 강한 사람이다.
이 세상에 완전하고 완벽한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 (p142_ 오늘 행복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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