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싱어5 왕중왕전, 결과만큼 과정도 멋졌다
- 문화/문화와 방송
- 2018. 9. 24. 07:30
우연히 본 히든싱어5, 그리고 왕중왕전을 보면서
JTBC에서 하는 여러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교양 프로그램을 챙겨보더라도 나는 지금까지 <히든싱어>는 잘 보지 않았다. 일요일은 항상 월요일을 대비해 일찍 잠을 잘 때가 많았고, 내가 잘 모르는 한국 대중가요를 소재로 한 방송보다 애니플러스에서 애니메이션을 보는 걸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몇 주 동안 어머니가 “니 보는 거 말고, 좀 다른 것 좀 틀어봐라.”라고 말씀하신 탓에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본 <히든싱어5>에 완전히 꽂히고 말았다. <히든싱어5>에 출연하는 가수 중 이름을 아는 사람은 몇 없었고, 아는 노래는 더 없었지만, 가수처럼 부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놀라웠다.
<히든싱어5> 바다 편에서는 싱크로율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고, 자이언티 편에서는 가사가 무척 뜻깊은 데다 힘을 주는 노래가 새삼스레 다시 한국 노래를 보게 되었다. 보통 한국 가수들의 노래는 아이돌 가수만 아니라 사랑과 이별을 지겹게 말하는 노래가 많았는데, 자이언티 노래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한국 노래에서도 좋은 노래가 정말 많구나 싶었다. 그때부터 <히든싱어5>를 매주 시청하면서 보았고, 정말 모습을 감춘 상태에서 모창 가수와 진짜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서 몇 번이나 소름이 돋았다. <히든싱어5>를 보는 동안 알지 못한 노래를 알고, 알지 못한 즐거움을 만났다.
지난주 일요일(23일)에 방송된 <히든싱어5>는 그동안 출연한 출연진 중 우승자가 모여 왕중왕전을 치렀다. 미처 방송으로 보지 못한 사람들의 무대를 보며 ‘와, 쩐다! 저게 진짜 가수가 아니라고?’라며 놀랐고, 진짜 가수가 아니더라도 박진감과 재미가 넘치는 무대, 감동이 넘치는 무대에 넋을 놓았다.
<히든싱어5> 왕중왕전의 우승자인 선착순 바다 최소현의 무대는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었다. 당시 무대를 본 임창정을 비롯한 모든 가수가 바다 그 자체라고 인정했다. 심지어 바다조차도 자신보다 더 잘 부르는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 이게 바로 <히든싱어5>가 가진 최고의 매력이지 않을까 싶었다.
최고의 갈채가 아깝지 않은 무대가 <히든싱어5>에서 펼쳐졌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단연 배우 양희은 김유정의 무대를 인상 깊게 보았다. 양희은 편은 끝까지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우승했는지 몰랐는데, <히든싱어5> 왕중왕전에서 처음 김유정의 노래를 들었을 때는 살짝 실망감도 있었다.
왜냐하면, 누가 듣더라도 이건 양희은과 다른 톤으로 부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실망감은 김유정이 부른 ‘상록수’ 노래에 ‘뭐? 내가 실망감을 느꼈었다고? 진짜?’라고 되물을 정도로 몰입할 수 있었다. 노래는 마음으로 부른다고 했던가. 김유정의 노래는 딱 그 마음 자체였다.
그녀가 선택한 노래 ‘상록수’는 단순히 모창 능력자가 잘 흉내 내서 부를 때 가치 있는 노래가 아니라 마음으로 불러야만 빛을 발하는 노래다. 상록수 가사에 담긴 가사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나는 모창 능력자 김유정이 아닌 단역 배우 김유정을 본 느낌이었다. 비록 3위 안에 들지 못했어도 무척 좋았다.
단역배우 김유정이 양희은을 만나 상록수의 어떤 부분에서 울컥했는지 묻는 말에 “가진 것 비록 적어도”라는 가사에 울컥했다고 말하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 거기에 양희은은 “너도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니?”라고 되물었는데, 아마 이 말이 가장 큰 위로이자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다독여줬다고 생각한다.
김유정은 순위에 신경 쓰지 않고, 노래에 진심 어린 마음을 담아서 자신과 같은 청춘에게 자그만한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노래를 불렀다고 소감을 밝혔다. 방송을 보면서 나와 같은 29살이라는 사실에 놀랐고, 같은 29살에 아무것도 가진 게 없기에 또 한 번 나는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나는 김유정이 부른 상록수에 마음이 깊은 곳에서부터 흔들린 건지도 모른다. 상록수의 가사의 ‘가진 것 비록 적어도 ~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이 가사는 오늘 어디에도 위로받지 못하는 우리 청춘 세대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말이지 않을까.
<히든싱어5> 왕중왕전에 출연한 한 사람들의 사연도 좋았고, 무대도 너무나 좋았다. 조금 더 일찍 이 프로그램을 챙겨보았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어쩌면 이렇게 늦게 보았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더 좋게 만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다음 일요일(30일)에 펼쳐질 마지막 무대도 너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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