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독서대전에서 베니 구경선 작가를 만나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 '엄마, 오늘도 사랑해' 구작가가 들려주는 버킷리스트 이야기


 2018 김해 대한민국 독서대전이 열리는 날에 내가 제일 처음으로 참여한 강연 프로그램은 김해 박물관 세미나실에서 열리는 구경선 작가의 강연이다. 구경선 작가는 ‘구 작가’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고, 귀여운 토끼 캐릭터 베니를 그린 작가이자 <그래도 괜찮은 하루>의 작가로 상당히 유명하다.


 처음 <그래도 괜찮은 하루>라는 책을 읽었던 때가 2015년 4월 4일이니, 벌써 3년 하고도 약 5개월이 지났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는 글이 많은 책이 아니라 따뜻한 그림을 위주로 짧게 쓰인 글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당시 책을 처음 읽을 때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아 당황했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는 억지로 감성을 자아내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청각에 장애를 앓고 있었는데, 점차 눈도 보이지 않게 되는 장애를 겪게 된 작가는 어떻게 보면 조금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옮긴 책이다. 그런데도 눈물이 그토록 흘렀던 까닭은 책이 따뜻함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를 통해 읽은 ‘그래도 괜찮아.’라고 자신에게 말하는 구 작가의 이야기는 나도 모르게 참고 있던 아픔에 깊은 공감을 주는 듯했다. 그 탓에 나는 갑작스레 붉어지는 눈시울을 참지 못해 눈물을 흘러야 했다. 살짝 힘들었던 시기에 <그래도 괜찮은 하루>는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2018 김해 대한민국 독서대전에 구작가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무척 좋았다. 작가의 이름을 보자마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사전 예약 신청을 했었고, 당일 아침에 비가 와서 만사가 귀찮게 여겨져도 꾸역꾸역 경전철을 타고, 걸어서 김해 박물관 세미나실에 도착했다.




 약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구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구작가는 어릴 때부터 청각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귀가 아예 안 들리는 게 아니라 잘 들을 수 없는 상태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약간 발음이 어눌했다. 그래서 일부러 자막과 함께 강연을 준비했다고 한다.


 구 작가의 귀여운 캐릭터 베니와 함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자신의 캐릭터 베니를 어떻게 해서라도 꼭 남기고 싶었던 작가가 첫 번째 버킷리스트를 <그래도 괜찮은 하루>라는 책으로 이야기를 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두 번째 버킷리스트 셀프 웨딩, 세 번째 버킷리스트 마라톤 이야기를 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구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우리가 버킷리스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버킷리스트를 실천하기 위해서 어떤 태도로 실천해야 하는지 힌트가 들어있었다. 구 작가가 들려준 마라톤을 뛴 이야기를 일부 옮기면 다음과 같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출발했어요. 처음엔 1킬로를 달렸을 때는 ‘오, 나도 제법 하는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1킬로 넘어가면서 숨이 급속도로 차오르기 시작하고, 너무 힘들어지는 거예요. 2킬로부터 벌써 포기하고 싶어졌어요. 후회가 막 밀려왔어요.

‘괜히 했나봐…. 이거 괜한 짓 아닌가….’

점점 달리지도 못하겠고, 빠르게 걷다가, 또 달리고, 다시 걷고.

출발하기 전에 어떤 사람이 조언을 해줬거든요. 힘들다고 멈췄다가, 다시 달리기 시작하면 그때가 더 힘들다고. 아무리 힘들어도, 멈추지는 말라고.

그 조언이 생각나서, 정말 힘들어도, 계속 뛰다 걷다 반복했어요.

그러면서 점점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것 같고, 마지막엔 거의 다리를 질질 끌었어요. 그러다 보니, 5킬로의 반환점도 보이고, 6킬로, 7킬로… 하나씩 지나갈 때마다 마음이 달라지는 거예요.

2킬로, 아주 막막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4킬로, 절반까지 아주 조금 남았어.

5킬로, 이제 반은 달렸어.

6킬로, 반은 조금 넘겼어.

8킬로, 끝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신기하게도, 내 다리는 멈추지 않더라고요. 물론, 모양새는 멋있지 않았지만. 그래서 9킬로 넘어서, 출발했던 현장의 천막들이 멀리서 점점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100미터 앞두고, 피니시라인으로 마지막 힘을 다해 뛰는데, 가슴이 뭔가 벅차오르고, 피니시라인을 통과하자마자 바로 바닥에 주저앉아버렸어요.

그리고 엉엉 울고 말았어요. 그냥 안 믿어졌어요.

‘내가 해냈구나.’ ‘이런 나도 할 수 있구나. 정말 해냈구나.’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며 ‘천천히 가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때로는 때때로 멈춰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면서 멈춰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양한 말을 하고 있으니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다. 언젠가는 분명히 끝이 난다는 것.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하더라도 처음에는 잘하지 못한다. 아니, 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후회를 할 정도로 질책을 받거나 자신에게 실망할 때도 있다. ‘역시 나는 뭘 해도 안 되는구나’라며 생각하면 이미 최악의 수준에 다다른 거다. 그때야말로 잠시 멈춰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너무 오래 멈춰있으면 안 된다. 혜민 스님의 책 제목은 ‘때때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제목의 뜻은 가끔 멈추라는 거지, 멈춰 있으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구 작가가 마라톤을 하면서 받은 조언도 똑같다. 잠시 멈추는 건 걷는 일과 같다. 걷다 보면 또다시 우리는 뛸 수 있다.


