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꼭 읽어야 할 서양고전
- 문화/독서와 기록
- 2015. 3. 31. 07:30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서양고전 독법, 고전을 통해 지금을 보다
우리는 여러 분야에서 '고전'의 필요성을 배운다. 대학교 수업, 인문학 강의, 사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고전은 언제나 그 필요성이 크게 표현된다. 고전은 철학과 연결되고, 철학은 곧 생각하는 힘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눈앞에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익숙한 지금 우리 시대에 고전이 만들어주는 생각하는 힘은 꼭 필요하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배운 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냥 칠판에 쓰인 것을 빨리 외우는 방법'이었다. 문제를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와 있는 정답을 외워서 얼마나 정확히 외워서 시험에서 활용할 수 있는가, 오직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한 방향으로 흐르는 교육 과정을 거쳤다.
말로는 언제나 '창의적인 인재를 기르는 교육 혁신 방안'이라며 주절주절 말하지만, 사실상 우리는 아직도 이 일반적인 과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학교에서는 취업률이 낮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학과를 통폐합하고, 중·고등학교에서는 다른 공부에 방해된다면서 미술이나 음악, 체육 등의 과목을 위한 시간이 줄었다.
그 과정을 통해 한국 교육을 받는 아이들의 행복도는 점점 낮아졌고, 성취도 또한 심하게 줄어들고 말았다. 재미없는 공부를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하고, 눈앞의 있는 시험 결과가 가장 중요해 더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한다. 이 과정을 통해 청소년 세대만이 아니라 기성세대에서도 '행복'이라는 단어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이런 시기야말로 우리는 '문제를 다른 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고전은 확실히 어려운 분야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고전을 만나볼 필요가 있다. 한 장을 넘기기 힘든 두꺼운 고전을 바로 읽는 게 불가능하다면, 좀 더 고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을 통해 한 번 읽어보더라도 상당히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살아가면서 꼭 읽어야 할 서양고전, ⓒ노지
오늘 나는 위에서 볼 수 있는 책 <살아가면서 꼭 읽어야 할 서양 고전>이라는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여러 고전을 한 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인데, 정말 고전을 어려운 책으로 읽었던 사람에게는 '에이, 그래도 조금 부족하다.'라는 평가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그 긴 고전의 핵심을 잘 옮겨 놓았다고 말하고 싶다.
대체로 정말 긴 고전을 우리가 바로 읽는다는 건 솔직히 말해서 무리다. 나도 그런 두꺼운 책을 바로 다 읽을 생각은 하지 못한다.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책도 조금씩 계속 읽고 있는데, 그나마 가벼운 책이라 질리지 않고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어려운 책을 막 한 번에 읽으려고 한다면, 누구나 지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살아가면서 꼭 읽어야 할 서양 고전> 같은 책을 통해 고전의 맛을 알아가고, 그 고전이 제시하는 방향성을 알 수 있는 책을 추천하고 싶은 것이다. 이 책은 한 권의 고전을 간단히 설명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예로 들면서 우리가 사회 문제와 삶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전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만약 하루에 우산 100개를 만드는 사람과 200개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200개 만드는 사람이 그 일에 더 탁월할 것이다. 하지만 100개 만드는 사람에게 탁월해지라고 200개를 만들게 할 수는 없다. 자기 능력보다 더 만들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과유불급, 이것이 바로 중용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땅히 그래야 할 때, 또 마땅히 그래야 할 일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사람들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목적을 위해서, 또 마땅히 그래야 할 방식으로 감정을 갖는 것은 중간이자 최선이며, 바로 그런 것이 탁월성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탁월성은 중간적인 것을 겨냥하는 한 일종의 중용이라고 했다. 욕심내지 않고 적당한 때에 자신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중용의 상태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행복에 이르게 된다. (p54)
위에서 읽을 수 있는 글은 그 일부분이다. 이렇게 우리가 삶을 대하는 자세를 통해 고전에 담긴 그 의미를 보여주고, 이후 우리 한국 사회에서 마주하는 정치·사회 문제에 접근해 날카로운 비판도 읽어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단순히 살아가는 지혜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좀 더 우리가 고전(인문)을 현실에서 적용하는 법을 읽을 수 있었으니까.
아마 평소 책을 꾸준히 읽는 사람과 사회와 정치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상당히 만족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시기가 다가오면 모두들 민심 챙기기에 바쁘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민심은 뒷전이고 그동안 비어 있던 자신의 곳간을 채우고 지인들의 이권을 챙기기에 바쁘다. 사람들이 왜 자신에게 정치를 맡겼는지 그 이유는 잊어버린 채 말이다. 이 과정의 악순환에 지쳐버린 사람들은 그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이양했었는지조차 잊어버린 채 정치는 나랑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로 치부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무관심으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막는다. 그래서야 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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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우리가 사는 사회는 좀 더 자기 생각이, 문제를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볼 수 있는 관점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정부도 이런 흐름에 발을 올리고자 '창조 경제'이라는 문구를 운운하지만, 정부가 말하는 '창조 경제'는 그냥 이름표만 붙인 창조 경제일 뿐이다. 그 실체를 파헤쳐 보면 기득권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서민을 죽이는 극약에 불과하다.
이미 한국은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그 와중에도 부채는 계속 커지고 있고, 대기업 중심으로 돌아가는 정책은 여전히 문제를 현재진행으로 만들고 있을 뿐이다. <에디 톨로지>의 저자 김정운 전 교수님은 '편집하는 힘'의 중요성이 바로 창조력이라고 했다. 과연 이 정부에 그런 창조력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얼마 전에 한 언론 기관에서는 국기게양식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정말 우리가 사는 지금의 한국은 어디로 갈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고전을 통해 그냥 보여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힘을 기를 필요가 있다. 시대의 가치가 어지러울 때마다 고전(인문)의 중요성이 대두하는 건, 바로 그런 힘이 있기 때문이다.
단지 남에게 끌려가는 인생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사는 인생을 위해서 우리는 한 번은 고전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읽어야 할 서양 고전을 조금이라도 더 쉽게 만날 수 있다면, 이 책이 아니라도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고전은 그 자체로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해석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우리는 더 큰 것을 배울 수 있을 테니까.
고전은 우리가 눈앞에 있는 것만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좀 더 높은 곳에서 멀리 볼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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