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인생 사용법 단 한 번의 삶 후기
- 문화/문화와 방송
- 2025. 8. 27. 11:34
자주 책을 구매하는 인터넷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로 노출된 것을 계기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어쩌다 보니 김영하 작가의 신작 산문집인 <단 한 번의 삶>을 구매해서 읽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 나는 그의 작품을 단 한 차례도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산문집을 구매하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가 <단 한 번의 삶>이라는 이름의 책을 통해서 읽어볼 수 있는 이야기는 작가 김영하의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다. 언뜻 보면 우리도 적을 수 있을 듯한 그런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블로그와 SNS 등에 종종 적는 글과 달랐고, 나 혼자 읽기 위해서 적는 일기와 달리 확실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글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직 읽어 보지 못한 김영하 작가의 작품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마음 같아서는 책을 구매해서 읽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애초에 <단 한 번의 삶>라는 책을 구매한 것도 제법 오래전부터 카트에 담아두고 고민을 반복하다가 구매했기 때문이다.
'김영하'라는 작가의 삶
우리가 <단 한 번의 삶>을 통해 읽어볼 수 있는 것은 '김영하'라는 이름을 지닌 작가가 살아온 삶의 아주 일부분이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삶이라고 해도 글을 쓰면서 어떤 고초를 겪었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시도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알지 못했던 가족들의 이야기와 여러 사람을 만나며 정리한 삶의 이야기가 적혀 있다.
덕분에 책을 부담 없이 읽으면서 피식 웃거나 혹은 잠시 멈춰서 생각을 해보면서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다. 블로그에 책을 소개할 때 하고 싶은 말과 소개하고 싶은 글이 제법 있었지만, 이것을 일부만 발췌해서 옮겨서 이야기를 하더라도 내가 <단 한 번의 삶>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느낀 김영하 작가의 글과 이미지를 제대로 옮길 자신이 조금 없었다.
가장 좋은 건 책을 직접 읽어보는 것인데… 그래도 한 장면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흔히 '행복'이라 번역되는 '에우다이모니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행복은 완전한 삶을 통해 덕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것인데, 덕을 갖춘 사람이 되려면 올바른 양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훈련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행위자가 전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 그러니 고결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은 운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범죄자가 되지 않고, 선량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칸트적 '선한 의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 170)
이 장면을 읽으면서 나는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는 환경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았다. 분명히 올바른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단순히 개인의 인품만 아니라 그 인품을 형성하는 올바른 양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어제도 나는 JTBC 뉴스룸을 통해서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한 여중생이 선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끔찍한 뉴스를 듣고 얼굴을 찌푸렸다.
책을 읽다가 우연히 접한 사건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건지 아직도 화가 난다. 선수들이 감독과 코치들이 같은 층을 쓰고 있었음에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더욱이 더 화가 나는 것은 가해자들과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합의된 성관계였다 혹은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를 몰아세웠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중요한 증거 영상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가 "유출될 수도 있으니 삭제합시다."라고 해서 그 당시에 유출을 걱정한 아버지가 동의하면서 증거를 삭제했다고 한다. 피해자도 방으로 강제로 끌려 들어간 여중생 한 명만이 아니라고 하니… 우리는 인간의 됨됨이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 사건을 본다면 주변 환경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김영하의 <단 한 번의 삶>을 읽어 보면 인간이 범죄자가 되지 않고, 선량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칸트적 선한 의지만 충분하지 않고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글의 뒤에는 좀 더 많은 글이 적혀 있다. 이 글들을 읽어 보면… 생각이 많아졌었다.
커피는 그렇다고 치고, 사람의 좋은 성질은 처음에 우러날까, 아니면 최후에 우러날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물의 참된 성격은 오직 시련을 통해서만 드러난다고 믿었고 그 믿음에 따라 그리스 비극을 만들었다. 그들이 믿었던 것처럼, 상황이 좋을 때,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이다. 상황이 나쁠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문제다. 모든 이야기는 거기에 집중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도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공화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시저를 암살한다. 그들의 음모는 실패하고 반역자로 몰렸지만 고결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공화국의 영웅이었던 시저는 독재가가 되었으나 죽음 앞에서 비겁하지는 않았다.
사람의 참된 모습을 보려면 충분한 시간과 적절한 계기가 필요하다. 그러니 첫인상은 전부가 아니며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최선과 최악이 공존하고 있을 것이다. (본문 172)
철인 3종에서는 과거에도 이번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협회는 피해자가 방탕해서 그렇다며 가해자를 두둔하고 자살한 피해자의 잘못으로 몰아세웠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그들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언제나 큰 용기를 내어 사실을 고발한 피해자를 나무라면서 네가 잘못이라고 말한다. 참으로 비겁해 보인다.
아주 우연히도 <단 한 번의 삶>을 읽다가 잠시 저녁을 먹으려고 뉴스를 틀었을 때 나는 해당 소식을 접했다. 김영하는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는 많은 삶이 존재하지만 어떤 운명을 만나 이야기가 되고 혹은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쩌면 오늘 이 글을 적을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을 만나고, 뉴스에서 어떤 사건을 만난 것이 운명이었지 않았을까?
우리가 책에서 읽어볼 수 있는 김영하의 인생 이야기는 많은 교훈을 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김영하에 대한 호기심을 품게 해 주었다. 평소 작가 김영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충분히 재미있게 <단 한 번의 삶>라는 책을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흥미가 있다면 책을 한번 읽어보면서 사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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