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꼭 끝까지 읽어야 하나요?
- 문화/독서와 기록
- 2019. 6. 23. 14:39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하면, 종종 사람들로부터 “좋은 책 좀 소개해주세요.”라는 말을 듣는다. 그때마다 나는 한결 같이 “좋은 책이 뭐 있겠습니까. 그냥 자신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가장 좋은 책이지요.”라며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이 그 사람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재미없게 읽은 책이 그 사람에게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개인이 가진 성향의 문제이기 때문에 ‘좋은 책’이라는 틀을 정해놓고, ‘여기 있는 책들이 좋은 책입니다. 꼭 읽으세요!’라고 말하는 건 오만한 독선이다.
물론, 전세계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잘 팔리는 데다 수 없이 다양한 해석이 붙은 책이 새롭게 발매되는 <논어>, <군주론> 같은 고전은 ‘좋은 책’이라는 틀에 끼워넣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을 읽는 데에 있어 이런 고전을 꼭 읽어야 한다며 ‘의무’를 부과하면 과연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좋은 책 좀 소개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 권장도서라는 이름으로 어른들이 멋대로 좋은 책으로 정한 고전이 아니라, 좀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소개해달라는 숨은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책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고 싶어하기 마련이니까.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책은 꼭 끝까지 읽어야 하나요?>의 저자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책의 ‘내용을 아는 것’이 중요한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 굳이 읽지 않아도 검색만 하면 얼마든지 그 책의 내용을 찾아낼 수 있는 시대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책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느냐’ 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책을 온전히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37)
과거 ‘권장 도서’라는 이름으로 성인도 읽기 어려운 책들을 청소년에게 의무적으로 읽고 글을 쓰게 한 이유는 ‘책을 통해서 무엇을 깨닫고 배우면서 즐겨라’라는 목적이 아닌, ‘이건 시험에 자주 인용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미리 암기 해둬라.’라는 목적이 있었다. 그때는 책 읽기가 아니라 공부에 불과했다.
나를 위한 책 읽기가 아니라 시험을 위한 공부에 불과했던 책은 싫어도 끝까지 읽어야 했고, 마치 시험공부를 하는 것처럼 요점 정리 형식으로 독후감을 써야 했다. 이런 교육이 지난 세월 동안 뿌리 깊이 내렸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지는 일 없이 여전히 책 읽기는 공부가 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책 읽기를 즐기기 위해서는 과감히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읽지도 않는 고전 <논어> 혹은 유행에 따라 구매한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을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택해야 한다.
그게 바로 책 읽기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책은 꼭 끝까지 읽어야 하나요?>의 저자는 ‘읽어야만 하는 것’과 ‘읽고 싶어 죽겠는 것’이라는 두 종류의 책 중에서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후자를 읽어야 우리가 책 읽기를 온전히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차후 조금 더 어려운 책을 읽을 수 있는 소위 내공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정의란 무엇인가> 혹은 <인간실격> 같은 책을 펼쳐서 읽어도 그 내용을 깊이 알 수 없다. 오히려 비싼 돈을 주고 산 책이라 억지로 읽으려고 하다 책 읽기에 질려버리거나 ‘역시 나랑 책 읽기는 안 맞아’라며 책 읽기를 포기해버릴 수도 있다. 그야말로 마이너스 루트를 타는 꼴이 되는 거다.
그때는 아무리 주변 사람의 추천, 주변의 유행에 따라 책을 샀다고 해도 나와 맞지 않으면 과감히 책을 덮을 수 있어야 한다. 책을 구매한 비용이 아까워서 재미있지 않은 책을, 전혀 읽고 싶지 않은 책을 끌어안고 있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책은 꼭 끝까지 읽어야 하나요?>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연애하는 방식도 달라지잖아요. 만나는 책이 어떤 책이냐에 따라 읽는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어요. 하나의 독서법을 모든 책에 적용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니 자신만의 독서법을 발견해보세요.
그때부터 독서는 연구가 아니라 연애가 됩니다. 연애를 책으로 배울 수 없듯이 독서도 책으로 배우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어요. 때론 책을 버려야 책이 보입니다. 지금까지 타인의 기준으로 읽어왔던 책을 버리고, 나만의 기준으로 다시 책을 읽어보세요.
내 것이 아니면 과감히 버리고, 가장 나다운 것을 다시 찾는 것. 결국 우리가 책을 읽는 목적이 거기에 있으니까요. (본문 94)
때로는 책을 버려야 책이 보인다는 말. 한 번 산 책은 끝까지 읽어야 손해는 안 본다는 생각을 버리자. 나와 맞지 않은 책이라면 몇 번 읽으려고 시도하고, 도저히 안 되면 말끔히 포기하고 과감히 중고서점에 팔기를 권한다. 그리고 중고서점에서 읽어야만 하는 책이 아니라 읽고 싶은 책을 찾아서 읽는 일이 훨씬 더 유익하다.
책을 한 번 펼치면 꼭 끝까지 읽어야 한다, 사람들이 정한 좋은 책을 읽어야 진짜 책 읽기다, 그런 강박에 갇혀 책 읽기를 즐기지 못해 포기한 사람들에게 <책은 꼭 끝까지 읽어야 하나요?>라는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분명, 내가 찾는 책 읽기가 어떤 책 읽기인지 발견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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