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여고생 살인사건, 이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 시사/사회와 정치
- 2014. 8. 12. 07:30
아직도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지 않으려고 하실 생각이신가요?
지난주 이맘때쯤에 인터넷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김해 여고생'이라는 단어가 올라와 있었다. 오래전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 김해 여고생이 출연하며 화제가 된 적이 있었기에 '또 누가 방송을 탔나?'라는 생각을 하며 아무 생각 없이 그 검색어를 클릭했다.
그런데 검색어를 클릭하자마자 눈앞에 뜬 여러 기사의 제목은 내 눈을 의심하게 했다.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 '김해 여고생 법행 수법 잔혹 치밀' '20대 남성, 가출 여중생 꼬드겨' 등의 제목을 가진 기사들이었는데, 보면서도 '어떻게 이런 일이!'이라는 말을 내뱉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10대 청소년이 일으키는 여러 심각한 강력 범죄가 많이 보도되고 있었다. 과거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은 같은 또래의 두 청소년이 갖은 고문을 하다 피해 학생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던 일이었는데, 그런 일은 이제 아예 우스운 수준이 되어버렸다.
피해 학생이 자살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 학생이 직접 죽여서 그 시체를 암매장하고 훼손하는 수준 정도가 되어야 '청소년의 심각한 범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시기에 인터넷에서 논란이 된 윤 일병 사건도 그런 청소년이 성인이 되어 벌인 일이니까.
도대체 우리 사회가 어찌 이 정도로 몰락해버렸는지 의심스러우면서도 여전히 제대로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늘 생색내기에 그치고만 있어 답답할 따름이다. 이런 사회를 더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건 이런 사회 문제가 있는 그림자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mbc 뉴스
이번 사건을 일으킨 가해자는 무엇을 먹고 어떻게 생각했길래 저런 일을 태연히 저지를 수 있었을까? 마치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을 했던 조선인을 고문해 죽이는 일본의 그 잔인한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마치 군 독재 시절 민주화를 외친 사람을 고문해 죽이는 그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나는 가해자를 도저히 같은 나라의 사람, 같은 인간으로 볼 수가 없다. 저 가해자들은 사람의 탈을 쓰고 있는 괴물이 분명하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면서 어찌 저런 잔인한 일을 저지를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윤 일병 집단 고문 가혹 행위 살인 사건도 마찬가지다. 그 사건을 일으킨 가해자도 절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생명체들이다. 사람이라면 무릇 생명을 존중하고, 같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도덕은 마음에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그 최소한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며칠 동안 반복해서 올라오는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사를 자세히 읽으면서 그 여고생들의 뒤에는 20대 남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체로 이야기는 가출한 여중생 두 명이 20대 남성의 꼬드김에 넘어가 당했던 일을 그대로 되풀이한 식이었다.
그런 상황을 배경으로 사건에 관해 이야기를 하자면 과연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이라는 이름이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 '20대 남성 가출 여학생 꼬드겨 살인해'라는 말이 더 옳은 사건의 핵심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글쎄,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이 시켜서 했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고, 오랜 시간 동안 그런 환경 속에서 '죄책감이 옅어지는' 그런 환경 속에서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용서될 수 없는 일이다. 과연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20대 남성과 여고생 두 명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 모르겠다.
ⓒ통계청 보도자료
우리는 이 '김해 여고생 살인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더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은 아주 특이한 사건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10대 청소년의 옅은 죄책감과 약한 처벌은 지금도 많은 범죄를 부추기고 있으니까.
위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는 통계청에서 볼 수 있는 가출 청소년의 통계를 그린 그래프다. 해가 지날수록 가출 청소년의 비율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청소년 인구는 줄어들고 있음에도), 그 가출의 원인이 대체로 부모님과의 갈등이 주된 원인인 것을 알 수 있다.
몇 년 전에 방송된 《학교의 눈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가출하거나 학교 폭력 가해자로 지냈던 학생(혹은 피해 학생이었던) 대부분이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보거나 부모님과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았다. 즉, 가정환경이 청소년의 특정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10대 청소년의 일탈은 결국 가정에서 시작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부모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흔히 던지는 하나의 날카로운 말이 청소년의 가슴을 찔러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청소년 범죄의 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이게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청소년 범죄에 대한 작은 출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상처받은 10대 청소년이 가출해 범죄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반복할수록 죄책감은 옅어지면서 점점 더 심각해지는 그런 맞물린 시스템이 이렇게 완성되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건 그런 청소년이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는 한, 그런 성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의 배후이자 실질적인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20대 남성이 그렇게 똑바로 자라지 못한 성인의 대표적인 예라고 말할 수 있다. (윤 일병 사건의 가해자도. 그들은 괴물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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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우리 주변에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고 생각하고, 내 아이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건 착각일지도 모르고, 그저 내가 보기 싫은 건 보지 않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릴 때 그렇게 깊은 어둠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얕은 어둠 속에서 당했던 한 명의 상처투성이가 되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평범한 우리 일상 속에 그 어둠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왜 사람이 그것을 외면하려고 하는지도.
결과만 보려고 한 채, 원인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원인을 외면한 채 그저 결과에 대해 대응만 하려고 한다면, 제2 제3 제4 여고생 살인사건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진 순간에도 가출 청소년을 이용한 성인의 악랄한 범죄는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거다.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빛과 어둠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 빛만 바라보며 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세상에 빛만 바라보며 빛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이 보여준 건 어두운 골목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뒷모습이다. 이게 현실이다. 언제까지 이 현실을 보이지 않는다며 외면만 할 생각인가? 다 고치지는 못하더라도 원인을 찾아 하나둘씩 해결하려고 해야 좀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입에 침도 바르지 않은 채 '문제를 개선하겠습니다' '몰랐습니다' '책임지고 물러나겠습니다'고 말하는 어른과 정치인이 아니다. 행동으로 옮기면서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불의에 맞설 수 있는, 다수의 잘못에 맞설 수 있는 어른과 정치인, 그리고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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