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타쿠에 히키코모리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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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타쿠에 히키코모리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먼저, 언제나 서두없이 일정한 분야의 집중도 없이 글을 써서 올리는 내 블로그를 꾸준히 방문해주는 방문자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번글은 간만에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최근에 '시크릿 실천법'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과거에서 비롯된 지금의 나를 한번더 명확하게 생각을 해보아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글의 제목과 우측 사이드바 상단에서 나의 소개를 '오타쿠에 히키코모리인 니트블로거'라고 써두었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오타쿠와 히키코모리가 무엇인지 설명하도록 하겠다. 


 오타쿠(일본어: おたく, オタク, ヲタク)는 일반적으로 가타카나(オタク)로 표기)는 1970년대에 일본에 나타난 서브컬처의 팬들을 총칭하며 독특한 행동 방식,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원래는 애니메이션의 SF 팬에 한정해 불렀지만 명확한 정의가 없었으며 현재는 보다 폭넓게 영역을 포괄하고 있으며 대상 또한 일정하지 않다. 


 히키코모리(일본어: 引き籠もり (ひきこもり))는 방이나 집 등의 특정 공간에서 나가지 못하거나 나가지 않는 사람과 그러한 현상 모두를 일컫는 일본의 신조어이다. 도지코모리(閉じこもり 토지코모리[*])라고도 하며, 2채널 등의 일본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힛키'(ヒッキ)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우리말 다듬기에서 폐쇄은둔족(閉鎖隱遁族)이라는 말로 다듬었으나, 보통 은둔형 외톨이(隱遁型-)라는 단어가 더 많이 사용된다.


 위와 같은 것이 오타쿠와 히키코모리다. 이전에 블로그에서 많은 글들을 통해서 내가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는지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나의 과거는 지금도 가끔 악몽에 시달릴정도로 끔찍했다. 웃을 수조차 없었고, 그저 매일 울거나 슬픈 나날을 보냈었다. 그러한 이유에는 학교에서의 오랜기간동안 지속된 따돌림과 폭력, 집안에서 번번이 일어나는 가정폭력으로 인한 가정불화가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랬던 나에게 애니메이션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희망적인 존재다. 만약, 내가 중학교-고등학교 시절에 애니메이션을 보지 못하고, 흥미를 갖지 못했다면 나는 절망에 빠진채 죽었을지도 모른다. 꿈도 희망도 아무것도 갖지 못한채 말이다. 그런 생활을 하고 있던 나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준 것은 애니메이션이였다.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나는 꿈을 배웠고,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애니메이션에서 나아가 원래 친구가 없어서 언제나 홀로 하던 독서에서 훨씬 더 많은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 자신을 성장시킬 수가 있었고, 덕분에 나는 다른 같은 나이대의 아이들보다 더 빨리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시사문제에 관해서 깊게 생각하고 다룰 수 있는 것은 이 때의 영향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때부터 사회에 대한 모순을 글로 표현하는 것을 시작했었으니까 말이다. 

 이전에 말했던 적이 있었다. 나를 죽이려고 한다면, 나에게 최대 한 달동안 애니메이션과 책, 인터넷 아무것도 접하지 못하게 하면 된다고 말이다. 그 이유가 바로 위의 사정에서 알 수가 있다. 나에게 애니메이션과 책은 내 인생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참조글 : 성장의 아픔을 표현한 애니메이션 ef


'내 방의 모습. 더운 여름에는 거의 방에서 나가지 않는다'


 그렇게 계속 지낸 나에게 또 한 가지의 단점이 생기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히키코모리증이 있다는 것이다. 난 은둔형 외톨이정도의 수준은 아니나, 대인기피증이 있다고 말을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그 이유는 과거에 있었던 많은 일들이 지금까지 나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현재의 나는 적당한 거리로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홀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도 혼자 밥먹고, 혼자 강의 들으러 가고...등)

 나는 사람이 많고, 상당히 시끄러운데에 가면 '아, X발. 수륙탄이라도 있으면 던져서 다 죽여서 좀 조용하게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수백번도 더 한다. 게다가, 언제나 혼자서 생활하는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사적인 이유로 직접 만나서 관계를 이끌어가는 것에 아주 힘이 든다. 그렇다보니, 나는 자동적으로 항상 인터넷이라는 가상을 통해서만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이끌어갈 수가 있게 되었고, 항상 직접보다는 간접적으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을 더욱 선호한다. 

 
 아마, 나를 직접 만나본 사람들은 조금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내가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닌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진짜 내 모습이고, 어떻게 바꿀 수도 없는 내 모습이다. 나는 이런 나를 바꾸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사회에서 조금 더 적응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수 많은 자기계발서와 인간관계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런 책들을 읽은 나는 나라는 인간을 본질적으로 바꿀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사회에서 필요한 스킬은 본능적으로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어떤 시점에서 어떻게 대해야된다는 것이 나에게는 머릿속에 게임 공략표처럼 짜여져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공적인 자리에서는 어느정도 사람과의 원만한 관계유지가 가능하나, 사적인 관계는 지속적으로 그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사적으로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 내 머릿속에는 '뭘 말해야되지? 어떻게 행동해야되지? 여기선 또 어떻게 대처해야되지? 그냥 집에 가고 싶은데'라는 생각들이 멈추지 않고, 표현은 안하더라도 극심한 불안에 떨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런 난처한 상황을 겪지 않기 위해서, 왠만큼 친한 사람이 아니면 잘 만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인생은 손해보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딱히 손해보는 인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애완견처럼 집에 제대로 찾아가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면서 부산에 함께 갔을 때, 버리고 온 녀석들을 친구라고 만날 바에 그냥 혼자서 매번 '학교-집-학교-집'을 반복하는 것이 더 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행을 가더라도 혼자서 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것을 통해서 나는 많은 것을 접할 수가 있고, 배울 수가 있다. 나에게 주어져 있는 것은 무한한 공간에서 쉴새없이 나오고 있는 방대한 양의 정보다. 책과 인터넷만으로도 나는 누구를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고, 과거의 악습에서 희생되었던 과거를 통해서 나는 현실이라는 그것에 정이 떨어질데로 떨어졌다. 그렇게 착할지도 악할지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둥바둥칠바에 이렇게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내 자신의 가치의 기준을 정했다. 




 그래서, 나는 위 영상과 비슷한 이유로 오타쿠에 히키코모리증을 앓고 있는 니트블로거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니트란, 그냥 평범하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해주기 바란다. 내가 니트블로거라고 자칭하는 이유는 '하느님의 메모장'이라는 소설을 읽고, 니트탐정에 동경해 나도 니트블로거라고 칭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위 영상도 '하느님의 메모장'소설의 애니메이션판이다.) 뭐, 이것은 깊은 관련이 없는 이야기이기에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사회에 마이너스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난 생각한다. 적어도 나라를 망치고,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뛰어난 플러스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은 과거의 그 지옥같은 생활을 겪어내면서, 나 나름대로 성장하고, 내가 추구해오던 길을 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가 또 어떻게 바뀔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현재진행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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