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학교와 교육

전 학교 폭력 피해자가 본 오늘날 학교 폭력 고발 사태

노지 2021. 2. 18.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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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발 새끼, 반드시 죽여버릴 거야."

 

 이 말은 내가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나도 모르게 내뱉어버리는 말이다. 나는 중학교 시절 이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매일 같이 심심하면 괴롭히는 학교 폭력 가해자들 때문에 나는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할 수만 있으면 매번 착한 아이 가면을 쓰고 뒤에서는 나를 괴롭히는 녀석들을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버리고 싶었다.

 

 이미 그때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나는 3년 정도의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항우울제 약을 복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에도 여전히 나도 모르게 울 때가 있다. 밥을 먹으면서 TV를 보다가 갑자기 울컥해서 울면서 밥을 먹기도 하고, 여전히 때때로 마음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찾아와 '난 왜 이 모양인 거야!'라며 자책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학교 폭력의 후유증이다. 중학교 시절에 당한 학교 폭력의 수위가 가장 높았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나마 좀 아이들이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같은 중학교 출신과 엮인 아이들이 아닌 이상은 나를 가지고 놀리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학교 폭력이 무서운 건 그 폭력과 후유증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난 2010년부터 2011년, 2012년까지 블로그에 '교육' 카테고리로 꾸준히 글을 쓰면서 내가 당했던 학교 폭력의 이야기를 적었다. 글로 적으면서 내가 어떤 일을 당했고, 내 감정이 어땠고, 지금의 나는 어떤지 정리를 한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었다. 이러한 마음의 상처는 마주 보아야만 더 나아질 수 있다.

 

 학교 폭력이 없었던 시절은 한 번도 없었고, 학교 폭력이 사라지는 날도 절대 찾아오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가해자 중심에서 벗어나 피해자와 가해자 두 집단 모두에게 적합한 대처를 하는 일이다. 예전에는 무조건 피해자를 향해 "네가 모자라니까 당하지.", "그 정도는 장난인데 그것도 못 받아주냐?"라며 피해자를 나무라기 바빴다.

 

 요즘에는 그나마 나아져서 가해자를 향해 강력한 처벌의 목소리가 크다. 문제는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목소리만 클 뿐이지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여전히 지금도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피해 다니면서 살아야 하거나 오랜 시간 동안 가슴에 상처를 품은 채로 괴로워하며 살아야 한다. 이건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못했다.

 

 물론, 가해자를 강한 처벌에 처한다고 해도 피해자의 괴로운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해자가 강한 처벌을 받고 눈앞에 보이지 않게 되면 그제야 한숨 놓을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찾아오는 건 그동안 가해자들에게 당하면서 상처 입은 마음의 상처다. 그 마음의 상처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는 시간이 너무나 지독하게 오랫동안 이어진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자신이 과거에 당했던 아픔을 쉽게 툭툭 털고 일어나지 못한다. 가해자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합당한 벌을 받았다고 생각해 훌훌 털어버리고 재출발해 살지만, 피해자는 살아가면서도 몇 번이고 그 날의 기억이 악몽처럼 되살아나 괴로워한다. 마치 지금의 내가 종종 "시발 새끼 죽여버릴 거야."라고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것처럼.

 

 오늘날 다시 번지고 있는 학교 폭력 고발 사태를 보고 있으면 다시금 그 시절이 떠오른다. 누구한테 말해도 가해자 옹호에 피해자의 원성이 무너졌던 그 시절이, 성인이 되어 천천히 글을 쓰면서 담담한 척 당시의 기억을 끄집어냈던 그 시절이. 지금도 한국 사회는 변하지 않았다. 상처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썩어 문드러지며 가슴을 후벼 파고 있다.

 

 어떤 기사를 보니까 "선생님들은 몰랐다로 일관"이라는 문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몰랐던 게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았던 거다. 잘못된 것을 알게 되면 문체 해결에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눈 먼 것처럼 귀 먼 것처럼 지내면서 시간을 지나가길 바랬을 뿐이다. 언젠가 자신의 책임이 되지 않는 날을.

 

 지금도 마찬가지다.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그런 식이다. 가해자들은 애초에 괴롭힐 때 자신이 얼마나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볍게 여기고 넘어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피해자들이 비로소 피해를 용기를 내서 고발하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피해자와 가해자는 살아가고 있다.

 

 피해자는 밥을 먹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고, 가해자는 여전히 자신의 가벼운 폭력 일삼으면서 지내고 있는 거다. 학교에서 일어나면 학교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서 일어나면 갑질이라는 이름으로. 이 모든 것이 오늘 우리 사회에서 목격할 수 있는 다양한 갑질 사건과 학교 폭력 사건, 아동 학대 사건을 이루는 근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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