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단통법 도서정가제, 언 경제를 더 얼리는 정책
- 시사/사회와 정치
- 2014. 11. 24. 07:30
앞으로 한국에서는 싸게 팔면 안 되는 법이 더 생겨날지도 모른다.
나는 매달 약 15만 원의 비용을 책을 사는 데에 사용한다. 어떤 때에는 15만 원보다 적게 사는 때도 있지만, 어떤 때에는 15만 원이 아니라 20만 원을 넘을 때도 있다. 도대체 무슨 책을 그렇게 많이 사는지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서점이나 책 방도 아닌데, 한 달에 15만 원을 사용하는 것이니까.
나는 자주 읽는 '라이트 노벨 시리즈'와 함께 종종 흥미가 있는 경제 혹은 인문학을 비롯한 실용도서를 구매하는 데에 그 정도의 비용을 사용한다. 할인폭이 적은 도서도 있지만, 조금 오래된 책은 꽤 할인율이 커서 책을 구매하는 데에 큰 부담은 갖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자주 책을 구매해서 읽는 개인에게 조금 아픈 소식이 있다. 바로 도서정가제 개정안의 시행으로 도서에 대한 할인폭이 크게 제한이 된다는 것이다. 기존 도서 정가제는 최대 19%정도 할인이 가능하고, 18개월이 지나면 추가로 할인이 붙어 싸게 구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 도서정가제는 할인율이 최대 15%로 줄어들었고(신간이든 구간이든), 그 범위가 확대되면서 기존 도서 구매자들은 형식적으로나 체감적으로 도서 구매를 하는 데에 작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정책은 사람들 사이에서 '제2의 단통법'으로 불리며 그렇지 않아도 얼고 있는 도서 시장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YES24
새로운 도서정가제 시행을 앞두고, 인터넷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대대적인 재고 처분에 나섰다. 위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는 내가 이용하는 인터넷 서점의 이미지인데, 도서 정가제 전에 대대적인 할인을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이건 온라인만 아니라 오프라인 대형서점도 마찬가지였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기 전에 참고서를 구매하려는 사람, 그리고 과거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 있던 사람들은 미리 책을 구매하고 있다. 마치 '단통법'이 시행되기 전에 휴대폰 시장에서 볼 수 있었던 막판 할인 보조금 지급처럼 소비자들은 '지금이 아니면 싸게 구매할 수 없다'는 심정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개정된 도서정가제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개정안이 상당히 불편하다. 비록 내가 매달 사는 도서는 신간이 많아 대체로 할인율이 15% 미만이었지만, 그럼에도 종종 구매하는 옛 도서는 상당히 싸게 구매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그런 혜택이 전혀 없어진다는 말이 아닌가?
원래 시장경제라는 건 공급과 수요가 맞물렸을 때, 가장 합리적인 가격이 결정된다. 공급은 이루어지고 있는데 소비자가 소비할 수 있는 가격대에 형성되지 않으면, 그 시장에서는 거래가 일어나지 않는다. 시베리아 벌판처럼 꽁꽁 얼어버리고 만다. 가장 그 대표적인 시장이 바로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이다.
부동산을 구매할 수 있는, 집을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자는 턱없이 그 소비 능력이 부족한데, 공급자는 그 가격을 낮추지 않고 있다. 그래서 부동산 시장에서 '미친 전세' 혹은 '미친 월세' 같은 말이 나오는 거다. 그럼에도 가격이 충분히 하락하지 않는 건, 매몰 비용(투자비용)을 아까워하는 기득권이 정부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싸게 팔면 안 되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 모습이 정말 웃기지 않는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시점에서 적절히 가격이 형성되도록 자유를 주는 건 필요하다. 오히려 규제가 필요한 건, 시장경제 속에서 대기업의 담합과 독과점으로 천정부지의 가격을 고집하며 부당이익을 취하는 분야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반대다. 담합과 독과점으로 부당한 수익을 올리는 기업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면서 여전히 고객을 호갱으로 만들고, 싸게 파는 것을 금지하는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잘못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냥 내가 잘못 아는 걸까?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아이도 공급과 수요의 원리를 잘 이해하고 있다. 아이들도 자신이 내놓은 물건이 팔리지 않으면, 수요를 일으키기 위해서 가격을 낮춘다. 이게 합리적인 가격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그런데 정부는 그 가격을 낮추지 못하게 막으면서 합리적인 가격 형성을 막고 있는 거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공급 물량은 남아있는데, 수요가 일어나지 않으니 공급 물량을 더 줄일 수밖에 없다. 생각했던 최소한의 수익도 나지 않았으니 당연히 부채는 늘어날 것이고, 그 부채를 줄이기 위해서 생산 공장 기동을 중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실업자가 나타나고, 경제는 더욱 위축된다.
그 같은 최악의 순환고리를 만드는 게 바로 '도서정가제'와 '단통법'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도서 인구가 적어 출판 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책을 싸게 판매하거나 구매할 수 있는 방법마저 없어진다면 과연 어떻게 되어버릴까? 단통법으로 거래량이 확연히 줄어든 휴대폰 시장과 마찬가지로 도서 시장이 얼어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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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나는 도서정가제 개정안이 시행되더라도 매달 책을 구매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읽고 싶은 책이 있고, 책은 내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니까. 하지만 이전보다 좀 더 가격을 조절하려고 노력하거나 책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는 비용만큼 다른 곳의 비용은 줄일 수밖에 없다.
이건 나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평균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공급 가격은 내려가지 않고, 소비 능력은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경제가 활성화 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가 상승률에 임금 상승률이 따라가지 못하는 한국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창조 경제라고 하면서 서민의 부담만 늘여가면서 쓸데없는 곳에 예산만 투자하는 정책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벼룩 시장에 참여하는 어린 아이도 아는 그 경제 원리를 법으로 막고, 싸게 팔면 안 된다는 말을 하는 정부는 도대체 어느 나라의 어느 대통령의 정부인가? 어휴.
* 그러나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도서 정가제로 인해 큰 출판사와 중소 출판사의 가격 차이가 줄어들면서 좀 더 공정한 경쟁을 기대할 수 있고, 점차 도서 정가제로 가격이 내려가는 것을 기대할 수 있기도 하다. 또한, 정가제에 따라 자본으로 움직이는 질이 좋지 않은 책이 아니라 질이 좋은 책이 동일한 선에서 경쟁을 하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도 하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점차 수요가 늘어난다는 것이 베이스가 되는 것이지만, 책을 꾸준히 구매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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