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상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 문화/독서와 기록
- 2013. 2. 14. 07:00
상실에 대한 153일의 사유, 모든 상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람은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상처를 입기도 하고, 때로는 그 상처의 아픔으로 죽음을 각오하기도 한다. '나는 인생을 살면서 한 번도 상처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 사람의 삶은 좋든 싫든 사람과 필수불가결하게 엮이는 삶이고, 사람과 사람이 엮이는 사회에서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심한 상처를 받은 사람은 사람과 만나기를 거부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서는 일어난다. 히키코모리나 묻지마 범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 정도면, 우리 삶에서 상처라는 단어가 지워질 수 없는 것은 사람이 불행한 생물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상처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저마다 주관적인 생각이 다를 것이기에 누구 한 명이 깔끔하게 정의를 내릴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사소하거나 '저걸로 무슨 상처를 받아?'는 생각을 하는 일로도 누군가에게는 정말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는 일이 있다. 예로부터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를 지닐 것을 가르쳤지만, 사람이라는 것은 일단 최우선적으로는 자신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할 수밖에 없는 생물이다.
오늘, 나는 이 상처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한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상처'를 이야기하는 책이지만, '상처'에 관하여 확실한 정의는 내리지 않는다. 그저 작가 자신의 기록을 그대로 옮긴 책으로, 생각하는 것은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다. 내가 소개할 책은 바로 '모든 상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책이다.
모든 상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노지
이 책을 읽는 누구라도 절대로 빠르게 이해하며 읽을 수는 책이 아니라고 난 생각한다. 이 책은 깊은 사색을 요구하는 책이다. 한 이야기, 이야기는 짧지만… 한 번 읽는 것으로 깊게 생각할 수는 없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어보며 조금 더 깊이 생각하게 되고, 그리고 저자의 나와 마찬가지로 상실이나 상처에 대해 한 번쯤 더 생각해볼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책은 어떤 정의를 내리는 책이 아니라 저자의 단편적인 회고록이다. 그래서 우리는 공감하거나 이해를 하는 것이 조금 난해할 수가 있다.
물론, 평소 깊은 사색을 요구하는 책을 많이 읽었던 사람이라면, 조금 다르게 책이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조금 난해한 책이었다. 공감하면서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부분도 있었지만, 그저 침묵하면서 몇 번이나 읽어보았다가 책장을 넘긴 부분도 적잖게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좋겠어." 얼마나 많은 부부와 연인, 또는 친구들이 이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나간 과거를 전부 지워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훗날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말은 공연히 내뱉은 허무한 말이 되고 만다.
정말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철저히 변화해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담배를 끊거나 술을 줄이는 것처럼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용모나 목소리를 변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상대방에게 주었던 자기 삶의 일부, 상대방의 손에 넘겨주었던 자기 생명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이다.
그러헥 하면 온전치 못한 불구자가 된다. 상처가 다 나아 새살이 돋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나중에 더 완전한 건강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면 적어도 새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되어야만 그들의 관계는 이전과 달라지고 낯선 사람들이 서로 처음 만난 것처럼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리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단지 여기서의 '우리'는 이미 '우리'가 아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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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이 책의 제목만을 접하였을 때, 나는 이전에 읽었던 '내가 아파보기 전에는 절대 몰랐을 것들'(링크)이라는 책과 상당히 비슷한 책일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전혀 다른 분야의 책이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이다. 그 회고록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어떤 식으로 풀이할 것인지, 아니면 전혀 하지 않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사색하는 독서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권하고 싶은 책이지만, 즐기는 독서나 정보를 얻는 독서를 하는 사람에게는 썩 권하고 싶지는 않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판단이므로,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러니 나의 의견은 어디까지나 '참고'만을 해줬으면 한다. 상처와 슬픔에 대해 깊은 사색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이 책은 마련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이 글을 읽고 끌린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더라도 선택을 한 독자에게 하나의 큰 계기가 되리라 확신한다.
하지만 회상을 글로 쓰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현재와 과거 사이에 거리를 벌리는 일인 동시에 회상과 글쓰기 사이에도 확실한 칸막이를 만드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글로 회상하는 일은 일종의 정신적 수련이다. 지관을 수련해서 자신을 기쁘게도 괴롭게도 하는 소재들을 제거하고 온갖 생각의 생성과 적멸을 관찰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것들이 자신을 기쁘거나 괴롭게 하는 조건을 반성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욕념을 초월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경지에 닿을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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