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7일, 8년 만에 사신 치바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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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7일》, 읽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할 이사카 코타로의 장편소설


 10월의 시작과 함께 맞이한 생일이 지나고 나서 나는 정말 내가 사는 인생에 대해 따분함을 많이 느꼈다. 청소년기에 찾아오지 않았던 사춘기가 이제야 찾아온 건가 싶었는데, 무료한 일상 속에서 의미 있는 일을 찾아 '난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니야.' 같은 자기변명을 위한 변명거리를 찾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이틀 전에 작성했던 나는 일탈(노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이라는 글에서도 이야기했었지만, 보내는 시간이 지겨워질 때 내가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은 책 읽기 이외에는 딱히 없다. 내게 금전적 여유가 있어 전자 피아노를 구매할 수 있었다면 《화이트 앨범2》의 카즈사처럼 온종일 피아노 건반이나 두드리면서 보낼 텐데….


 그러나 전자 피아노가 없고, 딱히 어떤 다른 일탈을 할 수 없는 내가 선택한 건 역시 책을 읽는 일이었다. 매달 정기적으로 사는 신작 라이트 노벨과 읽고 싶은 책을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 서점을 두리번거리다가 우연히 검색창에 '이사카 코타로'이라는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우연이라기보다 최근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을 다시 읽었기에.)


 그랬더니 이사카 코타로의 신작 소설 몇 권이 나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행된 것도 몇 달이 채 되지 않았었는데, 당연히 이사카 코타로의 팬으로 그의 책이 읽고 싶었기에 바로 인터넷 서점에서 한 권의 소설을 구매했다. 그렇게 구매한 이사카 코타로의 신작 소설이 바로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사신의 7일》이라는 소설이다.


사신의 7일, ⓒ노지


 이 소설의 제목에 사용된 '사신'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치바'라는 인물은 이사카 월드에 많은 사람이 빠져들게 한 《사신치바》라는 작품을 탄생시킨 인물이다. 《사신치바》는 일본에서만 100만 부가 넘게 팔린 대형 베스트 셀러로, 한국에서도 이사카 코타로를 몰랐던 사람들이 알게 된 대표적인 소설이기도 했다.


 나도 오래 전에 그 책을 읽었었다. 비록 블로그에 그 책의 감상 후기를 적어서 올리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이사카 월드에 빠지게 되어 그의 작품 《마왕》, 《사막》, 《피쉬스토리》, 《들오리와 집오리의 체인로커》, 《골든슬럼버》, 《왕을 위한 팬클럽은 없다》 같은 그의 작품을 꾸준히 읽는 팬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구매한 《사신의 7일》 또한 재미있게 읽었다. 그저 따분해져 가는 일상 속에서 무료함을 심하게 느끼고 있었기에 정말 반가운 작품이었다. 책을 읽으며 '역시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치밀한 구성을 가지고 있구나.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는 감탄을 하게 했다.


 《사신의 7일》은 사신 치바가 조사 대상으로 선택된 '야마노베'라는 이름을 가진 작가의 곁에서 그의 판정을 '가'로 할 것인가 '보류'로 할 것인가 결정하기 위해 일주일간 함께 시간을 보내며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여기서 판정이 '가'일 경우 다음날 죽게 되고, '보류'일 경우 더 생을 살게 된다.)


 치바가 함께 시간을 보낸 야마노베는 사이코패스에게 딸을 잃었는데, 범인이 무죄를 선고 받은 날에 그를 찾아가서 복수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딱 이 설정만 들어도 작품의 내용이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데, 《사신의 7일》에서 읽을 수 있던 이야기는 정말 최고였다! 역시 이사카 코타로의 치바였다!



 야마노베 부부의 딸 나쓰미를 살해한 혼죠는 겉은 평범하지만, 속은 완전히 사이코패스였던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이름을) 주변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였는데, 그가 하는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놀라운 일이었다. (뭐, 여기서 놀라운 건 작가의 치밀한 구성이지만!)


