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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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난 삶을 살면서 언제나 주변에는 색이 있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내게 그런 색이 조금씩 가을 단풍처럼 색옷을 입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아마 고등학교 때 조금씩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던 그때부터 내 주변에는 색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그 이전까지 내 주변에서 보이는 색깔과 내 색깔은 온통 검은 칠흑이었다. 그 검은 칠흑을 메운 검정은 순수한 검정이 아니라 눈물과 좌절, 분노, 원망 등 각종 더러운 감정들이 뒤섞인 탁한 검정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중학교 때까지의 내 인생은 마치 탁한 검정으로 칠해진 직사각형의 3차원에서 사는 그런 기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그런 탁한 검정이 내 주변에서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때때로 그 탁한 검정은 나와 나의 주변을 다시 한 번 더 어두컴컴한 칠흑으로 물들인다. 마치 '너는 이 색깔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지금도 내가 종종 느끼는 이유 없는 불안감이나 우울함, 사람에게 느끼는 공포와 혐오 같은 감정은 아직도 내가 그 색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갑자기 이런 식으로 내가 색과 인생을 엮어 이야기하게 된 이유는 얼마 전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장편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라는 책을 읽고 삶에 대한 색채를 떠올려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신작 장편소설, ⓒ노지


 이 책은 남주인공 다자키 쓰쿠루의 생각과 시선을 따라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다자키 쓰쿠루는 과거 네 명의 친구와 함께 다섯 명이 모인 그룹으로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그 그룹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바로 자신 이외에 그들의 이름에는 아오(파랑), 아카(빨강), 시로(하양), 쿠로(검정) 네 가지 색이 있었다. 그 그룹에서 지낼 동안 그는 문득 '나만 색이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하였었지만, 자고 나란 나고야에서 모두 친하게 지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네 명의 친구는 나고야에 남게 되었지만… 쓰쿠루는 홀로 도쿄로 떠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종종 나고야에서 만나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해나갔다. 보이지 않는 일정한 선을 지키면서 그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그 관계가 계속 지속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사건은 갑자기 일어났다. 쓰쿠루는 네 명의 친구들로부터 갑작스럽게 '연락하지 마'라는 말을 들으면서 다섯 명이 함께 있던 그룹에서 벌어지게 된다. 그 사건은 쓰쿠루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 사건이 있었던 후로 그는 정말 죽음을 맞이할 것처럼 살았지만, 조금씩 다시 삶을 살게 된다. 쓰쿠루는 그 사건을 깊숙이 묻어둔 채 삶을 살았지만, '사라'라는 한 여성을 만나게 되면서 그는 자신이 과거에 있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를 하게 되고― 사라의 권유로 '그 사건'에 대해 알아보기로 결심한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라는 제목은 바로 거기서 나온다. 다자키 쓰쿠루는 옛 네 명의 친구를 만나게 되고(한 명은 이미 없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러 사실을 알게 됨과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은 그렇게 다자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난 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는 지루하지 않고, 책을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계속 빨려 들어가 다자키 쓰쿠라라는 인물이 되어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랬었다.



 글의 앞부분에서도 이야기했었지만, 내 주변에서 색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지금은 알 수 없는 몇 가지 색이 분명히 있다. 그저 탁한 검정만이 있었던 중학교 시절 때까지의 시간과는 다르게 말이다. 그저 이름에서 색깔을 볼 수 있어 색채라고 말하지만, 우리 사람은 분명히 저마다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분명히 그 색이 어떤 색인지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좋아하는 색, 싫어하는 색이 아니라… 내 삶과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색을.


 이 책은 해피엔딩 같은 정해진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쓰쿠루가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와 혼자 독백에 잠긴 시점에서 끝을 맺는다. 그런 결말이 영향을 미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 작품은 사람의 감정과 색깔, 그리고 좀 더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게 한 소설이었다. 평소 사색하는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의 이야기가 좀 더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느낀 대로, 자신이 본대로 글을 읽게 되기 때문에…. 그러나 책을 읽으면, 평소 자신의 주변을 색깔로 한 번 표현해보는 일을 자신도 모르게 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진지한 이야기 속에서 애니메이션 이야기가 웃길지도 모르겠지만, 내 인생에 색이 생기기 시작한 건 애니메이션 덕분이었다. 아마 애니메이션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탁한 검정으로 채워진 칠흑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문득 내가 보았던 한 애니메이션의 히로인이 말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말은 지금 글을 읽는 독자에게 묻는 말이기도 하기에 마지막에 남겨둔다.


 "너는 무슨 색이 되고 싶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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