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의 사상, '일베, 도대체 그들은 누구인가'
- 문화/독서와 기록
- 2013. 12. 22. 07:30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 일베(일간 베스트)의 사상과 정체를 읽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여러 정치판과 함께 가장 시끄러운 곳 중 한 곳은 바로 '일베'라는 곳이다. 어떤 연예인들의 성추행 발언부터 시작해서 다른 사람을 헐뜯는 일이 비일비재한 일베에서는 얼마 전부터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붙이기 시작한 '안녕들 하신가요?' 대자보를 훼손한 인증샷을 올리면서 또다시 한 번 더 사회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일베를 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가리켜 '일베충=쓰레기'라고 말할 정도로 상당히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1년 개설하게 된 일간 베스트 저장소는 2012년을 전후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유머 사이트로 성장했다. 일베는 본래 디시인사이드의 '야구갤러리'(야갤), '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코갤), '정치사회 갤러리'(정사갤) 등지에서 만들어진 유머 자료들을 보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일간베스트'라는 커뮤니티 명칭도 매일 추천할 만한 자료들을 소개한다는 취지에서 유래했다. 후일 야갤, 코갤, 정사갤의 이용자들이 일베에 유입되면서 별개의 인터넷 커뮤니티로 독립하게 되었다. (p30)
개인적으로도 일베에 한 번 공격을 당했던 적이 있어서 일베를 보는 시선이 그리 좋지 않다. 내가 공격을 당했던 건 몇 년 전에 공중파 한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것이 원인이 되었는데, 그들이 나를 공격했던 건 '히키코모리 오타쿠'라는 이유였다. 그 당시에 상당히 많은 블로그 유입이 오로지 '일베' 주소가 뜰 정도로 많은 사람이 블로그에 들어와 험담을 했고, 일베 게시물과 댓글에서도 참 많은 욕을 먹었다. 덕분에 내가 수명이 꽤 길어진 듯하다.
아무튼, 이 일베는 사람을 헐뜯는 일은 늘 솔선수범하여 하고 있어서 사회 문제 중 하나로 대두하고 있다. 연예인들에게 고소를 당해도 그들은 '그냥 장난이었다. 이렇게 심해질 줄은 몰랐다.'라는 초·중·고등학생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똑같이 늘어놓고 있다. 이 변명만 보더라도 일베를 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상당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우리는 일베라는 곳이 논란거리가 되는 일을 일으키는 곳이라고 알고 있지만, 정확히 일베라는 커뮤니티와 그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지닌 어떤 사상이나 목적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누군가는 '그런 놈들에게도 사상이나 목적이 있어?'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한 커뮤니티 사이트가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건 그냥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내 블로그도 그정도 방문자 수가 확보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만의 사상과 목적, 공감대가 아주 잘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뭉치게 하였을까. 그런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책이 《일베의 사상》이라는 책이다.
일베의 사상, ⓒ노지
이 책은 일간 베스트 저장소… 일베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왜 그들이 그토록 짤방 같은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 사람들을 비난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일베의 사상》이라는 이 책은 단순히 일베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무작정 손가락질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객관적인 시선에서 그들의 사상과 그들의 행동에 대해 자세히 해석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아마 나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책을 통해 '일베'이라는 것에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에서 읽을 수 있었던 일베 이용자들이 일으킨 어떤 사건과 그 사건에 대한 해석을 몇 가지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일베는 엘리트인가, 민중인가
무엇보다 대다수 일베 쥬저들은 혐오의 자유로운 발산에는 바로 '자기혐오'라는 윤리적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일례로 일베 유저들도 스스로를 '일베충'이나 '베츙이'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자기비하는 현실의 사회적 지위와는 무관하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2012년 일베에 있었던 이른바 '학력인증 대란'이 좋은 방증이다.
