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공부를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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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공부를 하십니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한번도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이나 독서실에 박혀서 책장을 넘기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 그 사람들 중에서는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수능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일부는 고시공부 혹은 스펙을 쌓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공부를 하는 사람들 중에서 공부를 하는 진짜 목적을 아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현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를 모른채, 막연히 남들이 하니까 따라서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런 것을 대학교에서 흔하게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은 미래가 막연히 어떠한 것도 보이지가 않기 때문에, 그냥 무작정 스펙을 쌓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단순히 자신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닌 남들을 위해서 공부를 하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공부를 왜 해야된다고 생각하는가?  혹시 당신도 단순히 스펙을 쌓아서 남에게 보여주기를 위해 공부를 해야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공자가 말했다.
 "옛날 사람들은 자신의 수양을 쌓기 위해 공부했으나, 요즘 사람들은 남에게 자랑하고 잘 보이기 위해 공부하는구나."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僞人 

 - 논어, 헌문 

 사람이 공부를 해야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이다. 남에게 잘 보이고, 자랑을 위해서 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다. 그저 그러한 것은 아부에 지나지 않고, 진정으로 무엇을 배운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저급한 수준이다. 스스로 지식과 교양을 쌓은 사람이 되어야만 사회로 나가 근심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공부의 목적이란 바로 이렇게 자아를 수립하고 완성하는데에 있다. 

 그렇다면 '남에게 보이기 위한 학문'이란 무엇일까?
 이는 배운 지식을 수단이나 기능으로 삼아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다. 공자께서는 "너는 군자유(君子儒)가 되어야지 소인유(小人儒)가 돼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을 하셨었다. 즉, 수양을 쌓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지 눈앞의 작은 이익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신 말씀이다.

 나는 '위단의 논어심득'에서 위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 어찌 세상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는지 새삼 놀랐었다. 옛날에도 선비라는 자가 자신의 수양을 쌓는 것이 아닌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학문을 하는 자가 있었듯이, 현대인들은 대부분 자신의 수양을 쌓는 것이 아닌 단순히 남에게 보여주기를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공부의 의의를 어디에 두는지 무슨 그리 큰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실을 따져보면 현저히 차이가 난다. 소위 스펙만을 쌓기 위해서 토익,JLPT,고시공부 등을 하는 사람들은 결코 자신을 위해서 토익,JLPT,고시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신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에 뜻(꿈)이 있기에 열정적으로 매달리기 때문이다.

 어느 기업의 면접에서 면접관이 두 사람의 후보생을 앞에 두고 왜 JLPT를 공부를 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A는 "저의 스펙을 더욱 높이 쌓아서 남이 저를 더욱 뛰어난 인재라는 인식을 심기 위해서 공부를 했다"고 대답했다.

 한편 B는 "저는 애니메이션을 참 좋아합니다. 애니메이션을 보다보니 실제로 일본여행을 가고 싶어지더군요. 그래서 저는 무작정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었습니다. 일본에서 사람들과 만나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에 대해서 더욱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서 JLPT 공부를 했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일본인 친구들도 많고, 자연스럽게 일본 내에서의 경력을 쌓을 수가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위 두 사람 중에서 누가 면접에 붙을지는 불보듯 뻔하다. 당연히 후자쪽에 속하는 B가 면접에 붙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배움을 더욱 넓히기 위해서 공부를 하였지만, A는 단순히 남에게 잘 보이기를 위해서 공부를 했다. 이러한 두 사람 중에서 누가 일을 더욱 열정적으로 할 지는 뻔하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착각을 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하는 공부는 허황된 일일 뿐이다. 그렇게 공부를 해서는 결코 자신에게 남는 것은 거의 없다.

 생각을 해보라. 남에게 단순히 잘 보이기 위해서 무엇을 하는 사람은 그 시간 1분 1초가 소중하게 느껴지지도 않을 터이고, 일부는 오히려 괴로운 시간으로 느껴지기까지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 사람은 그 시간 1분 1초가 아주 소중하게 느껴진다. 시간이 제발 조금이라도 더 느리게 흘려가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을 한다. 

 전자와 후자 중 어느 쪽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후자 쪽에 속한 사람이 전자 쪽에 속한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가 있다. 단순히 결과로써도 월등히 높을 뿐만 아니라, 차후에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도 더욱 가치있는 것을 손에 넣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 했던 기업의 면접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후자 쪽에 속한 사람은 아주 많은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질 수가 있다. 이러한 스토리 하나하나가 앞으로의 시대에서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하나의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 쪽에 속한 사람은 그러한 자산을 하나도 손에 넣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단순히 그 일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였고, 자신의 꿈이 담긴 것이 아닌 단순히 눈앞에 놓일지도 모를 이익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이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빈껍데기뿐인 결과물뿐이다.


 어느 책에서 사람은 자신의 수양을 쌓기 위해서 배우고, 그 배움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퍼뜨릴 때, 진정으로 된 사람이 된다고 했다. 공자의 말씀이 담겨져 있는 논어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자기계발서 혹은 자서전을 보더라도 그러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늘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 비단, 공부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모든 것들을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만을 한다. 매번 전통시장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고위 관료들 혹은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전통시장에 얼굴을 보이거나 각종 장애인 단체에 가서 봉사를 하는 모습이 그러한 전형적인 예이다. 그래서 그들은 결코 도덕적인 인물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서 배움을 추구하는가? 자신의 위해서인가?, 아니면 단순히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자신이 어떻게 될 지를 답 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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