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할아버지의 외침 속에서 본 슬픈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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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지나가다 들은 한 할아버지의 외침 속에서 본 슬픈 자화상


 어제오늘은 6·4 지방선거 사전 투표가 있는 날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여러 곳에서는 이미 사전투표를 마친 인증샷이 대거 올라오고 있는데, 오늘 31일인 아침에 나도 사전 투표를 하려고 한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서도 사전투표를 마친 사람이 있을 것이고, 혹은 오늘 사전투표를 할 예정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전투표는 부재자 투표와 달리 이전에 특별한 신청을 할 필요 없이 각 시의 읍·면·동 사무소에 신분증만 가지고 가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다가오는 6월 4일에 일이 있어 투표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제도이고, 잊지 않기 위해서 미리미리 투표를 해두려는 사람들에게도 이 사전투표는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 사전투표를 독려하기 위해서 각 선거 캠프에서도 꾸준히 움직이고 있는데, 나는 어제 부산 국제 모터쇼를 다녀오면서 한 할아버지의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글쎄, 그 할아버지 같은 사례는 드문 것이 아니라 지난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갔을 때에도 아주 뻔히 볼 수 있었던 사례라 특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 할아버지의 외침 속에서 지금 우리나라의 슬픈 자화상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할아버지는 지하철을 기다리는 승객이 있는 곳을 활보하며 이렇게 외쳤다.

 "젊은이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필요합니다! 종북좌파 세력에게 힘을 실어줘서는 안 됩니다! 종북 좌파 세력은 척결해야 합니다!"


뉴시스


 그건 할아버지가 긴 인생을 살아오면서 뼛속 깊이 새긴 가치관이기에 내가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저 그 할아버지가 고래고래 고함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하하하하하"하며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을 뿐이었다. 블로그에 평소 이런 글을 쓰고 있다 보니 누군가는 '네가 네 주장에 자신이 있다면 가서 한소리를 하지 그러느냐?'고 비아냥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 할아버지의 가치관을 내가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저 할아버지 잘못 생각하고 계시다'고 생각하지만, 그 할아버지의 인생을 부정할 마음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저렇게 군복을 입고(당시 지하철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군복은 아니었지만, 거의 군복에 준하는 옷을 입고 있으셨다.), "종북 좌파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 박근혜를 지켜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은 상대하지 않는 게 낫기 때문이다.


 괜히 반독재국가인 이 나라에서 저런 사람들을 잘못 건드렸다가 몰매라도 맞으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는가. 이 대한민국은 절대 우리의 편이 되어주지 않을 거다. 그저 힘없는 시민의 몸부림을 벌레 밟듯이 하는 이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종북좌파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헛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진실을 좇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나는 우리나라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큰 헛소리는 딱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예수를 믿어야 천국에 갑니다!"는 말과 "저놈은 종북좌파 세력이다!"는 말이다.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만큼 그 헛소리에 그렇게 힘을 쏟고, 진실마저 외면한 채 거짓으로 뒤덮어버리려는 목소리는 아주 드물 것이다. 모든 사람이 '미친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그 태도에 감탄마저 나온다.


 비록 내가 그런 목소리를 내는 할아버지의 인생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기에 지금도 그렇게 살기를 고집하는 슬픈 자화상을 엿보는 듯하여 참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나이 먹도록 나라가 던져주는 콩고물에 속아 얼마나 비참한 인생을 살았을까. 그저 불의가 당연하다고 교육받은, 세뇌받은 그 삶이 얼마나 엉망진창이었을지는 쉽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게다가 그 사람들은 그 잘못된 나라의 방식과 삶의 방식을 자식 세대에도 물려주려고 하고 있으니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이제 세상은 그 잘못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궤도로 돌아서야 하는데, 여전히 그 사람들이 '나, 있는 사람이야!'라며 힘을 발휘하고 있으니 입에서 "이런 18색 크레파스 같은 세상"이라는 말이 툭 튀어나올 지경이다. 당신은 저런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으며 물리치료 선생님과 함께 나눈 말이 문득 머리를 스친다. "우리나라의 진짜 민주주의는 50년 후에 아버지 세대가 다 돌아가신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라는 말이. 정말 그럴 것 같아 괜히 기분 좋은 토요일이 착잡해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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