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승부 조작에서 엿본 거미줄 사회 한국
- 시사/사회와 정치
- 2014. 9. 29. 07:30
세상의 불합리에 다른 선택지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한국 사회는 참 많은 별명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에 내가 '우리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이름은 음주 사회'이라는 글을 작성했었는데, 그 이외에도 우리 한국 사회에 붙일 수 있는 또 다른 이름은 많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학연, 지연, 혈연으로 엮이는 '인맥 사회'라는 이름이다. 아마 우리 사회의 이런 이름을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두 번쯤은 그 의미를 강하게 느껴보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학연, 지연, 혈연 등의 관계는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존재하고 있는 관계다.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간판을 달았던 시대만이 아니라 좀 더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는 이런 관계 속에서 파벌을 형성해왔다. 그리고 그 강한 파벌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면서 많은 영향력을 우리 사회에 끼치고 있다. 특히 친일파를 중심으로 한 거미줄처럼 얽힌 그들의 관계는 무너뜨릴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시민이 우리 사회를 가리켜 '인맥 사회'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맥이 있어야 취업도 할 수 있고, 좀 더 좋은 환경 속에서 좀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부정하고 싶은 이야기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사례가 이를 부정할 수 없게 한다. 이 인맥으로 인해서 어떤 사람은 엄청난 대우를 받지만, 어떤 사람은 부당한 대우 속에서 좌절을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누구나 아는 사람 먼저 챙길 수도 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같은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사람은 언제나 동일한 조건에 있을 때 아는 사람을, 자신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게 어쩔 수 없는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굴레가 오랫동안 우리 한국 사회 중심에서 크게 영향력을 미치면서 '안부터 썩어가는 사회'를 만드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mbn
얼마 전에 TV 뉴스를 통해서 태권도 승부 조작 혐의가 밝혀진 소식이 전해졌다. 이 사건의 개요는 한 시합에서 우세로 이기고 있던 한 학생이 마지막 라운드에 갑작스럽게 경고 누적을 잇달아 받으면서 패배를 했던 건데, 이 판결이 부당했다고 주장하며 그 학생의 아버지가 유서를 남기면서 자살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전면 조사에 들어갔던 사건이다.
애초 태권도 협회는 승부 조작이 아니라고 말했었지만, 경찰 조사 결과 서울시 태권도 협회 사무국장이 연루된 조직적인 승부 조작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당시 자살한 아버지의 아들과 맞붙었던 상대 선수의 아버지가 같은 학교의 후배였던 감독에게 "아들이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입상 실적을 만들어 달라."라는 부탁을 하면서 승부 조작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아, 뭐라고 말해야 할까? 역시 체육계의 비리는 어쩔 수 없는 듯하다. 파벌이 깊게 관여하고 있는, 늘 모든 사람이 끼리끼리 어울리는 이런 좁은 동네에서는 이 같은 조작이 쉽게 일어나는 것 같다. 이전에는 인터넷 뉴스를 통해 중·고교 야구팀의 선발은 학부모가 얼마나 감독에게 많은 돈을 주는 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충격적인 기사를 읽어본 적도 있었다. (몇 년 전에는 축구 승부 조작도 있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더 많을 거다.)
우리 한국 사람에게 있어 체육계에서 볼 수 있는 거미줄처럼 연결된 파벌 속에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인정받지 못하는 모습은 드문 일이 아니다. 지난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볼 수 있었던 스케이팅의 왕자 안현수가 그랬었고, 괘씸죄로 여러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마린보이 박태환이 그랬었고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한 사랑이 아빠 추성훈이 오래 전에 한국 대표를 달지 못했던 일이 그랬었다.
넓은 분야를 걸쳐서 거미줄이 처져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 거미줄을 벗어나 독자적인 노선을 통해 어떤 길을 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인맥을 만들 수 있는 학교를 선호하고, 직장을 선호하고, 배우자를 선호하는 것이다. 아직도 그런 학연·지연·혈연이 강하게 작용하는 한국에서는 그 방법만이 남아 있을 뿐이니까.
오죽하면,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게이츠, 우주 과학자 스티븐 호킹이 한국에 있었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사람이라고 말하겠는가? 한국은 자라나는 새싹을 키우기보다 짓밟는 사회다. 그 자라나는 새싹이 언제나 자신의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이어야 조금 자랄 수 있도록 해주고, 테두리 외부에서 자라게 되면 철저하게 짓밟아 다시는 생명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잔인한 사회다. (이용하다가 버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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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현상이 '스포츠' 분야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 한국 사회 자체가 커다란 거미줄 사회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기저기 많은 분야에 이런 인맥과 지연·혈연·학연을 통한 강한 거미줄이 만들어져 있다. 특히 가장 공정해야 하는 정치계에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 인사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낙하산 인사가 일을 엉망으로 만드는 일이 빈번하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2014년 대한민국을 통해 똑똑히 보고 있다. 자신과 반대되는 세상에서 나온 정치적 인물은 철저히 짓밟아버리고, 언제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있는 한국의 정치를 말이다. 그래서 한국 정치는 좀처럼 시민을 생각하고, 시민이 먼저 놓이는 정치가 아니라 언제나 가진 자가 모든 것을 더 누리게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거다.
(투표도 마찬가지로 이루어진다.)
군대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줄줄이 엉켜있는 거미줄 시스템 속에서 한 명의 피해는 다른 사람의 피해가 되기에 같은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끼리 군대 내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묻어버리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술 내용을 왜곡해서 자신들 입맛대로 바꾸어 버린다. 이미 이런 곳에서 '정의'라는 단어는 찾을 수 없다. 오직 '이해관계'라는 단어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 한국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첫 만남에서 '몇 살이에요?'라고 물으면서 상하 관계를 결정하고, '군대는? 대학은? 지역은?' 등의 질문을 하면서 자신과 얼마나 관련이 되어 있는 인물인지 결정한다. 비록 이런 질문이 소속감 형성을 위해, 좀 더 친해지기 위해서 하는 질문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거미줄 관계가 결국 지금 같은 한국 사회를 만들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이런 거미줄 사회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당연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수정을 위한 고민이 필요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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