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달밤에 빛나고, 삶의 끝에서 시작한 특별한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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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전격소설대상 대상 수상작, 삶을 포기한 소년과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소녀의 사랑 이야기


 한때 내가 사는 삶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다. 학교 폭력을 당하던 때, 도저히 숨 쉴 구멍을 찾지 못할 때, 대학에 입학했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을 때. 나는 지금의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자 한참을 고민했다. 오랜 시간 방황하며 나는 흐르는 시간 속에 잃어버린 나를 찾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끝끝내 나는 살아가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살아가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면, 나는 대신 스스로 살아가는 이유를 만들고자 했다. 살아가는 이유를 찾기 위해서, 텅 빈 나를 채우기 위해서 읽었던 천 권이 넘는 책들을 통해 만난 저자와 이야기의 주인공은 ‘삶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가르쳐줬으니까.


 나는 매일 책을 읽으면서 글을 썼다. 내가 살면서 한 번은 해보고 싶은 일을 버킷리스트, 아니, 꼭 그런 거창한 리스트는 아니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지금 해야 할 일을 하고자 했다. 덕분에 나는 오늘인 ‘지금, 여기’를 살아갈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소설 <너는 달밤에 빛나고>는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려 삶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한 명의 소년, 그리고 '발광병'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소녀가 만나 끝이 정해진 특별한 사랑을 시작하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마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와 무척 닮아 있었다.



 <너는 달밤에 빛나고>는 제23회 전격소설대상 대상 수상작인 만큼, 소설이 한국에 발매하기 전부터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일본 소설을 즐겨서 읽는(특히 그 중에서도 전격문고의 라이트 노벨 장르를) 사람들은 <너는 달밤에 빛나고>는 꼭 정식 발매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너는 달밤에 빛나고> 시작은 남자 주인공 오카다 타쿠야가 반에서 발광병에 걸려 한 번도 출석하지 않은 여자 주인공 ‘와타라세 마미즈를 위해 적은 롤링 페이퍼를 적는 장면이다. 와타라세 마미즈를 전혀 알지 못한 주인공이 ‘얼른 병이 나으면 좋겠네요.’라는 한 문장만 뚝딱 적는 장면이 그려졌다.


 와타라세 마미즈에게 직접 롤링 페이퍼를 건네는 장면이 없으면 접점이 없을 것 같았는데, 오카다는 롤링 페이퍼를 건네주겠다고 말한 카야마 아키라 대신 오카다가 가게 된 거다. 롤링 페이퍼를 건네주기 위해 주인공이 와타라세 마미즈의 병실을 찾아가는 일이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계기가 된다.


 오카다가 와타라세를 처음 보았을 때 느낀 인상이 굉장히 섬세하게 잘 그려져 있었다. 주인공이 히로인을 처음 만난 부분을 짧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그 얼굴을 본 순간, 가슴이 뛰었다.

들은 대로 예뻤다.

예쁘지만, 닮은 사람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시선은 찌를 듯 날카로웠다. 자연스레 뻗은 긴 속눈썹과 우아한 쌍꺼풀이 새까만 눈동자를 그윽하게 감싸고 있어. 한층 인상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그리고 피부는 믿기 힘들 만큼 새하얬다. 털끝만큼도 볕에 그을리지 않은 피부 때문인지 그 소녀는 우리 반 다른 여학생들하고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마치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 같았다.

오뚝한 콧날과 갸름한 얼굴선, 수평으로 다문 작은 입.

반듯하게 편 등과 균형 잡힌 체형.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 가슴께에서 찰랑였다.

그 표정 어디에서도 교활한 구석은 찾아볼 수 없었고, 한결같이 올곧기만 했다.

“와타라세 맞지?”

나는 쭈뼛쭈뼛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맞는데. 넌?”

“오카다 타쿠야라고 해. 올봄부터 너랑 같은 반이야.”

나는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그렇구나. 처음 뵙겠습니다. 와타라세 마미즈예요.” (본문 18)


 어쩌면 이렇게 아름답게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장면을 묘사할 수 했는지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두 사람이 병실에서 마주하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졌다. 일본 소설이 가진 매력 중 하나는 이렇게 장면 하나하나가 굉장히 섬세하고 감성적인 데에 있다. 무척 좋지 않은가?


