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일생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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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이야기


 책을 읽다 보면 종종 저자가 만났던 책들을 소개하면서 그 책들이 자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말하는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런 종류의 책 이름은 <나는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났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책이 좀 많습니다>가 있다.


 그리고 최근에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살펴보다 이보영이 집필한 <사랑의 시간들>, 새롭게 발매된 <읽는 인간>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모두 이미 자신이 살아가는 인생에서 어느 정도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있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책과 함께 한 이야기는 낯설면서도 왠지 동경하게 된다.


 아직 배우 이보영이 집필한 <사랑의 시간들>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을 담은 <읽는 인간>은 작은 인연이 닿아 읽을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평소, 책을 좋아하는 동시에 책이 내 인생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기에 설레는 기분으로 책을 펼쳤다.


읽는 인간, ⓒ노지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은 평소 내가 알지 못했던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가진 책의 네트워크를 언급하면서 시작한 그가 어떤 과정을 통해 고전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는지, 어떤 책의 어떤 글에서 사용된 문체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설명했다.


달이 뜨면 / 아름다운 애너벨 리 꿈속으로 찾아오고, / 별이 빛나면 / 아름다운 애너벨 리 명모한 자태가 눈앞에 떠오르네. / 한밤중 바다의 신들 모여드는 곶의 땅 / 바닷가 무덤가로세 / 나의 연인 나의 사랑 혼이 머무는 곳 / 여기가 내 몸 뉘일 곳인가.


문학 언어에 경탄을 금치 못하던 저의 감각은, <포 시집>으로 새로이 눈을 떴습니다. 그래도 '이런 문체로 시를 지어보자', '소설을 써보자' 하는 마음은 물론 없었습니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요. 다만 '이런 문체도 있구나', '내가 지금 살아가는 사회의 문체와 전혀 다른 문체가 일본어에 있구나', '이 둘을 동시에 담아내면서 나만의 문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공상에 빠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포는 달라도 너무 달랐어요. 이렇게 저를 고무시키는 문체 가운데 좀 더 다가가기 쉬운 걸 찾아보자는 마음에, 그 후로 번역시를 두루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서점에서 새로운 번역 시집을 발견할 때마다 선 자리에서 그걸 읽으며 '진정 훌륭한 문체를 찾고 싶다, 시를 쓴 사람의 문체로 진짜 내 글을 쓸 수 있는, 그런 시인을 찾고 싶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p28)


 저자가 말해주는 시와 소설을 함께 읽어나가면서 나도 그 작품이 가진 문체의 놀라움에 감탄했다. 몇 번이나 책을 읽으면서 '나도 저런 문체로 사람의 마음에 남을 수 있는 한 줄의 문장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을 품었던 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글을 쓰더라도 그런 문장에 도달하지 못했다.


 얼마 전에 읽은 <소설가를 만드는 법>의 이요의 말을 빌리자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소설에 대한 아이디어가 번뜩이고 말았습니다. 저에게는 소설을 쓰는 힘이 없습니다.'고 해야 할까? 아니, 그 이전에 머릿속에서 그동안 읽은 많은 소설과 책이 뒤엉키는 이야기조차 말끔히 정리되지 않으니….


 책을 읽은 후에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을 당시에는 '이 부분을 이렇게 소개하자. 이 부분에서 내가 느낀 감정을 이렇게 표현하자.'고 생각하며 책의 귀퉁이에 그 조각을 기록하지만, 막상 글을 쓰기 위해서 책과 노트와 아이패드를 펼치면 금세 다른 방향으로 글이 흘러가고 만다.


