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스(AX), 골든 슬럼버 이사카 코타로의 신작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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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날, 방콕하며 읽기 좋은 소설


 배우 강동원이 주연으로 등장한 영화 <골든 슬럼버>는 일본 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골든 슬럼버>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다. 일본에서도 <골든 슬럼버>는 영화로 만들어졌었는데, 한국에서 만들어진 <골든 슬럼버>는 한국 특유의 정치적 사건 감각을 섞어 나름대로 잘 만들어진 영화가 되었다.


 오늘은 그 <골든 슬럼버>의 원작자인 이사카 코타로의 최신작 <악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악스>는 2018년 일본 서점 대상에 올랐고, 제6회 시즈오카 서점 대상에서 1위를 한 가공할 만한 재미를 가진 작품이다. 나는 당연히 이런 사실을 모른 상태에서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읽었다.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은 대체로 작은 사건을 하나씩 연결해서 마지막 엔딩을 장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 읽은 <악스>도 그랬다. 총 다섯 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악스>는 한 편의 이야기마다 나오는 새로운 등장인물과 겪는 주인공의 사건이 마지막에 이르러 하나의 커다란 목표를 이루게 된다.


 특히 가볍게 지나칠 수도 있는 요소 하나에도 뒤로 가면 기묘하게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사카 코타로는 이런 식의 전개 방식을 굉장히 좋아한다. 책을 읽는 독자로서도 책을 읽는 동안 작가가 교묘히 던지는 퍼즐을 하나씩 주워가며 ‘아, 이건 이렇게 또 나왔구나!’라며 읽는 재미가 무척 매력적이다.



 처음 <악스>를 읽기 위해 페이지를 넘기면 제일 먼저 밤늦게 조심히 집으로 들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늦게 귀가하는 자신 때문에 가족의 잠이 방해받지 않도록 조심하는 건데, 주인공이 보여준 이 세심한 모습과 동료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은 대단히 진지한데도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바깥에서 ‘킬러’라는 일을 가족에게 비밀로 부친 상태로 완벽하게 해내는 주인공이 집에 들어갈 때는 킬러 일을 할 때보다 더 긴장하기 때문이다. <악스>을 처음 읽었을 때 알 수 있었던 반전 매력을 가진 주인공에 금세 호감이 갔는데, 주인공이 보여주는 공처가로서의 모습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렇게 가족을 생각하는 사람이 어떻게 킬러의 일을 하게 된 걸까. <악스>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의문을 품을 수 있었는데, 원래 사람이 가지는 직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다 보니 이 일을 가지게 되었다.’고 자세히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악스>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단, <악스> 마지막에 이르러 킬러 일을 하는 주인공이 어쩌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는지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작가가 <악스>를 다 읽은 사람을 위한 보너스 장면으로 보였지만, 마지막 이야기를 읽으면 왜 그렇게 주인공이 아내와 가족을 위해 행동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악스>에서 주인공은 자신에게 킬러 일을 수주해주는 중개업자 의사에게 계속 ‘그만두고 싶다.’고 말한다. 그가 그만두고 싶은 이유는 자신이 지켜야 하는 소중한 가족이 있고,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점차 사람을 무미건조하게 죽이던 자신이 변해가는 것을 느끼며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풍뎅이는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아내가 왜 우는지, 그 감각을 완벽히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조금씩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좀 더 이해하고 싶었다. 우주의 생물이 인간의 행동을 가만히 관찰하며 마음의 존재 방식을 배워가는 듯한, 풍뎅이는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것 같았다.

빨리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고기를 입 안 가득 넣으며 생각했다. 시기적으로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의 감정을 잃은 채 사라져 가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본문 146)


 윗글은 <악스>에서 읽을 수 있는 주인공이 빨리 그만두고 싶어 하는 이유를 잘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미야케’이지만 소설 속에서는 대체로 별명인 ‘풍뎅이’로 묘사된다. 오로지 일 뜻밖에 만난 사람들만 그를 이름인 ‘미야케’로 부르는 것도 <악스>이 가진 독특한 특징 중 하나다.



 그 이외에도 <악스>가 가진 특징이라고 말한다면, 주인공 풍뎅이가 받는 킬러 일을 중개하는 업자가 의사로 신분을 위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개업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사’라는 고유명사로 불리고, 의사는 주인공에게 ‘수술’이라는 이름으로 일을 의뢰하고, 타깃은 ‘악성 종양’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묘사가 사뭇 재미있었다. 왜냐하면, ‘의사’라는 이름은 반대로 생각해보면 ‘킬러’라는 이름과 무척 잘 어울리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의사는 정당하게 사람의 목숨을 쥐고 있지만, 킬러는 부당하게 사람의 목숨을 쥐고 있다. 두 직업 모두 자신이 가진 기술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청부 살인과 같은 일을 하는 킬러의 중개업자로 의사라는 직업은 잘 어울렸다. 어디까지 개인적인 해석에 불과하지만, 분명히 작가 또한 ‘의사’와 ‘킬러’가 가진 직업 특성에서 재미있다고 생각해 사용한 게 아닌가 싶다. 의뢰의 타깃 또한 ‘종양’으로 표현하는 게 제법 재미있는 표현이었다.


 주인공 풍뎅이는 의사가 가져오는 일을 할 때마다 ‘그만두고 싶다’, ‘악성 종양을 처리하는 일이 아닌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데, 이렇게 트러블을 겪다 보면 결국 풍뎅이는 의사와 대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그렇다. 주인공 풍뎅이와 중개업자 의사의 마지막 승부가 <악스>의 하이라이트다.


 그 결과가 궁금한 사람은 소설 <악스>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두 사람의 승부가 제대로 결판이 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이 승부를 위한 복선을 충실히 깔아둔 작가의 이야기는 하나하나 눈을 빛내며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을 다 읽은 이후에 ‘역시 이사카 코타로다!’라는 찬사가 저절로 나왔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거나 비가 와서 바깥으로 나가지 못할 때, 역시 집에서 선풍기 하나를 곁에 틀어놓고 소설을 읽는 것만큼 멋진 일은 없다. 오늘 주말을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악스>와 함께 보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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