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이 보여준 빛과 그림자

 드라마를 직접 보기 전에 스포일러를 당해도 괜찮으니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검색을 통해서 몇 개의 글을 읽어보았다. 이 드라마 <인간수업>이 그리는 사건은 최근 N번방 사건을 떠올리게 하고, 오늘날 쉽게 눈으로 목격할 수 있는 일부 청소년들의 일탈과 우리 사회의 뒷면을 연상하게 했다.


 실제로 드라마를 보았을 때도 딱 그런 느낌이었다. 제대로 부모 역할을 하지 못하는 부모 아래에서 자란 남자 주인공 오지수가 채팅 어플을 통해서 조건 만남 알선을 하고, 수요자 남성과 공급자 여성을 연결하면서 이 실장을 통해서 진상 처리 혹은 불특정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방지하는 일을 했다.


 도무지 가벼운 배짱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오지수는 몇 년 동안 꾸준히 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차츰 노하우를 터득해 블랙 리스트를 만들어 진상을 관리하는 일부터 시작해, 지하철의 물품 보관함을 통해서 돈을 주고받는 치밀한 모습도 갖추고 있었다. 그야말로 뒷세계의 사업가로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오지수가 가진 약점은 바로 현실에서 너무나 배짱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뒷세계에서는 아무런 문제 없이 당당하게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 아니, 일상 속에서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어서 아마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에게 짜증을 주거나 스트레스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오지수가 <이태원 클라쓰>에 등장하는 ‘조이서’ 같은 캐릭터였다면, 이 드라마 <인간수업>의 결말도 상당히 다르게 되었을 거다. 그야말로 자신과 배짱이 앞서는 당당한 태도와 함께 뒤에서 치밀하게 움직이면서 엄청난 거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의 오지수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약점을 노출하며 자신이 모은 돈을 몽땅 잃어버리기도 했고, 배규리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켜버리기도 했다. 결국 자신의 안일한 태도가 배규리에게 약점을 잡히는 계기가 되었고, 배규리가 오지수의 일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오지수는 그동안 쌓아왔던 성이 모두 무너지고 말았다.


 여기에는 지나치게 욕심을 부린 배규리로 인해 약점의 노출만 아니라 약점이 커진 탓도 컸다. 그야말로 이 부분에서는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역시 사람은 지나치게 욕심을 품어버리면 그 순간 몰락해버리게 된다. 최근에 논란이 된 갑수목장 사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사회에서 밝은 부분만 보고 살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함께 생길 수밖에 없는 법이다. 누군가 빛이 내리쬐는 부분에서 살아가고 있는 만큼, 누군가는 빛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드라마 <인간수업>에서 다룬 노래방과 조건 만남, 오피스텔 등의 성매매도 그렇다.


 어떤 후기에서는 ‘성매매를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무런 경각심이 없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모습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성매매라는 건 옛 시대부터 먹고살기 위해서 사람들이 선택한 하나의 생존수단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결국에는 빛의 반대되는 그림자를 담당하게 되고, 그림자가 재역할을 하기 때문에 빛 또한 제대로 빛날 수가 있는 거다. 우스운 일은 빛은 그림자를 불쾌하게 여기고, 그림자는 빛에 열등감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빛과 그림자는 수시로 부딪히며 갈등을 빚어낸다.


 드라마 <인간수업>의 그림자 오지수가 열등감을 품은 빛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또 다른 그림자 배규리가 열등감을 품은 빛은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뜻을 가지고 그림자에서 벗어나고자 ‘혼자 살아갈 힘’이 되는 돈을 간절히 바랐다.


 그런 두 사람에게 성매매 사업은 혼자 살아갈 힘을 빠르게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성매매 산업을 통해 얻은 돈으로 오지수는 평범하게 대학에 진학하고자 했고, 배규리는 감옥 같은 집안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했다. 그리고 끝끝내 두 사람이 도달한 곳은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마침내 도착한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던 드라마 <인간수업>. 두 사람의 나아가는 행선지만 아니라 그들과 얽힌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서민희와 곽기태, 그리고 사회의 이중성을 잘 알고 있어도 제대로 손을 뻗을 수 없는 선생님과 한 경찰이 그려진 드라마 <인간수업>.


 드라마 <인간수업>은 제목 그대로 ‘인간이 되기 위한 수업’에서 겪는 너무나 절박하고 애절하고 어리석은 방황을 거칠게 잘 그린 드라마였다. 다소 엔딩이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아 아쉽기도 하다. 뭐 어떻게 본다면 명확한 결말을 알 수 없는 것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이지 않을까?


 어제 나온 뉴스에서는 서울의 룸살롱의 수가 전국의 있는 한 프랜차이즈 햄버거 체인점보다 그 수가 많다고 한다. 빛이 너무나 강한 도시로 통하는 서울은 빛이 짙은 만큼 그림자도 짙을 수밖에 없다. 모두가 빛을 쬐며 살아갈 수 없기에 빛을 쬐는 사람의 수만큼 그림자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드라마 <인간수업>이 그린 엔딩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우리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하면 될지 알 수 없는 사회다. 그리고 우리는 빛과 그림자가 뒤엉킨 사회에 속한 한 사람으로 살아간다.


 때로는 빛으로 살아갈 때도 있겠지만 때로는 그림자로 살아갈 때도 있을 거다. 때로는 그림자로서 빛의 흉내를 내 거나 혹은 빛으로서 그림자를 흉내 낼지도 모른다. 30년간의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나도 그렇게 살아왔다. 오늘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떻게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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