오에 겐지부로, ⓒ조선일보


하지만 말이죠, 그렇게 자기 문장, 자기 문체를 만들어 쓰는 동안에 지금 쓰는 문장과 문체에 만족할 수 없게 됩니다. 새로운 책을 읽고, 또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그러면 더 새로운 문장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찾아온 변화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독서 방식을 바꾸면서 '나의 문체, 문장을 바꾸자'는 쪽으로 흘러갔어요. 그런 생활을 의식적으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졸업을 앞둔 제게 와타나베 선생은 앞으로 이렇게 독학을 하라고 책 읽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는데, 그것은 3년마다 읽고 싶은 대상을 새로 골라서 그 작가, 시인, 사상가를 집중해서 읽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말이죠, 자기가 읽어온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아울러 자신의 새로운 언어 감각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작용이 발생하는 거예요. 문체에 변화를 주고자 이제껏 읽지 않던 방향의 책도 고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저는 3년마다 제 문체를 바꿔가는 방법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p68)


 아무래도 작가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그는 책을 읽으면서 문체에 변화를 주고자 이제껏 읽지 않던 방향의 책도 읽게 되었다고 했다. 이는 작가가 자신만의 뚜렷한 원칙을 지니지 못한 게 아니라 새로운 언어 감각을 발견할 수 있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짧더라도 자신이 읽은 책 후기를 글로 남기고 있을 것이다. 그 당시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 내가 어떤 책에 감명을 받아 문체에 영향을 받게 되었는지 엿볼 수 있는 단서가 있다. 블로그에 기록하는 부족한 글에도 그런 부분을 군데군데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책을 읽는지는 중요한 일이다. 한쪽 분야의 책을 편식하게 되면, 우리는 이윽고 갇힌 문체와 문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시와 소설을 읽지 않고, 경제학 도서처럼 전문적인 도서만 읽게 되면 생명력을 느낄 수 없는 건조한 문장과 문체만 만들어져 이후 다시 단어를 공부하게 된다.


 오에 겐자부로의 독서와 함께한 인생 이야기가 담긴 <읽는 인간>에서는 오에 겐자부로가 겪은 그런 과정과 함께 그의 인생에서 벌어진 일들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소설이 어떻게 드라마틱하게 변해가게 되었는지 읽어볼 수 있다. 평소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꽤 감명 깊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솔직히 다른 사람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책을 좋아하고,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종종 독서를 통해 과연 내 인생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몰라 생각에 빠질 때가 있다. 책을 읽으며 꿈을 품었고, 살아갈 의지를 품었고, 글을 썼고, 블로그를 했고,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


 저자는 책에서 아래와 같이 책을 읽는다는 것의 뜻을 말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보를 얻는 것과 같은 레벨이 아닙니다(역시 살아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는 죽은 지식의 집적을 말합니다. 대형 대학 강의실에서 열리는 지루한 개론 강의를 떠올려 주십시오). 책을 읽음으로써 책을 쓴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한 인간이 생각한다는 건 그 정신이 어떻게 작용한다는 것인지 알 수 있어요. 이를 통해 사람은 발견을 합니다. 지금 내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에 맞닥뜨리고 있는지 깨닫고, 결국은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나는 것이 가능해지지요. 그런 기회를 움켜쥘 독서법이 있다는 것을, 사이드는 알려주고 있습니다. (p50)


 책 읽기가 조금 무겁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의 말을 빌리자면 책은 우리가 한 단계 더 높은 곳에서 살아갈 힘이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과 책을 읽지 않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이 내 인생이 가져다 준 변화를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 않을까?


 오이 겐자부로는 50년 독서와 인생을 돌이켜보며 "정녕 제 인생은 책으로 인해 향방이 정해졌음을, 인생의 끝자락에서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이라고 말했다. 아직 오이 겐자부로의 절반밖에 살지 않은 내 인생이 책으로 향방이 정해졌다고 말하기는 부족하겠지만, 내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오이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을 만나게 된다면, 아니, 그냥 내가 쓴 못난 이 후기를 통해서 책과 함께 한 내 인생을 되돌아보며 '그때 어떤 책이 나의 망설임에 행동할 것을 부추겼었지?'이라는 질문을 한 번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책은, 항상 우리 옆에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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