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이 아니라 한국의 인권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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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려운 북한을 도와준다고요? 차라리 한국의 힘든 서민들을 도와주세요.


 요즘 정치 사회 뉴스 카테고리에서 북한 인권과 관련한 문제가 자주 보인다. 중국과 미국, 일본, 한국이 모여서 북한의 심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하고, 결의안을 통해 북한에 압박을 가하면서 잘못을 바로잡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런 문제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북한은 보이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나도 그렇다.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국내 언론과 해외 언론 보도를 통해 간간이 듣는 북한의 참상에 대한 소식을 자주 들었으니까. '가엾다.', '불쌍하다' 등의 감정도 많이 들고, 지금처럼 내가 그나마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는 사실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가 북한의 그런 문제를 도와줘야 한다는 것과 경제적 지원을 해야한다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이런 말을 하면, 욕을 먹을지도 모른다. '북한도 같은 민족인데, 외면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며 어떤 사람은 강하게 반박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를 향해 역사적 인식이 부족한 사람으로 지적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북한에 어떤 지원을 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북한 인권 운운하기 전에, 북한의 어려움을 말하기 전에 지금 우리나라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 테러 라이브


ⓒ카트


 위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는 지난 11월 13일에 개봉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고 있는 《카트》이라는 영화와 지난 추석 특선 영화로 본 《더 테러 라이브》이라는 영화의 이미지이다. 이 두 영화는 우리 사회 문제를 강하게 지적하는 작품으로,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절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쉽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문화 이야기/방송과 행사] - 왜 사람들은 <더 테러 라이브>에 열광했는가?


 얼마 전에 작성해서 블로그에 발행한 달동네를 외면한 채, 밤하늘의 달만 보는 바보 정부》이라는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나라 내에서도 약자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실적 남기기에 급한 정부와 대통령은 쓸모없는 곳에 투자하려고 하고, 약속했던 공약을 파기하며 후퇴하는 정책을 거듭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북한 인권이 어떻다고? 오십보백보다.


 물론, 우리나라는 북한이라는 곳에 비해서 정말 월등히 잘살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이 배부르게 먹고 있고,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요건이 갖춰져 있다. 그럼에도 법의 사각지대에서는 많은 사람이 한 끼를 먹기 위해 검은 땀을 흘리고, 생존권과 사람다운 대우를 위해 피눈물을 흘리면서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과 전쟁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빈부 격차의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문제는 심각한 문제로 손꼽히고 있고, 이런 빈부 격차를 줄이는 것과 동시에 복지 기반을 단단히 다지기 위해서 갖은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빈부 격차를 줄이기는커녕, 부자에는 규제 완화를 하고, 서민에게는 증세를 하면서 그 격차를 더 늘리고 있다. 더욱이 복지 정책은 후퇴하고 있고.


무상급식, ⓒKBS


 이 문제의 원인은 잘못된 판단을 하는 정부에도 있지만, 그런 정부를 한사코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있다. 게다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차별을 가르치면서 더 무서운 사막 같은 나라를 만들고 있다. "우리 청소년의 남과 더불어 사는 능력은 36개국 중에 35등, 부모가 아이에게 남에 대한 관용을 가르치겠다는 의지는 62개국 중 꼴찌, 세계 최고 교육 수준을 가진 나라의 현실"은 너무 슬프다.


 이 글을 아이패드로 작성하는 11월 14일은 뉴스에서 '임대세대'에 대한 차별이 보도되었고,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일하는 직원을 용역 업체를 이용해 불법 사찰을 한 사건이 보도되었고, 수능 시험을 거부한 사회의 차별주의에 저항하는 학생들이 보도되었고, 무상급식 전면 중단의 위기와 무상보육에 대한 위기가 보도되었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보다 더 열악한 비수급자의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상황이 이런 상황인데 과연 북한 인권 운운하며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해야한다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 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일에 대의적인 명분도 있고, 나라의 이미지를 위해서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앞으로 그런 일은 우리가 지속해서 해야할 일이다. 하지만 먼저 제 잘못을 바로잡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라고 말하고 싶다.



 얼마전에 가수 이승철이 일본에 입국을 거부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분노했다. 그리고 정부 부처의 뒤늦은 대처에 어이없어 했는데, 우리는 일본의 예만 볼 것이 아니라 한국의 입국 거부에 대한 사실도 한 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는 정부 정책을 비판한다는 이유 등으로 외국인들의 입국금지를 하고 있는데, 지난해에 10만 명을 넘길 정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괘씸한 일본? 한국은 더 한다. [링크]


 더욱이 이런 사례만이 아니라 늘 심각성이 도를 넘고 있음에도 바보 같은 대책만 내놓는 군대 가혹행위 문제는 우리나라 내에서도 인권 문제에 좀 더 제대로 된 관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화려한 이미지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질소 과자처럼 내용물이 텅텅 빈 이런 과자를 자꾸 구매하면서 그런 부도덕을 반복되게 해서는 안 된다. 관심을 가지고, 지적해야 한다. 그래야 고칠 수 있다.


 북한은 확실히 후진국이다. 아니, 나라 같은 수식어를 붙이기에도 아까운 곳이다. 그런데 그런 북한만큼 멍청한 일이 벌어지는 이 한국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북한 인권 운운하기 전에, 먼저 내 나라 한국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한국의 어려운 사람들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게 잘못된 일일까?


 누구는 나를 향해 잘못되었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이 주장을 굽히고 싶지 않다. 나한테는 타국일 뿐인 북한보다 내 나라 한국이 더 중요하고,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경제적 어려움이 더 중요하다. 중국처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기 시작하는 한국의 모습에서, 제 잘못은 바로잡지 않으면서 남의 흉만 보는 나라가 더 심각한 위기에 있다.


"방금 내가 임금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는데, 자공은 이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자식이 아비의 명을 따르는 것을 효이고, 신하가 임금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충이 아니겠습니까? 선생님께서는 왜 대답을 하지 않으셨는지요?"

선생님은 조금 실망한 듯이 나를 나무라셨다.

"자공아, 나를 그렇게 여러 해를 따라다닌 게 안타깝구나! 그것은 말이다. 쟁신(諍臣)이라 불리는 신하들은 국왕이 잘못을 저지르면 지적해서 고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또 쟁자(爭子)라 불리는 자식들은 부모가 잘못을 했을 때 고치도록 돕는 이들이다. 쟁우(箏友)는 친구가 잘못을 할 때 고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들이다. 만승(萬乘)의 나라에 쟁신이 넷 있다면 그 강토는 쇠약하지 않을 것이다. 천승의 나라에 쟁신이 있다면 그 사직은 위험에 처하지 않을 것이다. 백승의 나라에 쟁신이 둘 있다면 그 종묘는 불타지 않을 것이다. 아비에게 쟁자가 있다면 예에 어긋나는 일을 할 수 없을 것이고, 선비에게 쟁우가 있다면 의롭지 못한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식이 맹목적으로 부모를 따르는 것을 두고 어찌 효라고 할 수 있겠느냐? 신하가 맹목적으로 국왕을 따르는 것을 두고 어찌 충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반드시 합리적이고 성인의 이치에 부합하면 따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용감하게 지적해서 고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효이고, 충이다. 맹종은 불충이며 불의인 것이다!" (p73_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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