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따라가는 한국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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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10년》, 불황이라는 거대한 사막을 건너는 당신을 위한 생활경제 안내서


 이제 듣기가 지겨울 정도로 '불황'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단어다. 어떤 사람은 이런 시기에 오히려 틈새를 공략해서 승승장구하지만, 대체로 많은 사람이 빚에 허덕이면서 내일 빚을 갚기 위해 위해서 오늘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가계부채는 가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


 얼마 전에 나는 로또에 당첨된 이야기를 하면서 서민 가계가 짊어지고 있는 빚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로또 복권 1등 당첨이라는 허무맹랑한 확률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우스갯소리로 한 것이 아니라 정말 그런 방법 말고는 '죽어서 빚을 없애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개인 회생 제도와 개인 파산 제도가 있지만 안 될 때도 있다.)


 나라가 이렇게 죽어가는 서민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내놓는 정책이라고는 거품이 잔뜩 낀 부동산 가격을 떠받치기 위해서 대출 금리를 낮춘 게 전부였다. 하지만 서민들은 그 대출금으로 신용카드 빚을 갚으면서 생활비로 사용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죽으면 경제가 더 힘들어진다는 이유로 내놓은 대책이지만, 실질적으로 효과는 보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나라의 경제는 장기적 불황 속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 채, 가계 부채와 정부 부채는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부자 증세를 늘리기는커녕 서민 증세를 위주로 세금을 늘리려는 시도만 이어지고, 무리하게 세금을 남용한 4대강 사업 이후로도 인천 아시안 게임 같은 적자 행사 속에서 부채를 늘여가니 어떻게 답답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도서 시장에는 '불황'과 '경제 문제'를 말하는 책이 많이 나오고 있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같은 도서는 이미 지식인들 사이에서 열심히 읽는 도서 중 하나고, 나도 그와 관련된 여러 도서를 읽어보았다. 최근에 읽은 책은 《당신이 경제학자라면》, 《경제가 성장하면 과연 우리는 행복해질까?》이라는 책이 있고, 오래전에 읽은 《중산층이라는 착각》 같은 책이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알라딘 신간 평가단 활동으로 《불황 10년》이라는 책을 만나 읽게 되었는데, 이 책도 앞에서 읽은 몇 권의 책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직면한(앞으로 직면하게 될) '경제 문제'를 체감할 수 있는 책이었다. 오늘은 《불황 10년》을 읽을 수 있었던 이야기와 우리 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불황 10년, ⓒ노지


 책의 제목 아래에는 '불황이라는 거대한 사막을 건너는 당신을 위한 생활경제 안내서'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말 그대로 이 책은 우리가 불황이라는 시대를 사는 지금 꼭 알아둘 필요가 있는 생활경제 지식을 배우는 동시에 현실적 문제를 읽어볼 수 있는 책이었는데, 이에 대한 지식을 총 네 개의 단위로 나누어서 잘 설명하고 있다.


 굳이 이 책을 구매해서 읽어보지 않더라도 가까운 서점에서 '프롤로그'만 읽어보더라도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인터넷 서점에서도 미리 보기로 읽어볼 수 있다.) 프롤로그치고 꽤 긴 분량의 글이 적혀 있는데, 프롤로그에서 읽을 수 있는 이 책의 목적을 통해 한국 경제를 간단히 알 수 있으니까.


 저자는 이 책을 30대,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90년대 학번들을 염두에 둔 책이라고 한다. 혹시 책을 읽는 내가 30대가 아니라서 '이 책은 나와 맞지 않을 거야' 같은 생각을 하지 말자. 책에서 읽을 수 있는 모든 내용은 지금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누구나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개인이 불행한데 국가가 행복한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건 국가를 위해서 사람들을 동원하는 군사주의식 발상이 자기 몸처럼 편안한 국가주의자들이나 하는 말이다. 집값 떨어지면 경제가 어떻게 될 줄 아느냐, 큰일 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은 업자라고 부르는, 부동산 쪽 사람들이 평소에는 자기 이익만 챙기다가 집값 이야기가 나오면 갑자기 국가주의자로 돌변하면서 개인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일본도 지난 20년간 내내 그랬다. 사람들은 이제 믿지 않는다.

