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식배달부 성악가 김승일, 절망이 깊으면 행복의 깊이도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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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식배달우 성악가 김승일, 절망이 깊으면 행복의 깊이도 깊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정말 앞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그런 깜깜한 순간을 맞닥뜨릴 때가 있다. 많은 사람이 성공한 사람들은 오로지 빛나는 길만 달려왔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 사람들이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그들의 길에는 낭떠러지도 있었고, 정말 '어떻게 저 순간을 이겨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었다. 그런 순간을 그 사람들은 딛고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간 것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지금의 성공과 행복을 누릴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책과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며 '힘들 때는… 이렇게 버티면 됩니다. 저는 이렇게 살았었습니다.'라며 사람들이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오늘, 나는 그런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때는 꿈을 접고 야식 배달부로 삶을 살아가다가 자신에게 온 단 한 번의 기회를 잡아 한국의 폴 포츠, 야식 폴 포츠라고 불렀던 김승일 씨이다. 오늘 할 이야기는 김승일 씨가 잃어버린 꿈을 되찾았던 그의 경험담이다.



야식배달부 성악가 김승일, ⓒ강연100℃


 아마 이 김승일이라는 이름 석 자를 한 번쯤 들어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전에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것으로 자신의 재능을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가 있었으며, 어려운 환경에서 다시 자신이 그토록 하고 싶어했던 음악을 할 수 있게 된 사람이다. 왠지 이 말을 들으면 한 명이 떠오르지 않는가? 이전에 코갓탤에 출연하여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안겨준 '최성봉'이 말이다.


 김승일 씨는 강연100℃에 출연한 이유를 '저 같은 사람도 열심히 살고, 희망을 품으면― 이런 날이 온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 출연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김승일 씨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그의 말에서 한 가지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어떻게 살든, 정말 열심히 산다면… 반드시 그 땀방울은 흘린 만큼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한국에서 유명한 대학교에 다니고, 해외연수까지 다녀오며 음악을 배우는 학생들처럼 그렇게 음악을 배운 것이 아니었다. 그가 자란 가정형편은 그런 것을 그에게 허락해주지 않았었다. 그는 처음에 자신의 집이 가난하기보다는 그저 평범한 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자신이 대학교에 합격하자… 대학 등록금을 놓고 난처해하는 가족들을 보며 '아, 우리 집이 가난했었구나.'라고 생각하며 현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가까스로 학교에 입학하여 학교에 다니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진 사건이 발생하였었다. 어머니는 치유되더라도 몇 번씩이나 그렇게 쓰러지시다가 결국 목숨을 잃고 마셨는데… 그때를 회상하며 김승일 씨는 "큰 충격을 받았었다. 내 뒤에 있던 큰 산이 없어진 느낌이었고, 갑자기 내가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느낌이었다. 노래하는 것이 싫어졌었다. 이렇게까지 가족을 힘들게 하면서까지 할 수 있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용기 있게 한 번에 학교를 자퇴했었다."고 말했다.

 

 

야식배달부 성악가 김승일, ⓒ강연100℃


 김승일 씨는 어머니를 잃고― 형편 때문에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을 관둔 것에 관하여 사회에 악이 생겼다고 한다. '돈만 있었다면 어머니도 죽지 않고, 상황도 달라지지 않았을까?'는 생각으로 하루에 20시간씩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그렇게 일을 하더라도 김승일 씨의 수중에 돈이 벌어지기는커녕 빚만 쌓여갔었다. 그는 그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죽으려고 했었다.


 아마 지금 사회를 살아가면서 목숨을 끊거나… 정말 어쩔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도 어쩌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잘 살아보려고 해도 도저히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지 않기 때문에― '난 이렇게밖에 살 수 없나 봐. 그냥 죽어버리자!' 혹은 '그냥 죽자. 그냥 조용히 죽을 바에 날 이렇게 힘들게 한 세상에 복수라도 하겠다.'라는 생각으로 위험한 선택을 한다고 생각한다.


 김승일 씨 그도 정말 자살시도까지 하려고 했었는데, 그 순간에 나를 잡아끄는 무엇인가를 느꼈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는 '이렇게 죽을 용기가 있다면, 죽을 용기로 살아보자!'라는 각오를 다지게 되었고,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다시 일어섰다고 한다. 그는 그 이후 7년 동안 야식배달부로 삶을 살면서 야식배달의 달인이 되어있었다. 자신이 처음에 하고 싶어했던 '음악'을 통한 달인이 아니라….


 그렇게 일을 하면서도 '노래를 하고 싶다'는 꿈이 한으로 맺혀있었다고 한다. 그는 휴대폰에 자신의 노래를 녹음해뒀던 것을 자신이 야식 배달부로 일하는 사장님께 들려 드렸었는데, 사장님이 방송게시판에 올렸었고― 그 때문에 방송에 출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방송 출연 이후에 그는 '한국의 폴포츠'라고 불리며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았었다고 한다.



야식배달부 성악가 김승일, ⓒ강연100℃


 그런 그때도 그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쏠린 그 관심이 잠깐의 관심이라고 생각하였고, 1년이나 2년이 지나면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 방명록에 쓰인 '방송을 보면서 한 시간 동안 눈물을 흘렸었다. 김승일 씨도 그렇게 사는데, 저도 다시 열심히 한 번 살아봐야 되겠다.'는 글을 보았었다. 그때 그는 '내 노래가 이렇게 남에게 희망을 줄 수가 있구나'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끝마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사실 남한테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힘들 때는 저 혼자 위로해야 하고― 제가 즐거울 때도 저 혼자 해야 되고― 제가 기쁨이 생겨도 저 혼자 누려야 했기 때문에 남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노래가 이렇게도 쓰일 수가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주변에 많은 도움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더라고요.


 그러니 여러분도 항상 힘드실 때, '야식배달부도 해냈는데 내가 못하랴?' 그런 마음을 가지시고, 항상 희망을 버리지 마시고― 자기가 소망하는 일, 희망, 꿈 모두 다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김승일 씨의 이야기를 지금 자신이 사는 이 순간이 너무 힘들어,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 그가 마지막에 덧붙인 말처럼 '야식배달부도 성공했는데, 나라고 못하겠어?'라고 생각하며, 그 힘든 순간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인생에 언제나 '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법이다. 정말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어두컴컴한 절망이라고 하더라도, 그 끝은 반드시 있다. 끝이 있는 것을 안다면, 우리의 인생은 크게 바뀔 수가 있을 것이다. 김승일 씨의 강연주제 '절망이 깊으면 행복의 깊이고 깊다'는 말처럼 곧 다가올 행복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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