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노동자를 위한 배려, 이게 바로 사람입니다.
- 시사/사회와 정치
- 2015. 6. 3. 07:30
소외받았던 사람을 위한 축제,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이유
지난 5월은 가정의 달인 동시에 여러 축제가 함께하는 축제의 달이기도 했다. 어느 지역에서나 다양한 축제가 열렸었고, 대학생의 젊음이 넘치는 대학교에서도 축제가 열리면서 5월 한 달이 떠들썩했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서도 몇 가지 가까운 축제에 참여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6월이 시작한 월요일(1일)에 다음 포털 메인에 유독 눈길이 가는 한 개의 기사가 실렸다. 경희대학교에서 대학생 본인들이 즐기기 위한 축제가 아니라 캠퍼스 노동자분들을 위해 작은 축제를 열어 '감사의 표시'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기사였다. 당연히 기사에는 칭찬 댓글이 우르르 쏟아졌다.
나도 이런 축제를 계획한 경희대학교의 총학생회에 칭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서울의 어떤 대학교에서는 축제 행사장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청소 노동자의 현수막을 철거했고, 지방의 어떤 대학교에서는 '총학생회'라는 이름표를 이용해 갑질을 했던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읽은 기사에는 경희대학교 이외에도 많은 대학교에서 네팔 지진 성금 운동과 아나바다 운동을 통해 다문화 가족에게 책을 전달하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는 사실이 첨부되어 있었다. 이런 기사를 읽고 있으면, 많은 사람이 걱정하는 20대의 미래도 잘못과 걱정 투성인 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 좋은 기사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며 쓴소리를 하고 싶다. 우리가 이런 기사를 읽으면서 칭찬을 하는 이유는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좋은 모습'이기 때문인데, 언제부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거나 남몰래 도와주는 일이 '아주 특별한 비정상적인 일'로 여겨지게 되어버린 걸까?
바로 거기에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을 최우선 가치로 하여 사람을 챙기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세상이 되지 못했다. 사람보다 물질적 가치가 우선으로 취급되어 언제나 돈 앞에 무릎을 꿇어도 사람을 위해 무릎을 꿇지는 않으니까.
무히카 전 대통령은 "세상 사람들이 왜 그렇게 호들갑인지 모르겠다. 내가 작은 집에 살고, 보잘것없는 살림살이에, 낡은 자동차를 몰아서? 이게 어떻게 뉴스거리가 되는가? 그렇다면 세상이 이상한 것이다. 왜냐하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을 놀라워하고 있으니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말 그 말대로 우리는 이상한 세상에서 이상하게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극히 정상적인 일을 특별한 뉴스로 보도하면서 '이 학생들 정말 착해요! 우리 칭찬해줍시다.'이라는 현상을 일으키는 게 아닐까? 물론 그 일은 칭찬받아야 마땅하지만, 언젠가부터 이런 모습이 특이한 모습이라는 게….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다.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있는 건 내가 남보다 조금 더 가졌을 때, 그리고 내가 삶의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솔직히 내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있을까?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자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돕는 사람이 위대한 것이다.
나는 종종 '나라면 과연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솔직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나도 몇 번이나 힘든 사람을 못 본 척 외면해본 적이 있고, 길거리에서 '힘든 아이들을 후원해주세요.'라며 붙잡는 사람의 손을 뿌리친 적이 몇 번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변명을 한다. '저도 먹고살기가 힘들어서요.', '저도 때때로 밥을 굶고 다닙니다.'이라는 변명을 하면서 '나는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남을 돕지 못하는 거다.'이라는 거짓말로 나의 위선을 포장한다. 그래서 나는 절대 착한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냥 비겁한 거다.
어쩌면 우리가 종종 다른 사람의 착한 모습을 보면서 '저건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연기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하는 것을 시샘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비겁하지 않아.'라며 몇 번이나 속으로 되새기지만, 그런데도 양심이 콕콕 찌르는 것이 무서워서 피하고 싶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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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가 보여준 따뜻한 모습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회에서 정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모습에 호들갑을 떨면서 침까지 튀기며 칭찬을 하는 이유가 '자신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었던 그 학생들의 행동을 통해 대신 위로를 받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도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고개만 돌리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쉽게 눈에 보인다. 점점 뜨거워지는 여름 햇볕 아래에서 리어카에 갖은 종이 쓰레기를 한 아름 채워서 끌고 가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도 있고, 최저 임금과 인간적인 대우를 받기 위해 갑과 싸우는 을의 모습이 그렇다.
우리 사회는, 우리 정치는, 언제나 선거철 때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며 목소리를 외친다. 하지만 선거철 이후에는 '내가 지나가는데, 왜 인사를 하지 않느냐?'라며 다시 갑질을 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도 않은 채 욕을 하기 바쁘다.
이런 비정상적인 세상에 우리가 적응해서 살고 있기에 경희대학교가 보여준 그 모습은 비정상적으로 보였고, 우루과이 전 대통령 무히카의 행동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보이는 게 아닐까? 나도 비정상적인 세상에 적응해서 사는 한 명이 소시민이기에 오늘 여기서 더 길게 할 말이 없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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