지금의 30대가 개별적으로 무너지면, 정말 이 나라에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 순차적으로 본다면, 한국 20대의 붕괴가 이제 30대의 붕괴로 전이되는 시점에 왔다. 20대는 이미 몇 년 전에 붕괴했고, 그들에게는 경제적 삶이라는 사치스러워 보이는 단어보다는 생존이 더 어울린다. 소비를 좀 더 줄일 수는 있지만, 국민경제의 실패가 집중된 20대에게는 계속해서 줄인다고 해법이 잘 나오지 않는다. (p20)


 책이 가진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서 이야기하는 건 내게 무리다. 나는 저자만큼 경제를 보는 안목을 가지기는커녕 경제학도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비록 책을 열심히 읽으면서 메모를 하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긴 시간 동안 고민을 했다고 하더라도 간단히 '요약'할 수 있는 건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한국 사회(경제)가 처한 상황과 일본을 따라가는 우리 모습은 얼마나 심각한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 부분만큼은 꼭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한 부분과 함께 그 부분을 읽으면서 했던 나의 짧은 생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제일 먼저 '부동산' 부분에서 읽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아래의 내용이다.


한국에는 정말 집이 부족한가? 물론 그렇지 않다. 이미 주택보급률은 100퍼센트에 육박하고 있고, 1인 가구 등 새로운 흐름들을 보면 집이 부족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공산주의식으로, 정부가 집을 다 소유하고 알아서 집을 배당하는 일은 벌어질 수도 없고, 상상하기도 어렵다. 농담처럼, 집값이 더 내려가면 사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농담을 진담으로 알아들은 정부는, 절대로 집값이 내려가도록 방치하진 않을 테니, 빨리 전세값에 대출을 보태서 집을 사라고 부추긴다.

고위 공무원들의 마음이야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래봐야 그런 집주인 특히 다주택 보유자들을 위한 정책기조는 이제 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던 과거 일본뿐 아니라 2008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도 통하지 않는다. OECD 국가에서 지난 몇 년간 가계부채에 대한 조정 없이 정부가 직접 버블정책으로 달려간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문제가 이러니 가뜩이나 없어지는 전세에서 그냥 버티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자신의 소득 및 상환능력을 무시하고 집을 샀다가는 평생 아주 피곤해진다. '생애최초주택구매'라고 정부가 걸어놓은 정책이 기본적으로는 30대 혹은 40대 초반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자식 키우면서 적당한 공간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정말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p80)


 윗글은 우리나라가 직면한 부동산 시장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한국은 계속 아파트를 지어야 할 정도로 턱없이 집이 부족한 게 아니다. 그저 시장에 나와 있는 집을 살 능력이 부족한 거다. 그런데도 정부는 부동산에 붙어있는 거품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한다. 그러니 어찌 부동산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겠는가?


 윗글은 지금 우리나라가 부동산 시장에서 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인데, 책에서는 좀 더 자세히 읽어볼 수 있다. 그리고 '부동산' 파트 뒤에서 읽을 수 있는 '개인 재무구조' 파트 부분에서도 이 부동산과 관련한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는데, 윗글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재테크 열풍이 불던 지난 10년을 거치면서 개인은 부유해졌을까? 아니다. 가계부채 총액은 지속적으로 늘어서 1,000조 원을 넘어섰다. 여기에 개인 간의 채무나, 공식적인 금융통계에 잡히지 않는 전세와 월세 보증금까지 추가하면 가볍게 1,300조원을 넘어선다. 그리고 초단기성 대출상품이며 이자율도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는 마이너스 통장 등 기타 가계대출 잔액이 150조 원이다. 도대체 재테크 열풍을 통해 개인들이 마련했다는 그 시드머니는 다 어디로 갔으며, 어떻게 통계상 대출금만 잔뜩 나오는 것인가? 20년 동안 불황을 거치면서 취업자 기준으로 20대는 35퍼센트, 30대는 31퍼센트라는 일본의 개인별 저축률 같은 것이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종합해서 보면 이제 불황의 문턱에 서 있는 한국의 20~30대는 아직 불황형 재무조정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하자면 아직 우리는 돈을 너무 많이 쓰고, 또 아무 데나 막 쓰고 있다.

…(중략)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더 길고 큰 위기를 겪엇지만 지금 우리보다 개인의 재무구조가 훨씬 더 긍정적이다. 일본이라는 국가는 상대적으로 가난해졌을지 몰라도 일본 국민 개개인이 가난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 세계의 20대가 다 어렵지만 저축률 35퍼센트인 일본의 20대만큼, 잘 버티는 20대는 보기 힘들다. 저축률이 30퍼센트대인 일본의 30대는 불가사의할 정도다.

