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뀌지 않더라도 투표해야 하는 이유
- 시사/사회와 정치
- 2014. 6. 3. 07:30
투표하면 세상이 갑자기 바뀌냐고요? 아니요. 여전히 세상을 살기 힘들 겁니다.
6월 4일 지방선거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나처럼 미리 사전투표를 마친 사람은 지방선거일 당일 휴식의 시간을 보내다 저녁에 투표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릴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침 일찍 투표소를 찾아 나의 소중한 한 표를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준다고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시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사람에게 전하고자 할 것이다.
6월 4일 지방선거일을 하루 앞두고 여기저기서 많은 후보와 지원자가 총력적은 벌이고, 선거관리위원회를 비롯한 일부 시민은 투표 독려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뉴스를 통해서 투표 독려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어제 오후에도 비가 오는 날씨 속에서도 플랜카드를 들고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는 각 후보 진영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6월 4일 지방선거일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여전히 이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어 안타까운 기분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사전투표 투표율이 11.49%에 이르면서 역대 최대 투표율을 많은 사람이 기대하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의 전체 투표율이 90%에 이르기를 기대하는 건 당장 지구 온난화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은, 전 세계의 기아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은 기적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사전투표소 모습, ⓒ노지
매번 이런 투표를 해야 할 때 투표를 하는 사람도 많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투표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항상 많은 강구책을 생각하지만, 정치에 관심이 없다며 혹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투표하지 않는 사람이 투표하도록 하는 데에는 너무 큰 어려움이 따른다. 차라리 그동안 실효를 보지 못한 정책보다 페이스북에서 보았던 '투표하면 마리오 피규어 준다고 하면 대박 날듯'이라는 말에 더 구미가 당기는 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보자. 왜 투표권을 가진 사람 중 투표하지 않는 사람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어차피 내가 한 표를 행사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아.', '뽑을 인물이 없다. 다 도토리 키재기다.', '투표한다고 해서 내가 얻는 이익이 없다.' …라고 말하며 세상에 대한 희망과 미련을 애초에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늘 좋은 공약을 내세우는 후보를 뽑아도 죄다 국민을 상대로 버럭하는 사기꾼이니 그냥 지레짐작으로 '또 그놈이 그놈이겠지.'라며 포기해버리고 마는 거다.
글쎄, 다른 사람은 이 같은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도 내가 선거일에 던지는 한 표로 세상이 바뀐다거나 혹은 이 후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다. 아마 나만 아니라 투표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모두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내가 투표한다고 해서 내일 해가 서쪽에서 떠서 동쪽으로 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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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가 꾸준히 투표해야 하는 건 '절대 저 사람만큼은 당선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고, 이 구린내 나는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구린내가 덜 나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조금이라도 더 시민을 존중하는 사람이 중요한 요직을 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조금이라도 더 최악을 막고 차선을 선택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당장 세상이 바뀌지 않더라도 더 악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조금씩이나마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투표를 하고 있다.
투표한다는 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지 않을까? 우리가 지금 당장 새로운 변화를 위해 행동한다고 하더라도 당장 내일 세상이 뒤집히기를 기대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을 조금씩 사람 사는 세상으로 바꾸는 일을 포기하는 일은 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우리가 변화를 포기한 채 현재에 안주해버리면 세상은 썩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썩은 세상에서 고통받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겁 없이 할 정도로 인생을 길게 살지 않았다. 그래도 25년이라는 인생을 사는 동안 정말 말도 안 되는 비상식적인 일이 흔하게 일어나는 모습을 내 눈앞에서 보았었고, 한때는 피눈물을 흘리며 땅을 내리치며 대성통곡해야 했던 피해자이기도 했었다. 울다 지쳐 잠들 때에는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부디 세상이 멸망해 있기를….'라고 간절히 바랬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게 우리가 사는 세상인 것을, 이게 우리 인간이 형성한 사회의 어쩔 수 없는 모습이라는 것을…. 세상이 이 지경으로 돌아가는 것을 그대로 옆에서 방관자로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피눈물을 흘리며 고통 속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날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번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가, 공권력에 힘없이 희생당하는 사람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절대 그럴 수가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시뻘겋게 충혈된 눈에서 흐르는 피눈물과 통곡이 가득한 세상이 되느냐…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친구와 가족과 연인과 '헤헤헤'하며 바보 같은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세상이 되느냐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지구가 갑자기 역회전하지 않듯, 세상도 갑자기 바뀌지 않을 거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기 위한 작은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하는 투표는 그 작은 노력의 대표적인 예다.
잿빛 세상이 돌연 장밋빛 세상으로 바뀔 수는 없다. 하지만 차츰 잿빛을 옅게 하면서 색을 새로 칠할 수는 있다. 바로 우리의 작은 실천으로 말이다. 부디 이 당연한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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