…(중략)
학력인증 사태가 전달하는 핵심 메시지는 '인터넷에서만큼은 우리의 혐오 문화의 자율성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자율성에 대한 요구에는 자신의 혐오 문화를 그 자체로 인정할 것에 대한 요구가 포함되어 있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무엇보다 일베를 '현실과 구별되는' 자신들의 자율적인 언설 공간으로 존중해달라는요구가 함축되어 있다. 이를테면 일베 유저들의 다수는 현실사회에서 맥락 없이 '김치녀' 운운하지 않는다. 결국 '그렇게 번듯한 직장과 학교에서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으니까 인터넷에서만큼은 욕망의 정치적 해방구인 일베라는 공간을 건드리지 말라,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자신들 나름의 정체성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학력인증 사태에서 일베 유저들은 '나는 혐오할 권리가 있다'는 자신들의 권리 주장을 새로운 방식으로 시위한 것이다. 한편 일베는 이러한 권리 주장을 중심으로 결집하여 역설적이게도 상당히 흥미로운 평등주의적 공간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모두 다 병신이다'라는 사실에 입각해 있는 평등주의적인 형제애의 공간을 말이다. (p127)
무엇보다 일베 유저들은 자신을 희생자로 생각하기보다는 이미 현실에서 잘나고 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점은 묘하게 촛불시위대와도 비슷하다.) 그런 자신감 때문에 일베 유저들은 오히려 스스로를 인터넷에서 '마이너리티'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일베 유저들은 자기 스스로를 '일베충'이라고 희화화할 수 있는데, 이는 스스로를 (경멸조로) '넷우익'이나 '오타쿠'로 불리길 싫어하고 '깨어 있는 일본인'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재특회의 감수성과는 다르다. 또한 일베 유저들이 스스로를 애국보수라고 말할 때, 이는 이를테면 어버이연합이 말하는 애국보수와는 다르다. 그들이 내세우는 애국보수라는 정체성은 더 도발적인 것이다. 가령 그들은 젊은 시절에는 진보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보수적이어야 한다는 세간의 통념에 대해 '젊은이들도 보수적일 수 있다'며 도발한다. 일베 유저들의 애국보수적인 정체성은 주류 사회에 의해 수용되기 힘든 반골기질과 삐딱함을 공공연히 전시함으로써 성립한다. 그리고 그러한 삐딱함은, 앞서 보았듯이 자신이 원하는 국가의 이상을 굳이 현실의 국가에 의해 인정받을 필요가 없으며, 그러한 이상은 자신이 즐기고 노는 방식에 의해 저절로 실현된다는 일베 유저들의 사상과도 연결되어 있다. 일례로 유저들은 국가에 대해 기대하는 것은 안보와 외교 외에는 딱히 없다. 현실의 국가에 그 이상의 적극적인 역할을 전혀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현실사회에서 실현될 수 없는 집단적인 평등과 형제애적인 관계를 국가가 실현해주리라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p224)
이처럼 《일베의 사상》에서는 '일베, 도대체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굳이 이 일베에 관심이 전혀 없다면, 읽어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라도 일베를 비난하고 있거나 비판하고 있다면… 이 책을 꼭 한 번쯤은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상대방이 도대체 어떤 인간인지 알지 못한 채, 하는 비난이나 비판은 자신에게 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저 무작정 '일베충=쓰레기'라는 공식을 세우기보다 그들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한 번 추측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의 저자가 전하고 싶었던 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많은 사람이 일베를 손가락질하고 있지만, 그 가치판단의 기준을 자신에게 돌렸을 때… 자신도 어떤 면에서는 일베를 하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일베를 하는 사람들이 몰상식하기는 하지만, 그들도 나름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우리가 그런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일베가 일으키는 사회 문제에 좀 더 이상적인 방향으로 대처할 수 있을 테니까.
단순한 호기심에서 이 책을 읽었지만, 상당히 많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책이 시장에 나온 지 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책에서 볼 수 없는 일베가 일으킨 큰 사건들을 우리는 많이 접했다. 그 사건들을 좀 더 바로 보기 위해서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는 건 어떨까. 일베를 정말 정말 싫어하더라도 한 번쯤 읽어보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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