 그런 그와 맞서는 야마노베 부부와 함께 혼죠의 뒤를 쫓는 치바는 과거 자신이 담당했던 조사 대상을 죽인 것도 역시 혼죠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의 기억과 야마노베에게 전하는 간단한 이야기는 혼죠라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마지막 사건 해결에 닿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비록 아무 생각 없이 한 이야기였지만. 그의 일은 조사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니까.)


 《사신의 7일》은 그냥 읽어도 재밌었다. 하지만 그냥 읽는 것보다 책에서 읽을 수 있는 야마노베 부부가 하는 말이나 치바가 하는 말에서 읽을 수 있는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을 읽어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게다가 그 비판은 당시의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만이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도 거의 비슷하니까 말이다.


'잘못된 표지판으로 단속, 무죄인 26인으로부터 범칙금 징수'라는 제목의 기사다.

"간단히 말해 표지판이 잘못된 건데 이를 모르고 경찰이 단속을 했다는 뉴스."

"표지판이?"

"그래. 표지판 자체가 잘못됐던 거지."

기사를 계속 읽었다. "현경이 교차로에 잘못된 표지판을 설치해 1991년 12월부터 올해 7월까지 실제로는 '무죄'인 운전자를 적어도 26명 적발해왔다는 사실이 21일 밝혀졌다. 현경은 올바른 표지판으로 바꾸고 징수한 범칙금을 반환했다."

"이게 왜?"

"재밌잖아. 지금 인간들은 교통표지를 규칙이라 믿고 그걸 지키며 운전하고 있어. 경찰은 표지를 지키지 않는 인간이 있으면 단속을 하고 벌금을 받아."

"그게 왜?"

"하지만 봐, 그 기사처럼 표지판 자체가 잘못된 경우가 있다는 거지. 그 기사에 보면, 통행금지 표지판이었는데 원래는 '대형차량'만 해당한다는 조건이 있었던 모양이야. 보조표지가 있었던 거지. 그런데 어떤 타이밍에 표지판을 새로 고치면서 그 보조표지를 깜빡했나 봐. 그래서 대형차량뿐만 아니라 보통차량이나 오토바이까지 단속에 걸렸대." (p162)


 위에서 언급된 잘못된 표지판은 마치 일본 정부를 뜻하는 것 같다. 일본은 추가적인 세금 징수를 놓고 큰 갈등이 있었는데,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최저임금을 올려주는 정책도 함께 시행되었었다. (지금은 원전 재가동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뒤로 가는 후퇴 정책 속에서 제대로 된 대안과 보상 없이 "쟤는 항상 삐딱해." 같은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참, 기가 찬다.


 그래서 이 부분은 일본 사회만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으로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모습이 지금 한국을 가리킨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뭐, 이건 단지 책에서 '비유'에 해당하는 이야기이기에 이런 해석을 하는 내가 조금 이상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책의 이야기를 그냥 즐기면서 읽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읽어보는 것도 정말 재미있다. 특히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은.


 또한,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일본에서는 아베를 중심으로 한 극우 세력이 열심히 활동하며 군국주의 국가에 대한 향수를 강하게 뿌리고 있는데, 이런 모습을 비판하는 이야기도 《사신의 7일》에서 읽어볼 수 있었다. 이전의 모든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역시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에서 이런 부분이 빠지는 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일본 젊은 층이 이사카 코타로에게 열광하는 건지도 모른다.


인간은 전쟁을 일으키며 진화해왔다. 그래서 전쟁은 비교적 편하다. 가만 내버려두면 일어나니까. 그런데 평화는 힘들다. 전쟁으로 자연스레 흐르는 것을 계속 참아야 하니까. '평화는 고통스럽고 전란은 속 편하다.'"

"그건 파스칼?"

"와타나베 선생." 야마노베가 웃엇다.

