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 더운 여름에 추천하는 미스터리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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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자와 호노부의 새로운 신작, <야경(夜景)>


 내가 '요네자와 호노부'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애니메이션 <빙과>가 그 계기였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데뷔작이었던 고전부 시리즈는 애니메이션 <빙과>를 통해 많은 국내 팬의 관심을 받았고, 국내에도 고전부 시리즈가 번역되어 정식 발매가 되면서 책을 읽어볼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 <빙과>를 볼 때도 일상 속의 작은 소재를 이용해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직접 소설로 읽은 고전부 시리즈 <빙과> <바보와 엔드 크레디트> <쿠드랴프카의 차례> <멀리 돌아가는 히나> <두 사람의 거리 추정>… 모두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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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관심을 두게 된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을 꾸준히 읽는 동안 이번 7월 국내에 요네자와 호노부의 새로운 소설이 발매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연히 그 작품을 읽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요네자와 호노부의 신작 <야경>을 일찍 구매해서 읽었는데, '역시!'이라는 감탄이 나왔다.


야경, ⓒ노지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유명한 일본 추리 소설 작가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떠올릴 때가 많지만, 요네자와 호노부 또한 일본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가지고 있다. 책의 표지와 함께 있던 띠지를 통해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가 일본에서 사상 최초 미스터리 3관왕을 달성했다고 한다.


 이번 소설 <야경>은 '야경', '사인숙(死人宿)', '석류', '만등', '문지기', '만원' 이렇게 총 여섯 개의 이야기를 수록한 단편집이었다. 이야기를 하나씩 읽어가는 동안 금세 작품에 몰입하게 하는 요네자와 호노부 특유의 전개에 빠져들었고, 모든 이야기의 진실이 대단히 놀라웠다.


 개인적으로 세 번째 이야기 '석류'의 마지막 장을 읽었을 때 소름이 돋았을 정도로 마지막이 놀라웠다. 다른 이야기도 책을 읽는 동안 눈을 떼지 못했지만, '석류' 이야기가 보여준 결말은 평소 읽던 라이트 노벨 장르에서 자주 등장하는 요소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여기서 '석류'의 줄거리만 잠깐 이야기해보자. 세 번째 이야기 '석류'는 '사오리'이라는 한 명의 미소녀가 미인로 성장하여 '사하라 나루미'와 결혼을 하고,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유코(夕子)'와 '쓰키코(月子)' 두 명의 딸을 주인공으로 하여 벌어진 작은 갈등과 욕심의 진상을 볼 수 있는 이야기다.


 사오리는 한때 사하라 나루미를 승리의 트로피로 여기면서 자랑스러워했지만, 그녀는 두 딸 유코와 쓰키코가 점점 자라면서 가계에 보탬이 되지 않는 나무리와 이혼하기로 마음먹는다. 단순히 가정 해체를 보는 듯한 이야기는 사오리의 시점과 유코의 시점으로 그려지면서 놀라운 이야기를 보여준다.


 사오리는 친권을 자신이 가지는 소송에서 나루미에게 패배해서 면접 교섭권만을 손에 넣는다. 여기에는 유코와 쓰키코가 아버지 나루미와 헤어지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유코와 쓰키코는 서로 서로의 몸을 때리면서 상처를 만들었고, 이를 폭력으로 규정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있게 된 거다.


 평범히 두 딸이 아버지와 헤어지기 싫어서 일으킨 소동 같지만, 여기에는 인간의 욕심이 들어간 엄청난 진실이 있었다. 딱히 '엄청난 진실'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오리를 따라가지 않은 유코와 쓰키코가 품은 마음은 '헐!' 하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오리는 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일본 라이트 노벨과 애니메이션에서는 '시스콘', '브라콘', '마더콘', '파더콘' 같은 단어가 자주 나오면서 캐릭터를 설명할 때가 있다. 누나 혹은 여동생을 지나치게 좋아하면 시스콘으로 부르는데, 파더콘은 아버지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을 뜻한다. 유코와 쓰키코는 그런 파더콘 아이였다!


 유코와 쓰키코가 그런 감정으로 상처를 내고 친권을 아빠에게 준 것도 놀라웠지만, 이후 유코의 독백은 더 놀라웠다. 그래서 나는 '석류' 이야기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고, 요네자와 호노부 특유의 설정과 전개에 연신 웃으면서 '대단하다. 와, 대박.'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하고 함께 살려면 어머니를 모함해야 돼."

그렇게 말했을 대 쓰키코는 주저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천진하게 아버지를 따르는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을 텐데. 덕분에 쓰키코 안에 깃든 욕망이 훤히 보였다. 결국 한 자매라는 뜻이다.

쓰기코는 아직 어리다. 아직 내 상대는 되지 못한다. ......아직은.

(중략)

매섭던 놋쇠 구둣주걱에 차츰 힘이 빠지더니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시키 일인데 마지막에는 구둣주걱을 떨어뜨리고 내 등에 매달렸다.

"미안해. 언니. 이런 짓 해서 미안해."

나는 물론 쓰키코를 용서했다. 화끈거리는 고통을 느끼며 뒤를 돌아 동생을 품에 안았다.

"괜찮아. 고마워."

그리고 놋쇠 구둣주걱을 주워 들고 가만히 웃었다.

"그럼 다음은 쓰키코 차례야."

두려워도 달아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쓰키코가 먼저 나를 때렸으니까.


석류 이야기에는 뒷이야기가 있다.

페르세포네는 석류를 먹고 일 년 중 3분의 1은 하데스의 아내가 되었다. 하지만 하데스는 어느 날 아름다움 요정에게 반하고 만다.

자신을 약탈한 하데스가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주는 꼴을 페르세포네는 용서하지 않았다. 요정을 능멸하고, 저주하고, 잡초로 바꾸어버렸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친권을 넘기기만 하는 거라면 다른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법률 책에는 아이의 희망을 비교적 받아들여준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도 그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 뿐이다.

-아름다워지기 전에 상처를. 나보다 아름다워질지 모를 등에, 비록 자그마하더라도, 평생 남을 상처를.

내가 내리친 일격은 쓰키코의 피부를 흉측하게 찢어발겼다.

그날 밤 보았던 나신은 말간 달처럼 아름다웠다. 누구든 분명 입술을 가져가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p186)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은 이렇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진실로 독자를 놀라게 하고, 그 진실을 따라가는 과정조차 너무 흥미로워서 쉽게 독자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과거 애니메이션 <빙과>가 인기 있던 이유는 소설 고전부 시리즈의 이 묘미를 애니메이션에서 잘 살려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의 새로운 미스터리 단편집 <야경>에서도 짙게 그 매력이 담겨 있었다. 비록 고전부 시리즈와 달리 분위기가 조금 무겁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소 분위기가 무겁더라도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어 좋은 미스터리 단편집으로 추천하고 싶다.


 더운 여름은 공포물과 미스터리물, 액션물이 인기 있는 시기다. 여름의 더위를 잊을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미스터리 단편집 <야경>을 읽어보자. 분명히 이번 주말은 크게 '덥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소설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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