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 통념과 법률
- 시사/사회와 정치
- 2014. 11. 1. 07:30
가해자를 위한 법은 있지만, 피해자를 위한 법은 없는 나라
우리나라에서는 눈을 의심케 하는 잔인한 학교 폭력 사건이 보도된 이후 사람들 사이에서는 '가해 학생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동안 형식적인 처벌만 받고, 반 친구를 죽음으로 몰고 가더라도 겨우 1~2년의 선고만 받거나 집행유예로 풀려나 가해 학생이 처벌을 얕게 받으니 법을 우습게 알고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른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도 그 의견에는 찬성했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심각한 범죄를, 도저히 사람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는 유럽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들처럼 사형에 맞먹는 징역 100년 같은 평생 사회의 빛을 볼 수 없는 그런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벼운 처벌만 받는 친자 살인죄나 여성 살인죄 범인들에 대한 분노를 한 사람은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다. 바로, 우리는 언제나 가해자의 처벌에만 관심을 가졌지, 피해자를 위한 법적 제도가 부실하다는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거다. 학교 폭력 사건 이후 가해자를 좀 더 강하게 처벌하는 제도는 마련이 되었지만, 학교 폭력에 휘말린 피해 학생이 다시 웃으면서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제도는 마련이 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 폭력 피해자는 이중, 삼중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학교 폭력 가해 학생의 친지로부터 '합의하라.' 등의 협박과 학교 같은 기관에서 내려오는 '학교 망신시키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 같은 협박, 그리고 가해 학생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모자란 놈'으로 정의가 되는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혼자 끙끙거리며 아파해야만 했던 거다.
ⓒ학교의 눈물
오래전에 SBS에서 방영된 《학교의 눈물》에서도 학교 폭력에 대한 법률과 제도 중에서는 가해자에게 너무 초점이 맞춰져 있어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실제로 다른 나라도 비슷한 경우가 많았는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더 심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 '피해 학생'을 편견으로 보는 사회가 너무 잔인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주변 사람이 피해자에게 '네가 잘못했으니까 맞았겠지.', '네가 똑바로 처신을 못 하니까 그렇게 사는 거다.' 같은 말을 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어떻게 학교 폭력 피해 학생에게 '네가 괴롭힘을 당할 구실을 만든 거 아니야?' 같은 말을 할 수 있고, 어떻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에게 '네가 평소 행실이 좋지 못했거나 네가 유혹한 거 아니야?' 같은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건 엄연한 2차 언어폭력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가해자를 위해서는 무죄 추심의 원칙을 비롯한 신상 정보 비공개 등 많은 제도가 있지만, 피해자를 위해서는 그런 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피해자는 진술을 위해서 몇 번이나 끔찍한 기억을 반복해서 이야기해야 하고, 그대로 신분이 노출되며 2차 혹은 3차 피해까지 입기도 한다. 그래서 피해자가 입 다물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는 이런 모습은 정말 있을 수 없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실한 제도는 바뀌어야 한다. 가해자도 엄연한 피해자가 될 수 있기에 가해자를 보호하는 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해자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피해자가 아닐까? 피해자가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서 오히려 더 큰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면, 이것은 분명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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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한국에서는 집안에 침입한 도둑을 잡고자 폭력을 휘둘렀다가 도둑이 뇌사 판정을 받자 법은 '정당방위로 볼 수 없다.'며 피해자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를 내린 사건이 있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도대체 어디까지가 정당방위이고, 범죄를 당하는 피해자는 어느 선에서 어느 선까지 저항할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법원은 정당방위에 대해 상당히 보수적이다. 웬만큼 정당방위를 인정해주지 않고, 오히려 가해자를 두둔하면서 피해자에게 더 심한 처벌을 내리기도 한다. 참, 웃기는 일이지만, 그런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다. 얼마 전에 일어난 그 사고 이후 '팟빵직썰'에 올라온 카툰 한 편은 우리나라의 정당방위 요건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잘 보여준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법과 사회'라는 과목을 배운 적이 있었다. (비록 학교에서 가르치는 정규 과목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법'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어 인터넷 강의로 그 과목을 들었었다.) 당시 내가 들었던 민준호 선생님의 강의에서도 '우리나라는 정당방위를 인정받기가 힘들다. 내가 피해자라도 조심해야 한다. '이건 정당방위야!' 하면서 잘못했다간 네가 가해자가 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기억이므로 어느 정도 다를 수 있다.)
그때도 '왜 법이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거야?'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일어난 사고를 보면 정말 우리나라는 그때부터 하나도 바뀌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 폭력 사고를 비롯한 잔인한 범죄의 경우 가해자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처벌 수위는 여전히 비슷한 수준에 머무르고, 피해자만 가해자의 죄를 증명하고자 더 아파해야만 한다니!
안타깝지만 그게 우리가 사는 현실이다. 군 가혹행위가 있어도 똑바로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못하고,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되더라도 손가락질을 받으며 '네가 잘못이지.' 같은 비난을 감수해야 하고,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해도 '네 가벼운 행실이 잘못이지'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하고, 정당방위로 내 재산과 몸을 지키기 위해 저항해도 '네 행동은 도를 넘었다. 너도 잘못이야.' 같은 판정을 받는.
도대체 언제 우리나라는 피해자를 보호해줄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어느 새누리당 의원이 말한 "어떻게 피해자가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느냐?" 같은 말처럼, 우리나라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더 보호를 받는 날은 머나먼 꿈일지도 모르겠다.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건 오직 돈을 비롯한 권력밖에 없는 이 나라에서, 우리는 그렇게 보호받지 못하는 소시민이자 피해자로 영원히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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