그에 비해 마이너스 통장으로 겨우겨우 버티는 우리의 30대는 어떤가? 한국과 일본, 도대체 어느 쪽이 건실하다고 생각할 것인가? 굳이 비교해보지 않아도 답은 바로 나온다.

한국은 지난 10년 동안 1인당 국민소득이 지속적으로 올랐다. 이처럼 지표상으로 국가는 부유해졌을지 몰라고 개인들은 더 가난해졌다. 그리고 그 상대적 빈곤이 20~30대, 젊은 연령층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50~60대는 자신들의 집을 처분하고 싶어하지만, 20~30대는 그 집을 살 여력이 없다. 집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은 이제 정부와 금융기관을 중간에 낀 세대전쟁의 양상을 보이는 지경까지 왔다. 팔아야 하는 사람과 샀다가는 평생 곤란해질 사람들 사이의 전쟁, 이는 아무도 이길 수 없는 한국경제 내 '가장 슬픈 게임'이다. (p107)


 '가장 슬픈 게임'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는가? 부동산을 여러 채 소유한 50~60대는 투자한 비용만큼, 아니, 최소 그 이상으로 이익을 거두어들이고 싶어한다. 그래서 유지비로 들어가고 있는 만큼 빚을 내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고, 부동산값이 내려가지 않도록 정부에 압력을 가한다. 이게 전부 부동산 거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부동산 시장은 더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장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우리나라의 20대~30대는 집을 구매할 수 있는 여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아마 지금 부동산을 크게 무리하지 않고,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건 재벌 2세 같은 선택 받은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밖에 없을 거다. (언론에서는 수도권의 부동산 거래가 늘었니 줄었니 하지만 남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또한, 위 이야기를 읽어보면 우리나라의 저축률이 터무 없이 떨어져 일본의 20대와 30대만큼 버티기 힘들다는 것도 읽어볼 수 있다. 왜 이렇게 우리나라의 20대와 30대는 저축률이 떨어지는 걸까? 개인적으로는 20대와 30대 시절에 적금을 깨서라도 이용한 사회적 비용(등록금과 스펙 자기 관리비)이 지나칠 정도로 많이 들어간 것이 원인이지 않나 싶다. 



 책 《불황 10년》은 이외에도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 분명히 지금 불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집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혹은 '돈은 어떻게 모아야 할까?'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 이외에도 우리나라가 돌아가는 모습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도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나는 책에서 일본의 실패했던 그 정치와 경제를 따라가는 것을 비판하는 부분을 읽으며 큰 공감을 했다. 정치와 경제라는 것이 가진 자를 위주로 모든 것이 결정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 책은 어디까지 '생활경제 안내서'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책일 뿐이다. 우리가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지금 당장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멋진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 문제를 명확히 볼 수 있도록, 그리고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데에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의 '에필로그'에서 읽을 수 있었던 한 부분을 남긴다.


일본과 한국이 지독할 정도로 닮은 하나가 있다면, 정치는 '끝판왕', 정말로 후진적이라는 것이다. 정치가 경제를 끌고 간 가장 이상적인 사례는 스웨덴이다. 반면에 한국과 일본은 특이한 정치 구조 안에서도 사람들이 죽어라고 열심히 살아서 이만한 모습이라도 가지게 된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경제가 힘들어지면 정치가 좀 더 현명해지고 고분고분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한국이나 일본이나 경제가 힘들어지니까 정치가 더 난리를 친다. 아주 곤란한 상황이다. 20년 전 일본이 어떻게 했는지, 예를 들면, 골프장이나 테마파크, 지방 공항 건립과 같은 초기 대처에서 고이즈미 시절의 우정국 민영화까지…… 이미 우리가 충분히 지켜본 상황이다. 그런데 그 20년 뒤를 우리의 정치인들이 어쩌면 그렇게 정확한 복사본이라고 할 정도로 똑같이 하고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일본은 아무리 봐도 경제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정치가 실패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한국이 걸어가는 미래는 역시 경제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정치가 실패한 사회로 가는 중이다. 이런 종류의 복사본은, 세계사적으로도 다시는 구경하기 어려울 것이다.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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