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 외국인 방대한, 내가 있는 곳이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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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귀화 외국인 방대한의 강연100℃, 내가 있는 이곳이 행복입니다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비중이 상당히 늘어났다는 이야기를 뉴스나 혹은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서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사는 이곳 김해에도 상당히 많은 외국인을 볼 수 있다. 특히 공장이 많은 쪽에는 중동지역에서 온 외국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데, 주말에 번화가를 지나칠 때는 '우리 지역에 이렇게 외국 사람이 많았어?'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될 정도이다.


 그렇게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외국인들은 늘어가고 있지만, 낯선 나라에서 겪는 그들의 어려움은 여전히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바로 우리나라 일부 사람들이 가진 편견과 멸시하는 태도이다. 그 같은 편견과 멸시하는 태도 때문에 사건·사고가 발생한 것을 드물지 않게 우리는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다.


 우리는 '글로벌 사회'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우리나라는 글로벌 사회라고 하기에는 문화적 수준이 아직은 낮다고 생각한다. 우리 한국을 사랑해주는 많은 외국인이 있지만, 우리는 그 외국인들을 차별한다. 특히 서양인은 좋아하고, 중동인은 무시하는 그런 태도는 정말이지 뿌리째 뽑아야 할 암 덩어리 같은 것이다. 그런 문화적 의식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더 많은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좋은 이미지를 가질 것이며, 우리나라를 사랑해줄 수 있을 테니까.


 오늘, 나는 우리나라에 왔다가 우리나라를 너무 사랑하여 오랜 한국 생활 끝에 귀화를 결심한, 한 명의 귀화 외국인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아마 이 분의 모습과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상당히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1박 2일 외국인 근로자 특집에도 출연하였고, 전국 노래자랑에도 출연하였고, 영화 방가방가에도 출연하였었다. 이 이야기는 칸, 한국 이름으로 방대한의 이름을 가진 방대한 씨의 이야기이다.



귀화 외국인 방대한, ⓒ강연100℃


 방대한 씨의 아버지는 걸어서 출퇴근하며 방대한 씨의 8남매 전부를 대학에 보내셨었는데, 더는 집안 형편에 무리를 줄 수가 없어 그는 법대를 졸업하고 반드시 거쳐야 하는 로스쿨을 과감히 포기하였었다. 아마 1박2일을 본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법대를 졸업하고도 집안 형편을 위해 낯선 나라로 와 공장일을 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방대한 씨는 로스쿨을 포기하고 한국에 올 때 '삽질해도 외국에 가서 삽질하면서, 우리 집을 잘 살 수 있게 하자'는 각오로 왔었다고 한다.


 그가 한국에서 17년 동안 일하면서 정말 행복한 일도 많았지만, 그만큼 힘든 일도 많았다. 특히 그중에서 힘들었던 것은 한국 사람들의 차별이었다고 한다. 버스에서 자리에 앉으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피해 가고― 길을 물으면, 대응도 안 하고 그냥 가버리는…. 그래도 방대한 씨는 그만큼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 같은 사장님과 형 같은 사장님을 만나면서, 그의 한국 생활에 많은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방대한 씨는 일하며 겪는 고단함을 잊기 위해 노래를 부르면서 일을 하였었는데, 이 노래가 그의 인생을 180도로 바꿔 놓았다. 그는 친구의 추천으로 전국 노래자랑에 출전했었는데, 전국 노래자랑에서 최초로 대상을 받은 외국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방가방가 영화사에서 오디션 제안까지 받았다. 오디션장에서 "저는 연기할 줄 모릅니다."고 솔직하게 답하니, 영화감독이 "노래 한 번 불러봐라"고 했었고, 그는 노래로 영화 오디션에 합격하여 영화에 출연까지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 촬영 중에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일이 생겼다. 그는 아들로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한 것이 지금도 정말 후회스럽다고 한다. 그 사건을 겪고, 그는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방글라데시로 돌아갔었으나 여러 불편함을 느껴 다시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다. 그렇게 고추장, 쌈장, 된장을 갖고 다시 방글라데시로 돌아갔을 때― 그는 '아, 내가 정말 한국 사람이 다 되었구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귀화 외국인 방대한, ⓒ강연100℃


 방대한 씨는 처음에 법대를 졸업한 수석 인재가 가정형편을 살리기 위해 로스쿨을 포기하고, 낯선 나라 한국에 와서 힘든 일을 하는 한 명의 외국인 노동자에 지나지 읺았다. 그러나 그는 한국 사람과 섞여 지내며 한국의 정을 느끼며 한국을 사랑하게 되었고, 결국 한국에서 지내며 귀화까지 한, 한 명의 귀화 외국인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며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이곳에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여러분, 힘들다고 인생 포기하거나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주변에 있는 작은 행복을 찾아보세요. 행복이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있는 이곳이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


 우리는 방대한 씨가 우리나라에 보여준 사랑과 그 삶의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특이하게도 우리 문화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찮게 여기는데, 많은 외국인이 정말 대단한 문화라며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를 싫어하고, 우리나라 문화를 하찮게 여기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늘 행복을 멀리 있는 것으로만 여기며, 자신의 주변에는 아무것도 쓸모없는 것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이 방대한 씨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우리가 있는 이곳이 행복한 곳이라는 것을….

 방대한 씨가 한국을 사랑하는 그 열정과 태도. 그리고 낯선 땅에서 열심히 산 그의 삶의 태도. 어디 흠잡을 곳이 없지 않은가? 이런 자세를 배워 우리 스스로 우리 한국을 사랑하고, 우리나라 문화를 소중히 여겨 그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문화와 역사와 관련하여 추천하는 글을 남긴다.

'우리나라 문화와 역사, 그리고 외국인'과 관련하여 추천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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