 힘들다고 멈추면 다시 달리기 시작하면 그때가 더 힘들어진다. 가령 피아노를 예로 들어보자. 처음 악보를 외우고, 손가락 번호를 수정하며 곡을 연습하는 일은 무척 힘들다. 하지만 손에 익어갈 때쯤, 힘들다고 멈춰버리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한다. 특히 안 좋은 습관이 들여지면 더욱 최악이다.


 멈춘다는 건 정말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선택해야 하는 선택지다. 만약 당신이 커다란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분명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노력과 시간을 들인다고 해도 목표를 이루지 못할 때가 사실은 더 많다.


 우리가 이루고 싶은 목표, 이른바 버킷리스트. 당일 구 작가의 강연에서는 구 작가가 말한 버킷리스트 이야기를 짧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버킷리스트는 꼭 대단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한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버킷리스트는 계속 추가할 수도 있고, 삭제할 수도 있고, 그리고 변경할 수도 있다고.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서두르지 않으려고 해요. 서두르면 될 일도 안 될 수도 있고, 그것도 역시 제 욕심일 수 있으니까요. 천천히 차근차근히 한 걸음씩 가려고 해요. 남들이 보기엔 ‘아, 꿈이 너무 큰데?’ 싶을 수도 있어요. 남들이야 어떻게 보든 중요하지 않아요. 모든 꿈을 언제 이룰 수 있는지 저도 몰라요.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 나 자신을 믿어줘야 해요.

상상해봤어요. 나 자신이 있는 방이 있어요.

하지만 그 방에는 나만 들어갈 수 있어요. 그렇게 나와 나 자신이 만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나는 못 할 거야. 안 될 거야. 나는 왜 이리 못났지?’ 이런 생각을 할수록 나 자신에게 상처가 생기는 거예요.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자신을 다치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미안하잖아요. 나 자신에게요. 그러니 나 자신을 믿어줘야 해요.”



 버킷리스트. 영화 <버킷리스트>를 본 이후에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몇 가지 정리해서 적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버킷리스트는 버킷리스트로 남기 때문에 버킷리스트’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나는 그 모든 걸 다 실천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막연히 적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그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고민해보는 일도 중요하다. 버킷리스트는 꼭 대단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버킷리스트가 꼭 바뀌지 않아야 하는 법도 없다. 상황에 따라서 새로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추가할 수도 있고, 바꿀 수도 있는 거다.


 물론, 그때 가장 중요한 건 버킷리스트를 실천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신을 질책하지 않는 일이다.  하고 싶은 일 10가지를 적으면 그중에서 3가지 정도만 실천할 수 있으면 된다. 지금 당장 무리해서 모든 버킷리스트를 실천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건 어디까지 욕심일 뿐이다.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다.



 프로 야구에서는 10번 타석에 들어서서 3번만 치더라도 수준급 타자로 꼽힌다. 영화 <버킷리스트>의 주인공들도 자신들이 적은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노력만이 아니라 약간의 행운도 필요했다. 인생은 성실한 노력만 아니라 운도 맞아떨어져야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구 작가가 말했듯이, 서두르는 건 나의 욕심이다. 천천히 차근차근히 한 걸음씩 걸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걷다 보면 조금씩 목표와 거리가 좁혀지고, 마침내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며 ‘내가 해냈다! 내가 해냈다고!’라며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버킷리스트란 그런 게 아닐까?


 당일 있었던 강연에서 구 작가는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이며 강연을 매듭지었다.


“삶은, 때로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아요. 상식을 뛰어넘기도 하고, 희망이 보이기도 하고, 정말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저는 힘내라고 말하지 않을 거예요. 끝까지 버티라는 말도 안 할 거예요. 100미터 달리기에서 98미터까지 와서 그만둘 거냐는 등 그런 이야기도 안 할 거예요. 왜냐하면, 여러분도 충분히 힘내고 있을 것 같으니까요.

저는 넘어지고 싶으면 넘어질 거예요.

상상해봤어요.

억지로 안 넘어지려고 애쓰는 게 더 힘이 많이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넘어지고 싶으면, 넘어질 거예요. 안 일어나는 것도 아니니까요. 바로 일어나기도 하겠지만, 가끔은 오래 안 일어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내 삶도 소중하지만, 여러분의 삶도 참 소중하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의 삶도 참 소중합니다.”


 강연 내용도, 마지막도 너무 좋았다. 딱 내가 책 <그래도 괜찮은 하루>, <엄마, 오늘도 사랑해>를 읽으면서 받은 작가의 이미지였다. 강연을 듣는 내내, 마치 책을 함께 천천히 읽는 듯한 기분을 맛보면서 오랜만에 나는 나 자신에게 ‘괜찮아. 넌 잘 할 수 있어.’라고 말을 건네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나를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다. 아니, 아직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일은 어렵다. 자신을 가지기 위해서 다이어트를 해야 하고, 조금 더 또박또박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조금 더 돈이 있어야 내 인생을 자신 있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늘 자신의 부족한 면을 보면서 괴로워하기 십상이다. 한국 교육이 남과 비교를 통해 자신의 우월감을 느끼도록 주도되어 왔다고 말해도 되지만, 어디까지 우리는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 나 자신보다 남의 시선과 말을 들으며 나를 보아왔다.


 이제는 조금 더 나 자신을 믿어줄 수 있도록 하자. 길을 열심히 달리다 보면 넘어질 수도 있다. 넘어지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게 부끄러운 거다. 우리가 자신의 삶을 조금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다면, 분명히 우리는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은 정말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마지막으로 독서대전에서 촬영한 영상을 공유한다. 드문드문 촬영한 탓에 끊기기도 했지만, 독서대전 당시 구 작가님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은 사람에게 아래의 영상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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