 서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같은 반의 학생에 불과했다. 오카다가 와타라세의 부탁을 받아 이름이 아니라 성 ‘마미즈’로 부르게 되고, 오카다가 실수로 마미즈의 스노우볼을 깨뜨리는 일이 일어난다. 오카다는 그 일의 사죄로 마미즈가 적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돕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시간이 천천히 쌓인다. 보통 이런 전개에서는 두 사람에 함께 추억을 쌓아가는 모습이 그려지지만, <너는 달밤에 빛나고>의 여자 주인공 마미즈는 밖을 돌아다닐 수 있는 몸이 아니라 남자 주인공 오카다가 마미즈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소감을 들려주는 형태로 그려졌다.


 오카다는 마미즈의 부탁을 받아 혼자 놀이동산에 가서 롤러코스터를 타기도 하고, 메이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번지점프도 하는 등 다양한 일을 혼자 체험한 이후 마미즈와 이야기를 나눈다. 함께 한 추억이라고 말하기 살짝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두 사람의 마음은 서서히 서로를 마주 보기 시작했다.



 <너는 달밤에 빛나고> 이야기는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남자 주인공 오카다 타쿠야가 끌어안고 있는 슬픔의 이유가 밝혀지고, 오카다와 친하게 지내는 카야마와 관계에 대해서도 밝혀진다. 오카다 타쿠야는 자신의 소중한 누나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후 마음이 망가진 상태로 지내고 있었던 거다.


 여자 주인공 와타라세 마미즈는 자신의 병 때문에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신이 아픈 것 이상으로 더 괴로워하고 있었다. 남자 주인공 오카다 타쿠야와 여자 주인공 와타라세 마미즈 두 사람은 그렇게 살아가는 의미를 잃어버린 공허한 상태로 단지 오늘 살아있을 뿐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발견하는 삶의 이유. 그 이유는 ‘오늘 죽어도 괜찮아’라는 말이 아니라 ‘살고 싶어.’라는 적극적인 의지를 지니게 한다.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눈치채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이 품은 서로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마미즈가 오카다에게 간절히 호소하는 장면을 짧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따위 관심 없어!

나는 그저 살고 싶을 뿐이야.

살고 싶어. 타쿠야.

너 때문에 나는 이제 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어.

그러니 그 책임을, 이제 곧 죽을 사람에게 그런 마음을 품게 한 책임을, 확실하게 져주세요.”

마미즈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어두운 옥상에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맑고 투명한 목소리였다.

“저의, 와타라세 마미즈의 진정한 마지막 소원을 오카다 타쿠야에게 이야기하겠습니다. 들어주세요.”

마미즈는 비장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말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지 알고 싶습니다.

제가 죽은 후의 세계가 어떤 식으로 계속되어갈지, 흥미진진하고 두근두근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을 품게 된 까닭은 당신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본문 273)


 이 뒤의 장면은 직접 소설 <너는 달밤에 빛나고>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책을 읽는 동안 가장 가슴이 먹먹해진 이 장면은 살아가는 이유를 알지 못한, 살아가는 이유를 포기한 두 사람이 극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품는 장면이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숨이 막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는 달밤에 빛나고>은 두 사람이 비로소 서로에게 닿아 ‘살아가는 이유’로 싹을 튼 이후 이야기를 정리해나간다. ‘그리고 이제 곧 봄이 온다’라는 제목으로 그려진 마지막 이야기는 마미즈가 오카다에게 남긴 메시지를 하나씩 실천하며 오카다가 그녀를 곱씹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암전.


 작가 사노 테츠야는 작가 후기를 통해 ‘타쿠야뿐만 아니라 그처럼 삶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모든 이들이 스스로를 믿고 힘을 낸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괜찮아. 반드시 해낼 수 있으니까.’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소설 <너는 달밤에 빛나고>은 타쿠야와 마미즈를 통해 독자를 응원하는 이야기였다.


 오늘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면, 나는 책 읽기를 실천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책을 읽기 위해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작으로 <너는 달밤에 빛나고>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책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당신의 마음에 변화를 가져다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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