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만 봤더니 일본어를 잘하게 된 건에 대하여 후기
- 문화/독서와 기록
- 2025. 1. 15. 09:58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무료로 제공받았습니다.
이번에 나와 같은 오타쿠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제목을 가진 에세이 한 권을 만나게 되었다. 그 에세이의 제목은 <애니만 봤더니 일본어를 잘하게 된 건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평소 라이트 노벨과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오타쿠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가 떠오르는 제목이다.
책의 저자 센(정지영)님은 일본 브이로그 유튜브를 운영하면서 구독자 26만 명을 기록하고 있고, 인스타그램은 팔로워가 13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크리에이터다. 하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일본어를 전공하면서 일본의 생활을 담은 브이로그 유튜브를 운영한 게 아니었다. 대학은 놀랍게도 법학과였다!
법학과이지만 일본어를 제대로 공부한 것도 약 3년 정도로 일본어를 현지인만큼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여러 콘텐츠를 만들어서 업로드하는 크리에이터로 살아가고 있다. 나도 대학을 일본어 학부로 진학하기는 했어도 1학년 때는 히라가나밖에 몰랐다 보니 일본어 공부를 따라가지 못할 듯했다.
하지만 <애니만 봤더니 일본어를 잘하게 된 건에 대하여>라는 책 제목 그대로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읽거나 문장을 만들면서 공부를 하다 보니 JLPT N1도 한 번에 바로 합격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한 일본어 공부는 따로 학원을 다니는 일 없이 취미 생활과 함께 대학 강의를 들었을 뿐이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라는 뜻이죠. 코난이 사건에 대한 자신의 추리를 조목조목 설명한 후, 사건을 종합해 진실을 밝힐 때 항상 나오는 대사예요. 제가 '귀가 트인 과정'을 조목조목 따져보니 여기서도 하나의 '진실'이 보이는 것 같아요. 일본어든 다른 언어든, 언어를 배울 때는 이 공통적인 진실을 머리에 새겨두면 도움이 될 거예요.
뭐가 됐든 많이 들어야 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든, 어학 듣기 교재든,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처음엔 많이 듣는 게 중요하다는 것. (본문 102)
<애니만 봤더니 일본어를 잘하게 된 건에 대하여>을 읽어 보면 저자 센님은 <명탐정 코난>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처음부터 만화 <명탐정 코난>을 원서로 구매해서 읽은 건 아니었고, 애니메이션 더빙판을 보다가 최신화가 될수록 자막판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막판으로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니 어느 순간 일본어가 들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마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글 자막이 있는 애니메이션을 라프텔과 넷플릭스를 통해 열심히 보았을 뿐인데 어느 순간 어느 일본어가 어느 한국어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애니메이션을 한두 편 보는 게 아니라 수십 혹 수백 편을 보아야 하지만… 진짜 금방이다.
<애니만 봤더니 일본어를 잘하게 된 건에 대하여>를 읽어 본다면 저자 센님이 추천하는 재미 위주의 애니메이션과 함께 난이도에 맞춘 애니메이션 목록을 볼 수 있다. 그 목록을 살펴본다면 <원펀맨>부터 시작해서 많은 사람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도 모른다> 등 많은 작품이 있어 센님에 공감하며 웃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진짜 일본어 실력을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일본어를 알아듣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들리기 시작한다면 이제 슬슬 말하기 시작해야 하고, 말하기 시작한다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문장으로 적어볼 수 있어야 한다. 이때 꼭 상대방이 없어도 혼잣말로 일본어를 중얼거리거나 문장을 적는 연습을 하는 게 중요하다.
