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이 인상적이었던 영화 키리에의 노래 후기
- 문화/문화와 방송
- 2024. 6. 9. 08:00
비 오는 저녁을 맞아서 딱히 만날 사람도 없고, 연락할 사람도 없다 보니 책이나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려다 IPTV의 영화 목록을 최신순으로 보다가 영화 <키리에의 노래> VOD가 올라온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 <키리에의 노래>는 지난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야외무대 인사를 갖기도 했었고, 한국에서도 개봉하며 호평을 받았다.
워낙 이야기가 감동적이고 깊은 매력이 있다는 후기를 지나가다 보았던 터라 이번에 마음먹고 영화 <키리에의 노래>를 보기로 했다. 영화의 시작은 '키리에'라는 이름으로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코즈카 루카와 '잇코'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마오리가 만나는 모습으로 막을 올린다. 그리고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오가게 된다.
처음에는 이야기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다 보니 주인공 루카의 처한 상황을 잘 알 수 없어서 당황했는데, 몇 차례 이야기의 시점이 전환된 이후 어느 정도 인물들의 관계가 정리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길거리 공연을 하는 루카의 프로 데뷔 이야기가 메인이 되나 싶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영화 <키리에의 노래>가 그리는 것은 프로 데뷔를 꿈꾸면서 노력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였다. 그 소녀… 코즈키 루카는 어릴 적에 동일본 대지진으로 가족을 잃으면서 머무를 수 있는 장소가 없어졌다. 그녀는 놀랍게도 언니의 연인이었던 시오미 나츠히코를 찾아서 오사카까지 오게 되었다.
하지만 초등학생에 불과했던 루카가 '오사카'라는 그 대도시에서 시오미 나츠히코와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나츠히코와 연결이 되었지만, 루카를 보살필 의지를 가진 나츠히코와 그 선생님은 루카와 가족이 아닌 남이다 보니 경찰 측에서 루카를 임시 보호소로 곧바로 옮기면서 인연이 끊어졌다.
가족이 아니라고 해도 그동안 루카를 보호하고 지켜준 선생님과 나츠히코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선생님은 그렇다고 치고 나츠히코 같은 경우에는 루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게 되는데, 추후 그가 다시 '키리에'라는 이름으로 라이브를 하는 루카와 재회했을 때 보여주는 모습은 여러모로 가슴이 아팠다.
당시 루카는 마오리와 만난 이후 길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만 아니라 음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프로로 갈 수 있는 계단을 착실히 올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마오리가 '앗코'라는 이름으로 지내면서 벌인 어떤 일로 인해 마오리는 잠시 루카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루카는 사실상 노숙을 하는 형태로 생활하게 된다.
나츠히코를 만났으니 그의 집에서 잠시 머무르면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에게 폐를 끼치는 게 싫어서 그의 집에서 머무르지 않는 건 루카다우면서도 아쉬움이 있었다. 처음에는 루카와 얽힌 인물들의 관계를 명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려워 헤맸지만, 천천히 영화 <키리에의 노래>를 감상하면서 퍼즐을 맞추듯이 다 맞추어 나갔다.
덕분에 영화 <키리에의 노래> 마지막 장면에서 볼 수 있었던 노상주의 음악 페스티벌에서 그녀가 라이브를 하는 장면을 인상 깊이 볼 수 있었다. 보통 한국 영화라면 여기서 루카는 정식으로 프로 스카우트를 받은 이후 엔딩으로 그녀가 성공한 밴드 가수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영화 <키리에의 노래>는 달랐다.
파란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면서 노래를 마무리하는 모습은 괜스레 가슴이 울컥했다. 이 피날레 장면이 굉장히 매력적이기도 했지만, 영화 <키리에의 노래>는 엔딩 크레디트를 통해 노상주의 음악 페스티벌이 끝난 이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녀는 이전보다 나아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비슷하게 살아가는 듯했다.
항상 주인공이 마지막에는 행복해지는 엔딩이 그려지기 마련인 한국 영화와 달리 진한 여백이 남는 엔딩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한국 독자들의 시점에서는 노래도 좋고, 이야기도 감동적이었지만, 결말은 조금 아쉽다는 평이 나온 게 아닐까 싶다. 우리는 현실은 혹독해도 이야기의 끝은 행복하길 바라니까. 나도 똑같았다.
이왕이면 루카가 '키리에'라는 이름의 가수로 데뷔해 활약하는 모습을 엔딩으로 보고 싶었지만, 언제나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루카의 모습은 나름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전적으로 영화 <키리에의 노래>를 본 독자의 몫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귀 기울여 듣고 오래 보았을 때 더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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