나오는 말이라고는 죄 남의 말이라는 사실이 기묘하게 느껴졌다. "어떤 인간이든 각자 나름대로 뭔가 말을 남긴 거네." 나는 말했다. 어떤 인간의 발언이 명언으로 불리는지 나로서는 판단이 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한 남자의 발언이 그 당시에는 전혀 먹히지 않고 주위에서 오히려 백안시했는데, 2백년이나 지난 다음 갑자기 평가를 받아 '옛날 사람들은 좋은 말을 많이 했다'며 수많은 인간이 감명을 받는 경우도 봤다.

"전쟁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까요." 오기누마는 강 건너 불구경이라도 하듯 말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란을 다들 열심히 억제하고 있는 거지. 그 노력이 승리하고 있는 상태를 평화라고 부르는 것뿐이니까. '평화 불감증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걸 유지하고 잇는 건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와타나베 선생은 그렇게도 말했어. 불감증에만 걸려 있어서는 결코 평화는 지킬 수 없다는 말도."

"전쟁이 일어나고 수습되고. 얼마 있다 보면 또 전쟁이 일어나고. 그 반복이야." (p380)


"인간이 집단을 만들면 확실히 본인들의 힘을 확인하고 싶어해. 그렇지 않더라도 집단이 안정기에 접어들면 필연적으로 그게 시작되지."

"그것?"

"따분함이야."

"따분함?"

"온화한 시간이 길게 이어지면 인간은 못 견뎌. 집단은 그러다 '뭐 재미있는 일 없을까?'라고 한탄하기 시작해."

나는 같은 이야기를 '와타나베 선생'도 했었다는 걸 떠올렸다. 인간은 평화와 안정, 정상이라 불리는 상태를 바람직한 것으로 보면서도 그것이 길게 이어지면 질려서 우울이나 권태를 느낀다고 했다. 평화가 좋다는 걸 알면서도 평화에 질린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전쟁이 바로 거기서 일어나는 거잖아."

그건 좀 난폭한 결론 같았다.

"온화한 일상은 따분함을 낳아. 그 따분함은 불안을 낳고. '이대로 괜찮은가?' 하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집단은 겁을 먹기 시작해. 아니면 따분해하거나. 어쨌든 이런 때 일어나는 건 항쟁이나 전쟁이야."

"그리고 그게 끝나면 또 온화하게."

"그렇지. 역시 인간은 흔들리면서 반복할 뿐이야." (p443)


 이 부분은 《사신의 7일》에서 읽을 수 있는 인간과 전쟁(다툼)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많은 부분 중 일부분이다. 결국, 인간이라는 건 평화를 원하면서도 전쟁을 원하는 그런 생명체인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도 장시간 평화가 이어지고 있다 보니 극우 세력은 다시 한 번 더 전쟁을 갈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한다. 무섭지만, 그게 인간이니까.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도 이런 해석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너무 반복되는 일상에서 따분함을 느끼기에 '어긋난 일탈'을 하고 싶어 하게 되고, 그런 사람이 모여 무리를 이루게 되니까 여러 사회 폭력이 일어나는…. 청소년의 비행부터 시작해 군대라는 집단에서 일어나는 폭행, 그리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극우의 군국주의 주장. 그 모든 게 닮았다.


 《사신의 7일》은 이런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주면서 야마노베가 혼죠에게 다가가 일을 도모하는 일을 그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매력적이었다. 퍼즐식 구성과 치밀한 복선을 파악하며 이야기를 읽는 그 재미를 꼭 느껴보기를 바란다.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 사신 치바가 등장하는 작품은 절대 허례가 아니다.


 이사카 코타로의 장편 소설 《사신의 7일》을 읽으면서 정말 오랜만에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내일부터 다시 시작할 무료한 일상 속에서 어쩌면 사람들은 또 한 번의 분란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극우와 서북청년단이 지지하는 박근혜 정부처럼,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는 이스라엘처럼, 중동과 전쟁을 하는 미국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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