자꾸 혼잣말을 하는 게 민망한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섀도잉은 혼잣말이 아니라 남의 말을 따라 하는 거니까, 지금 섀도잉이라는 공부를 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민망함도 지울 수 있어요. 틀릴 수도 있다는 마음의 부담이나, 생각한 대로 말이 나오지 않는 답답함도 덜하고요. 이처럼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도 '말해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데 섀도잉은 그 부분을 자연스레 이끌어주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본문 127)
내가 <애니만 봤더니 일본어를 잘하게 된 건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놀란 건 센님의 공부 방식과 내가 했던 공부 방식이 굉장히 유사했다는 점이다. 아마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일본과 일본어에 호기심을 품게 된 사람이다 보니 밟는 과정도 비슷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히라가나만 알면서도 대학 전공을 일본어로 했다는 것.
히라가나만 아는 상태로 부산 외국어대학교 일본어학부로 진학을 했다 보니 1학년 때는 성적이 바닥이 기었을 뿐만 아니라 원어민 선생님의 강의를 알아듣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공익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일본어 기초를 다진 덕분에 2학년으로 복학했을 때는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고, 일본어만 쓰는 환경에 노출되다 보니 빠르게 적응했다.
"내가 말했을 때 현지인이 못 알아들을까 봐 두려워."
"상대방이 나보다 일본어를 훨씬 잘하니까 걱정 마!"
어차피 상대가 내가 외국인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우리도 외국인이 서툰 한국어로 뭔가 물어보려고 하면 최대한 잘 듣고 이해하려 노력하잖아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보다 일본어를 훨씬 잘하는 원어민이 최선을 다해 알아들으려 노력할 거라고 믿고 말해보세요. (본문 179)
<애니만 봤더니 일본어를 잘하게 된 건에 대하여>를 읽어 본다면 센님은 코로나19 때문에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을 때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일본 음악을 듣고, 일본어로 혼자 말해보면서 유사 일본 생활을 했다고 한다. 나도 비슷한 형식으로 시간을 자주 보낸 덕분에 예상보다 빠르게 일본어를 익힐 수 있었다. 역시 환경이라는 건 중요하다.
어디까지 순수하게 덕질로 시작한 일본어 공부를 통해 나는 대학에서 통번역 전공을 졸업했고, 센님은 일본어 크리에이터로 크게 성공했다. 나는 대학에서 일본어 통번역을 전공하며 JLPT N1 합격과 함께 짧은 인턴십을 거쳤다고 해도 일본어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은 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우리가 품은 도전 정신의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센님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본어 혹은 내가 좋아하는 일본 콘텐츠로 크게 성공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내가 운영하는 라이트 노벨과 만화책 소개 유튜브 채널은 이제 3천 명 남짓한 구독자라 멀기만 하다. 하지만 일본어 공부도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좋아해서 열심히 덕질을 하다 보니 유창해진 것처럼 유튜브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애니만 봤더니 일본어를 잘하게 된 건에 대하여>의 마지막 장에서 센님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가끔 크리에이터로서 초청받은 대학교나 단체에서 강연을 할 때면 늘 하는 말이 있어요.
"가치 없는 시간은 없었다."
"꾸준하면 그 노력은 어떤 형식으로든 보답받는다."
제가 인생에서 밟아온 모든 과정 중 무가치한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애니메이션 실컷 보기'처럼 남들에겐 시간 낭비로 보이고 비웃음만 사는 일이었어도 결과적으로는 지금의 저를 만든 중요한 부분이었거든요.
하나하나로는 아주 사소하고 별거 아닌 경험의 조작들이라도 그 조각들이 모여 큰 판을 만드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색도 크기도 재질도 가지각색인 유리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이 되는 스테인드글라스처럼요!
그러니 여러분도 주저하지 말고 새로이 도전해 보시길 바라요. 그게 뭐든! 설령 직업과 관계없거나 당장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그 경험이 반드시 어딘가에 빛을 발할 때가 올 거예요. (본문 253)
더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센님의 에세이 <애니만 봤더니 일본어를 잘하게 된 건에 대하여>를 읽어보자. 일본어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큰 두려움 없이 일단 시작해 볼 수 있는 용기와 함께 덕질로 일본어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센님의 노하우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역시 애니로 일본어에 입문한 사람은 다 비슷비슷하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하, 나도 센님처럼 되고 싶어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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